바다 풍경과 사기극, 암담한 현실이 왜 이렇게 쫄깃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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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다 갈매기는'이라는 제목과, 항구를 배경으로 두 노인의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을 담은 포스터를 보면, 쓸쓸하거나 처연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27일 개봉하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답답한 현실을 날카롭게 담고 있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난이도 극상인 선체 촬영에서 뽑은 바다의 탁 트이고 서정적인 풍경과, 사기극 계획이 꼬이면서 관객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긴장감이 영화를 쌍끌이하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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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바다 갈매기는’이라는 제목과, 항구를 배경으로 두 노인의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을 담은 포스터를 보면, 쓸쓸하거나 처연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30% 정도 맞는 이야기다. 쇠락해가는 어촌 마을과 이곳을 평생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투명인간으로 사는 이주노동자. 27일 개봉하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답답한 현실을 날카롭게 담고 있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쓸쓸하고 처연하게 시작했던 영화는 곧 보험사기극으로 변모하며 높은 긴장감의 재미를 펼쳐낸다. 전작 ‘불도저에 탄 소녀’(2022)에서 강퍅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거칠고 당찬 여성 캐릭터로 직진의 쾌감을 선사했던 박이웅 감독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작은 어촌의 작은 배 선주인 영국(윤주상)은 유일한 선원인 용수(박종환)와 용수의 베트남 신부 영란(카작), 용수의 엄마 판례(양희경)와 가족처럼 지낸다. 어느 날 밤 영국은 배를 한참 몰아 어딘가에 용수를 내려준 뒤, 다음날 용수가 물에 빠져 실종됐다고 파출소에 신고한다.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삶과 동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아내를 위해 사망보험금을 타서 베트남으로 떠나려는 용수의 계획에 동참한 것이다. 그런데 며칠이면 마무리될 줄 알았던 실종자 수색이 판례의 고집으로 계속 이어지고, 영란의 귀화 계획도 어긋나면서 두 남자의 어수룩한 사기극은 점점 산으로 간다.
박 감독은 ‘불도저에 탄 소녀’를 만들기 전인 2008년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서울서 평생 자란 그가 바닷가 마을을 처음 구상한 장편의 배경으로 정한 이유는 바다라는 스펙터클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26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박 감독은 “내 창작의 기반은 장르 영화”라며 “무거운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장르 영화가 주는 이야기의 재미와 시각적 즐거움을 추구한다”고 했다. 난이도 극상인 선체 촬영에서 뽑은 바다의 탁 트이고 서정적인 풍경과, 사기극 계획이 꼬이면서 관객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긴장감이 영화를 쌍끌이하게 된 배경이다.
반면, 그가 2008년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머물렀던 동해안 마을에서 취재하며 만든 캐릭터들에는 징글징글할 정도의 핍진성이 담겨있다. 용수와 영란을 위해 애쓰는 영국은 정작 딸들에게는 연을 끊고 싶을 만큼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아버지였고, 영란을 딸처럼 돌보던 판례도 이기적인 모성을 숨기지 않는다. 영란 역시 이주노동자로 마을 사람들에게 자주 수모를 당하지만,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복잡다단한 내면을 가진 인물들이 가족처럼, 원수처럼 얽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한국 사회 전체를 축약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영화는 지난 10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 등 3개 부문을 휩쓸며 올해 최고의 수확으로 꼽혔다. 당시 정한석 프로그래머는 영국을 연기한 윤주상에 대해 “봉준호가 발견한 변희봉같이 새롭다”고 평했다. 주로 드라마에서 기업 회장이나 큰아버지처럼 점잖은 연기를 해왔던 윤주상의 거칠면서도 애잔함을 품은 연기가 씁쓸한 현실을 담은 영화에 따스함의 정조를 불어넣는다. 박 감독은 “영국은 과거와 현재의 큰 사건을 (내색하지 않고) 안고만 살아가는 인물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연기자에게 어려운 도전이었다”면서 “영국이 괴팍하지만 불쾌한 인물이 되지 않은 데는 윤주상 선생님의 사랑스러운 본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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