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하면 해외 투기자본 기승? “기껏해야 견제 역할”[팩트체크]

김윤나영 기자 2024. 11.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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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재계와 여당이 연일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상법 개정 여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맞물려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야당은 국내 대기업 이사회들이 지배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쪼개기 상장’ 등으로 소액주주들을 희생시켜왔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 투자를 꺼리고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다는 것이다.

정부·여당과 재계는 “상법을 개정하면 한국 증시가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변한다”고 반대한다. 소액주주의 소송 남발, 기업가치 하락도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주장이 ‘공포 마케팅’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①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 된다?

민주당 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고, 이사에게 총주주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 공평 대우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규모 상장회사는 감사위원을 2명 이상 분리 선출해야 하고, 이사 선임 과정에서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집중투표제란 이사 선임시 선임하려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를 3명 뽑으면 1주를 보유한 주주는 세 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재계는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외국계 투기자본이 기업에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기업 최대주주가 된 대표적인 사건이 21년 전 ‘소버린 사태’다. 외국계 헤지펀드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은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에 따른 경영 공백을 틈타 지분을 14.8%까지 늘려 SK 최대주주에 오른 바 있다. 소버린은 법정 공방 끝에 지분 보유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바꾸고 주식을 팔아 8000억여원의 차익을 거뒀다.

전문가들은 21년이 지난 지금 국내 증시 덩치가 커져서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대기업 최대 주주가 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반박한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은 26일 “외국계 펀드는 대부분 이사 선임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며, 일부 이사 선임을 시도하는 경우라도 이사회 7~8명 중 감사위원 1명 정도 선출하는 것이 목표”라며 “설사 감사위원 선출에 성공해도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기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최대주주 지분에 근접한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가 있는 회사라면 외국계 헤지펀드와 결탁할 수 있겠지만, 그런 회사가 한국에 몇 개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②‘전체 주주’ 개념 너무 모호하다?

민주당 안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아닌 ‘총주주의 이익 보호’라는 표현을 채택한 부분도 논쟁거리다. 재계는 법적 분쟁시 ‘총주주’의 정의를 두고 다툼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최대주주와 2대 주주,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를 수 있는데 이사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냐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최대주주 이익과 나머지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반박했다. 지배주주의 이해상충 행위 유형으로는 총수 일가에게 높은 보수를 지불하는 등 직접적 사익추구, 특수관계인과의 부적절한 거래,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신주발행(합병·분할·병합·교환·자사주 매도 등) 등을 꼽았다. 즉 이사회가 회사의 손해를 감수하고 총수 일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일반 주주의 손해를 끼치더라도 지배 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는 경우 포괄적인 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③소액주주들이 소송 남발한다?

상법을 개정하면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 수가 2020년 10곳에서 2022년 49곳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경영권 분쟁 피소를 당했다고 공시한 기업도 지난해 상반기 15곳으로, 2022년 전체(5곳)보다 많았다.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늘어난 건 한국만의 추세는 아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이 발간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의 공개 요구가 미국에서 8%, 아시아에서는 13%, 유럽에서 24% 늘었다.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사항은 배당 확대와 같은 주주환원 확대부터 지속가능경영(ESG)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행동주의 펀드 활동의 긍정적 요소도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행동주의 캠페인은 일반적으로 2~10%의 주가 상승을 유발한다”고 했다. 또 “대부분의 행동주의 캠페인에서 타깃 기업과 행동주의 펀드는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싸운다”며 어느 쪽이 주주들을 설득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상법을 개정하면 관련 소송이 어느 정도 늘어날 수 있다고 인정한다. 다만 이는 이사회가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의 손해를 끼쳐선 안 된다는 판례를 정립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본다. 천 부회장은 “현재는 일반 주주들에게 부당한 비율로 합병이 결정돼도 소송할 길이 막혀 있다”며 “소송을 통해 판례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종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도 이날 국회 토론회에서 “이사는 ‘회사와의 위임 계약’에 따라 충실 의무를 가지지만, 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을 선출해준 주주에 대한 법적 의무는 없는 것으로 국내 판례가 형성된 것이 현행 상법 해석의 한계”라며 “이사회는 주주총회에서 선출된 이사로 구성되기 때문에 주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판례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④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충분하다?

정부는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을 개정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김병환 위원장은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공정한 가액을 합병가액으로 정한 뒤 외부 평가를 받고 공시하게 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반면 김 교수는 “자본시장법 개정과 상법 개정이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자본시장법 개정 추진이 상법 개정의 반대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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