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바스에 스틱 빠뜨려…영양주사 맞으며 등정 [키르기스스탄 레닌봉]

처음 떠나는 원정이다. 한국외대 산악회의 60주년을 기념하는 이 원정대에 운이 좋게도 선발됐다. 이전까지 오른 가장 높은 산은 지리산(1,915m)뿐이었는데 갑자기 7,134m의 키르기스스탄 레닌봉이라니…. 한편으로는 겁이 몰려왔지만 겪어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 덕분에 이겨냈다. 개인적으로 사계절 중 겨울의 설산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인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원정대에 뽑혔으니 준비를 해야 했다. 같이 선발된 재학생들(고혁준, 양승혁, 송재흔)은 고산경험이 전무했다. 크램폰이나 고산등반용 방한화, 빙벽화 같은 필수적인 장비들도 없었다. 다행히 같은 산악회 선배, 승기 형이 훈련에 많은 도움을 줬다. 기본적인 설산 보행법부터, 안자일렌, 주마링, 도르래 시스템을 이용한 구조법 등 설산에서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을 배웠다. 또 레닌봉 경험이 있는 김미곤 대장님, 최선홍 형(인천대 산악부), 유학재 대장님 등 많은 분들과 만나서 조언을 들었다.
부족한 점이 많았던 원정대였지만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거의 매 주말 시간을 내어 훈련에 참여했다. 선자령, 설악산 등 국내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곳들만 찾아다녔다. 함께 원정대에 선발된 OB 형들도 바쁜 와중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참여했다.

겨울이 지나 눈이 녹은 후에도 주말마다 모여 백두대간 구간 종주, 불수사도북 등 중량 훈련을 하며 팀워크를 다졌다. 팀 훈련 외에 개인 훈련도 열심히 했다. 매주 장거리 러닝을 꾸준히 했으며, 팀 훈련이 없는 때는 재학생들끼리 자체적으로 모여 산행을 했다.
그런데 원정 날짜가 다가올수록 원정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커졌다. '이 정도로 충분할까?', '가서 힘들면 어쩌지?' 등 부정적인 생각들이 계속 찾아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개인 운동을 더 힘들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던 것 같다.
고산 적응 비법: 하마처럼 물 마시기
"와. 높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고 레닌봉을 보자마자 절로 높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레닌봉보다 주변의 평화로운 풍경이 맘에 쏙 들어왔다. 날씨도 시원하고 습하지 않아 쾌적했다. 여름휴가로 오기 좋아 보였다.
고도가 높다 보니 컨디션이 확실히 달랐다. 카고 백을 옮기거나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숨이 차고 머리가 아팠다.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신기했다. 며칠 동안 고소적응을 위해 산책을 했다. 여기 사는 꼬마들은 뛰어다니며 공놀이를 한다. 나는 한 걸음 내딛기도 숨이 차는데, 완벽한 패배다.

