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버린 나라 위해 싸울 수 없다” 사회운동 손 떼는 미 흑인 여성들
흑인 여성 90% 해리스 지지
트럼프 2번째 임기 앞두고
“차별이 주류가 돼…무력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두 번째 임기가 다가오면서 미국 내 소수자 정치를 이끄는 ‘투사’ 역할을 자처해온 흑인 여성들 사이에 무력감이 커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AP통신은 트럼프 당선인 재집권을 기점으로 다양한 시민사회 분야에서 활동해온 흑인 여성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일선에서 물러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2016년 트럼프 당선인이 처음으로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과거엔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를 ‘우연’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가 다시 압승을 거두자 인종차별·성차별 발언을 쏟아내온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에 동조하는 여론이 미국 내 주류가 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유색인종 여성 옹호 단체 ‘겟소셜’을 창립한 테자 스미스는 “지금 상황에서 제정신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흑인 여성 유권자들은 다른 유권자들보다 민주주의 가치를 중요하게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AP가 대선 당일까지 8일간 실시한 설문조사 ‘AP 보트캐스트’를 보면, 흑인 여성 10명 중 6명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장 중요한 투표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다른 인구 집단에서 같은 응답을 한 비율보다 높다. 흑인 여성 약 90%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가 확정된 이후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흑인 여성은 쉬어야 한다(Blackwomenrest)’ ‘휴식이 저항이다(rest is resistance)’ 등의 문구를 적은 게시물이 확산하기도 했다. 영상은 흑인 여성들에게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일단 휴식을 취하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흑인 여성은 미국 정치사의 주요 기점이 된 각종 사회운동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온 집단으로 꼽힌다. 이들이 1960년대 흑인 참정권 운동부터 2018년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 번진 인종차별 규탄 시위 등을 이끌어왔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의 두 번째 집권으로 휴식기를 갖겠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정치 역학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영리단체 ‘블랙보터스매터’를 창립한 라토샤 브라운은 “우리(흑인 여성들)는 헤라클레스가 아니고, 그런 타이틀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 나라를 위해 순교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AP에 말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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