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폭탄’ 예고… 멕시코 진출 한국기업들 ‘초비상’ [트럼프 관세전쟁 포문]
멕시코 투자 이력 기업만 2000여곳
2023년 투자금만 1조500억원 달해
현지 생산 가전·차 가격 상승 불가피
판매처 중남미로 전환 등 대응 고민
경기부진 우려에 벌써 소비심리 위축
CCSI 향후경기전망 전달보다 7P 빠져
하락폭은 2022년 7월 이후 가장 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마약과 이민자 단속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취임 후 멕시코와 캐나다 상품에 각각 25%, 중국 상품에는 추가 관세에 더해 10%를 더 물리겠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 중 하나인 캐나다조차 ‘관세 폭격’의 대상이 된 만큼 한국도 예외일 순 없다. 수출 타격과 투자 위축 우려에 국내외 기관들은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1%대로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25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수천 명이 멕시코와 캐나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면서 범죄와 마약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유입되고 있다”며 “1월20일 내 첫 행정명령 중 하나로 멕시코와 캐나다로부터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에 서명할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당선인이 말한 ‘대(對)중국 추가 관세’ 세율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중국 상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중국 업체의 자동차에 100~200% 부과하겠다고 했으나 멕시코와 캐나다를 대상으로 한 25%의 관세 언급은 처음이다.
NYT는 또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에 직접 서명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짚었다.
특히 미국과 지정학적·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인 캐나다에 대한 고관세 부과는 양국 동맹에도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진출 한국 기업도 피해 우려
트럼프 당선인의 멕시코·캐나다 관세 부과 발표에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긴장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 기아자동차, 포스코, 삼성SDS, 현대모비스, HL만도, LG이노텍 등이 멕시코에 진출해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멕시코에 투자한 이력이 있는 우리 기업은 2000개가 넘는다. 한국의 대멕시코 투자 금액은 지난해 7억5400만달러(약 1조500억원)에 이른다.
멕시코 상품에 관세가 부과된다면 현지 생산 가전과 자동차 등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멕시코 공장에서 부품을 조달받아 북미지역 공장에서 조립해도 마찬가지다. 멕시코·캐나다 외 지역에서 들어온 제품과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26일 “기업들은 미리 수입을 당기거나,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거나 부품을 한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는 식으로 대응을 고민할 것”이라며 “제품 판매처도 북미가 아닌 중남미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發 위기 해법 찾기 모색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FKI타워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도래와 한국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2024 한국경제인협회(FKI)-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공동 콘퍼런스-격랑의 트럼프 2기와 한국의 생존 해법’에서 애덤 포즌 PIIE 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한국경제인협회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와 주최한 ‘격랑의 트럼프 2기와 한국의 생존 해법’ 콘퍼런스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관세(10∼20%) 정책 실행 시 한국의 대미 수출이 최대 13.6%, 158억달러(약 22조원)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한 제프리 쇼트 PIIE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관세정책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날 산업연구원도 ‘2024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보편적 관세가 실제로 부과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이 8.4∼14.0%(약 55억∼93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여파로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도 약 0.1∼0.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견기업들도 트럼프 2기의 관세 충격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중견기업 237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미국 대선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의견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6.4%는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중견기업계는 불확실성 확대 요인(복수 응답 기준)으로 자국 우선주의 강화로 인한 기업 부담 증가(43.9%)와 고강도 관세정책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35.9%), 대중국 통제 강화에 따른 중국 리스크 증가(13.3%) 등을 꼽았다.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트럼프의 주요 공약으로도 보편·상호적 관세 확대(39.5%)가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당장 수출 약화 우려로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이날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앞서 바클레이스·씨티·JP모건·HSBC·노무라 등 주요 투자은행(IB) 5곳도 1%대 성장을 예상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아시아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수출 약화는 이미 올해 하반기 시작됐고 이에 따라 투자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관세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내수 회복에도 복병이 되고 있다. 경기 부진 우려가 벌써부터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어서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1월 100.7로, 10월보다 1.0포인트 떨어졌다. 한은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 수출 증가세 둔화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CCSI 지수가 100보다 크면 소비자의 기대심리가 장기평균(2003∼2023년)과 비교해 낙관적이라는 뜻이고,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특히 CCSI를 구성하는 6개 지수 중 향후경기전망(74)이 전월 대비 7포인트나 빠지며 지난해 11월(72)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락폭은 2022년 7월(-19포인트) 이후 가장 컸다.
김수미·이진경 기자,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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