그렇게 고소적응을 마치고 캠프1으로 올라갔다. 올라간 당일을 제외하고는 크게 힘든 점이 없었다. 승구 형(원정대장)의 조언대로 차를 끊임없이 마셨다. 1시간에 한 번 화장실을 갈 정도로 많은 물을 마셨다. 원래 커피보다 차를 좋아해서 거부감이 없었다. 보온에도 계속 신경을 썼다. 항상 버프로 목을 감싸고 다녔고, 비니도 벗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캠프1에서 고소적응을 위해 옆 봉우리인 유힌봉Yuhin peak(5,130m)을 오를 때도 수월했다. 유힌봉에 다녀온 후 물에 더욱 집착하며 온종일 보온병과 날진 수통을 끼고 살았다.
이제 캠프1에서 고소적응을 마치고 캠프2로 간다. 모두 장비를 착용하고 약 15kg의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크램폰 착용 지점까지 가는 길은 무난했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서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크램폰을 착용하고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안자일렌이 너무 불편했다. 내 페이스대로 걷지 못하고 같이 줄을 묶은 가이드의 속도에 맞추느라 숨이 거칠어졌다. 주마링 구간에 이르렀을 때는 숨이 너무 차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숨을 아무리 쉬어도 호흡이 가라앉지 않았다. 전력질주를 한 후, 호흡을 진정시킬 수 없는 듯한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진짜 문제는 그때 발생했다. 주마링 구간을 지나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배낭을 내려놓았는데, 다시 출발하면서 배낭을 멘 순간 배낭이 눈에 꽂아둔 스틱을 쳐버렸다. 전적으로 내 실수였다. 스틱은 야속하게 방금 지나온 크레바스 속으로 사라졌다. 뒤따라오던 가이드가 스틱을 건져보려고 크레바스를 내려다봤지만, 너무 깊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아' 하고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혁준의 추천을 받고 원정에 오기 전 큰맘 먹고 산 고가의 접이식 스틱이었다. 최소 10년은 사용하려 했는데,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정말 속상했다. 하지만 슬퍼할 틈 없이 피켈을 꺼내 스틱 대신 사용했다.
'배낭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내가 떨어진 것은 아니라 다행이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걸었다. 그러나 점점 체력이 부족해지는 건지, 정신적으로 지친 건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스틱 없이 피켈로 걷는 게 힘들었다. 걸을 때마다 '아, 스틱이 있었다면… 내 스틱…'이라고 중얼거리며 계속 걸어 나갔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하루 쉬고 캠프2에서 캠프3로 간다. 전날 고생이 많아서 다들 컨디션이 좋지 않다. 나도 호흡을 하는 데 약간 불편함이 있었다. 가이드의 판단에 따라 그나마 컨디션이 제일 좋은 승구 형, 혁준이 그리고 나 순으로 캠프3까지 가기로 했다. 캠프3로 가는 길 초입은 매우 가팔랐다. 숨을 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두 걸음 걷고 숨 쉬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걸어 캠프3에 도착하니 컨디션이 최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든 원정 기간을 통틀어 이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아마도 폐 쪽에 통증이 느껴져 숨쉬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러다가 몸이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무섭기도 했다.
텐트 안에 들어가자마자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지쳐 누웠다. 그때 혁준이가 잘 챙겨줘서 고맙고 미안했다. 저녁식사 후 약을 먹고 잠들었는데 자는 내내 숨이 넘어가면서 자꾸 깨어나 괴로웠다. 이후에 같이 잤던 승구 형은 내 숨소리가 너무 이상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많이 나아졌다.

캠프3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하산 준비를 했다. 컨디션 때문인지 고소적응 때문인지 사소한 동작을 할 때마다 숨이 차고 힘들었다. 내려가는 길도 결코 쉽지 않았다.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하며 하산했다. 캠프1에 도착해서야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윽고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정상이라도 다녀온 것 마냥 행복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휴식에만 전념했다. 의사에게 진찰 받았는데 아마 찬 공기에 폐가 쪼그라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큰 병은 아니라 안심이 되었다. 베이스캠프의 풍경은 여유로워서 정말 좋았다. 아침을 먹고 식당 2층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쉬는 게 제일 행복했다.
"저 고개만 넘고 정상 포기해야겠다"
이제 고소적응도 마쳤고, 정상 공격이다. 베이스캠프에서 캠프1으로 올라와 하루를 쉰 뒤, 새벽에 팀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출발했다. 몸이 확실히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안자일렌을 하고 가이드의 속도를 맞춰 가는 데도 여유가 있었다. 고소적응이 잘된 것 같았다.

캠프2에 도착해 하루를 보내고 캠프3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휴식 없이 캠프3까지 수월하게 올랐다. 똑같은 코스인데 전에는 숨이 너무 차서 죽을 것 같이 올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정상을 향한 자신감이 마구 솟아올랐다. 텐트 안에서 혁준이와 함께 눈을 녹여 물을 끓이고 내일 쓸 장비를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상 등반 날 새벽, 랜턴을 켜고 짐을 챙긴 후 출발했다. 두꺼운 3M 장갑을 끼고 가다가 손이 시려서 바로 방한장갑을 착용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영 조짐이 좋지 않았다. 등반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이드 다니엘이 구토하는 모습을 봤다. 깜짝 놀랐는데 원정대 중에선 나만 본 거 같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는데 정작 다니엘은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길을 이어나가 안심할 수 있었다.
내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페이스만 유지하면 정상까지 별 탈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항상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주마링 구간에서 앞에 사람이 많아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말로만 듣던 고산등반 중 정체구간이 나타난 것.

