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PD “부용이 삭제 비난 당연히 감수해야…퀴어코드 살리고자 고민”[EN:인터뷰①]

황혜진 2024. 11. 2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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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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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황혜진 기자]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 정지인 감독이 연출 비화를 공개했다.

11월 17일 종영한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윤정년(김태리 분)을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다룬 작품이다.

'정년이'는 신예은을 포함한 배우들의 열연을 토대로 순항했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4.8%로 출발한 시청률은 상승세를 거듭하며 마지막 회(12회) 자체 최고 시청률 16.5%로 막을 내렸다. '정년이'는 매주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로 승승장구했고, K-콘텐츠 온라인 화제성 분석 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도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정년이'의 승승장구 행보에는 여성 국극이라는 신선한 소재가 주효했다. '정년이'는 여성 국극을 재현한 최초의 드라마로서 정년이를 중심으로 한 국극 배우들의 성장 서사라는 메인 플롯을 구축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극중극을 심도 있게 구현하며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이끌었다. '춘향전', '자명고', '바보와 공주' 등의 만듦새는 가히 상찬할 만했다.

다만 원작을 일부 훼손한 각색은 적지 않은 혹평을 불러일으켰다. 원작에 존재하는 부용이 캐릭터를 삭제한 것. 부용이는 윤정년의 1호 팬이자 윤정년과 묘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인물이다. 이에 예비 시청자들은 퀴어 코드에 거부감을 표하는 일부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무리수 각색을 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제작진은 제작발표회에서 상대적으로 방대한 원작 내용을 12부작으로 축약하는 과정에서 부용이 캐릭터가 불가피하게 삭제됐으며 부용이 캐릭터가 지닌 정서를 다른 캐릭터에 녹이는 방식으로 극을 풀어 나갈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뚜껑 열린 '정년이'는 윤정년과 부용이와의 관계성을 윤정년의 매란 국극단 절친 문주란 캐릭터에게 투영했다. 16일 방송된 11회에서 문주란은 윤정년에게 오디션 상대역으로 윤정년이 아닌 허영서를 택했던 진짜 이유를 고백하며 우정을 넘어섰지만 정확히 명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털어놨다. 모친의 반대로 국극을 그만두고 결혼하게 된 문주란은 "내 하나뿐인 왕자님"이라며 윤정년에게 눈물의 이별을 고하는 모습으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배우들의 호연은 흠잡을 데 없었다. 김태리는 소리 천재 윤정년 캐릭터를 체화하고자 소리만 무려 3년간 배웠다는 전언. "김태리 아닌 윤정년은 상상하기 어렵다"라는 극찬이 나올 정도로 김태리 표 윤정년은 완벽했다.

김태리만 빛난 작품은 아니었다. 정년이의 막강한 라이벌로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허영서 역의 신예은, 듬직한 매란 국극단 단장 강소복 역의 라미란, 매란의 매혹적 왕자 문옥경 역의 정은채,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었던 문옥경 바라기 서혜랑 역의 김윤혜, 이번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홍주란 역의 우다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던 박초록 역의 승희, 한 신을 위해 '추월만정'을 1,000번 이상 연습하며 특별 출연 그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낸 채공선 역의 문소리 등까지 제 몫을 톡톡히 해내 숱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다음은 '정년이' 종영을 기념해 진행한 정지인 감독과의 일문일답.

Q '정년이' 흥행에 대한 소감 및 가장 기억에 남는 시청자 반응은 무엇인가요.

▲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물이 이런 큰 사랑을 받게 돼서 무척 기쁩니다. '정년이'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신 시청자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청자 반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극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집에서 이런 걸 돈 주고 봐도 되냐는 댓글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Q 연출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뒀는지 궁금합니다.

▲ 현대의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한 장르인 여성국극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가장 고민이 많았습니다. 국극은 당시 관객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던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생각하며 우리 시청자들도 그에 못지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무대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입장하는 듯한 기대감과 흥분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드라마 속의 관객과 시청자들이 동일한 선상에서 이런 기분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지 촬영 전부터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방향을 잡았습니다.

소재가 다소 낯선 만큼,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최대한 보편성을 띨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또한 원작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어떤 배우들을 만나야 더 큰 생동감을 가지고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캐스팅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다행히 김태리 님을 비롯해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배우들이 합류해 준 덕에 쉽지 않은 작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방영 전부터 원작에 존재하는 부용이 캐릭터를 삭제해 갑론을박이 일었습니다. 방영 이후에는 정년이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듯한 홍주란의 모습, 문옥경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의지하는 서혜랑의 모습 등에서 퀴어 코드를 느꼈다는 시청자들이 많았는데요. 이러한 극 전개는 "부용이를 어떤 한 캐릭터에 담기보다 드라마 전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서 작가님과 상의하면서 현장에서 배우들이랑 상의하면서 나름 담아본 부분이 있다"라는 제작발표회에서의 말씀과 이어지는, 의도한 부분인가요? 만약 의도한 부분이었다면 퀴어 코드 삭제로 인해 받으셨던 비난들이 조금은 서운하진 않았는지요.

▲ 가장 상징적이자 중요한 존재감을 가진 부용이 사라진 이상, 비난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원작이 가진 퀴어 코드를 대중적으로 살릴 수 있는 방향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옥경과 혜랑은 개인적으로는 오랜 동반자이자 멜로 관계라 생각하고 연출했습니다. 관계적으로도, 극단 안에서도 권태기에 돌입한 둘의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주란이 정년에 대한 가진 감정은 좀 더 섬세하게 다뤄야 했습니다.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하려는 순간, 본능적으로 생기는 두려움을 표현하는 주란의 모습과 이를 바탕으로 관계와 재능이 부정당하는 정년의 모습이 후반부 드라마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결국 발현된 감정은 진도가 달라진 채 이별을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년과 주란은 서로에게 설익은 첫사랑이라는 생각으로 연출했습니다.(인터뷰②에서 계속)

(사진=tvN ' 정년이' 제공)

뉴스엔 황혜진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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