따뜻하게 입었지만 그래도 손발이 시리다. 주마링 구간을 힘겹게 지나고 나니 이번엔 괜찮던 내 몸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전날 불안한 마음에 어떻게든 볼 일을 보려고 시도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잠들기 전에 '정상 갈 때 신호가 오면 안 될 텐데' 라고 걱정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참고 가보려고 했지만 결국 한적한 곳으로 가서 볼 일을 봤다. 혹한의 환경 속에서 장비를 벗고 볼 일을 보고 다시 장비를 착용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어제 나오지 않은 변이 미웠다.
한 번 진이 빠지니 이때부터 뒤처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걸어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점점 거리도 크게 벌어졌다. '일단 한 발자국씩 걷고 생각하자'는 마음 하나로 천천히 따라갔다. 속도를 내고 싶었지만 숨이 차서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내 페이스대로 걷던 중 앞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여기서 정상까지 최소 2시간 정도는 걸려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고민을 시작했다. 2시간이 걸린다면 시간상 도착하기도 힘들뿐더러 체력이 걱정되었다.

정상은 어떻게든 올라설 여력이 있는데 하산할 자신이 없었다. 발은 앞으로 움직였지만 그가 전해준 말이 씨앗이 된 고민의 뿌리들이 마음속에 박아 넣어지고 있었다. '돌아가야 하나? 괜히 욕심 부리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갈 수 있는데 포기하는 건 아닐까? 의지가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가이드에게 말하려고 앞을 봤는데 그가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하고 고개를 넘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저 고개를 넘고 바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봉우리를 넘었다. 그런데 거기, 봉우리가 보였다.
저게 무슨 봉우리인지 긴가민가하며 고민하는데 마주 오는 중국인 한 명이 "저기가 정상이야, 파이팅!" 응원을 해주고 내려갔다. 정상 전 마지막 고개였다. 어림해 보니 다행히 2시간까지 걸릴 정돈 아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날씨가 맑아 주변 풍경이 다 보였다. 여기가 정상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상에 도착하니 승구 형이 고생했다며 나를 안아주었다. 뭉클했다. 혁준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정상보다 기억에 남는 건 준비과정이었다
찍어야 할 사진이 많았다.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깃발을 바꿔가며 같은 자세로 서둘러 찍었다. 2~3개까지는 다른 외국인들이 별 말 없이 기다려줬지만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깃발이 5개, 6개 연거푸 나오자 "오 마이 갓" 하면서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는 황급히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얼른 마무리했다. 그렇게 한국외대 산악회 정승구 대장, 고혁준, 신지운 대원은 8월 8일 13시 40분(현지시간) 레닌봉 정상에 올랐다.
하산 길은 끝이 안 보였다. 모두가 지쳐 있었다. 내려가던 도중, 가이드 아자가 혁준이한테 주사를 놔줬다. 혁준이도 힘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 듣기로는 수액 비슷한 영양주사라고 한다. 나도 너무 힘들어서 휴식을 취하며 행동식을 억지로 먹었다. 먹고 나니 한결 나았다. 승구 형이 제일 힘들어했는데 50대 중반인 나이를 생각하면 그럼에도 정상을 등정한 것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우여곡절 끝에 캠프3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아자가 고생했다며 하이파이브를 전하고 미리 끓여둔 차 한 잔을 건넸다. 내일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텐트로 들어갔다. 누워서 혁준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정상 등정에 대한 소회', '왜 산에 오르는지' 같은 깊은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 물 끓여야 되는데 너무 귀찮다", "아 밥 먹어야 되는데…" 라며 실없는 소리만 하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캠프1에 도착하니 대원들이 마중을 나왔다. 이름을 부르며 웃으며 재회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한참을 못 본 것처럼 너무나 반가웠다. 승혁 형이 챙겨온 콜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그건 인생 최고의 콜라였다.
캠프1에서 베이스캠프로 함께 무사히 돌아와 자축하며 저녁에 작은 파티를 열었다. 그제야 비로소 '이제 정말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다녀온 것이 아직도 꿈같이 느껴졌다.
이번 원정은 정말 많은 걸 배웠고, 힘들었던 만큼 뿌듯함도 컸다. 정상의 순간도 잊지 못하겠지만, 무엇보다 함께 고생하고 웃었던 팀원들과의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함께 원정을 준비하고, 또 진행하면서 얻은 추억들이 내게는 더 크게 느껴졌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 원정이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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