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그 우문을 깨야 할 때다
“‘모두의 문제’를 ‘각자의 문제’로 강요하는 구조 봐야”
서울 신명중학교 김헌용(38) 영어교사는 6살 때 실명했다. 어릴 땐 쌍둥이 형과 함께 어린이집에 다녔지만, 초등학교 입학 무렵엔 삶의 경로가 달라졌다. 우선 그는 독일에 치료받으러 다녀오느라 학교 입학이 형보다 1년 늦어졌다. 또 형이 일반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는 맹학교로 가야 했다. 시력을 잃는다는 건 ‘분리’를 의미했다.
그가 학교에 다닌 1990년대는 일반학교에서 특수교육을 받기란 무척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장애 관련 자원이 특수학교에 상대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입학한 특수학교에서 비로소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초·중·고등학생 시절을 모두 특수학교에서 보낸 자신의 경험을 “분리 속의 풍요”였다고 표현했다. 그런 김 교사도 최근 연이어 학교 현장에서 터져 나온 특수교육계 사건들, 예를 들면 ‘인천의 한 초등학교 특수교사의 죽음’ ‘주호민 아들 특수교사 사건’ ‘왕의 디엔에이(DNA) 사건’ 등을 누구보다 복잡한 시선에서 바라봐왔다. 그 자신이 특수교육을 받는 ‘장애학생’이었고,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며, 동시에 영어교육·특수교육을 전공한 ‘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는 건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 (개인들이) 서로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2024년 11월6일 서울 강동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시각장애 일반학교 교사라는 교차성
—특수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분리 속의 풍요’였다고.
“특수학교라는 공간 안에 들어가 있으면 결핍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 밖으로 나오면 사회적 관계에서의 결핍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할 때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다니는 학교에 간다는 게 두려웠다. 어느 정도 부적응하기도 했다. 통합교육(장애학생이 일반학급에서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수업받으면서 필요한 경우 특수학급 지원을 받는 교육 형태) 현장에서 장애학생과 관련한 여러 문제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우리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지역사회에서 살고 친구도 만들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 그래서 장애학생이 다니는 학교에도 두 가지 형태가 모두 필요하다.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도 필요하고, ‘특수학교’도 필요하다.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대체하는 게 아니다. 보조공학기기도 장애인을 위해 디자인된 정말 특수한 형태도 있고,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쓸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도 있지 않나. 그러나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특수한 지원’만 있었다.”
—주호민 사건 등 최근 학교 현장이 ‘법적 공방의 장’으로 변했다.
“지금은 장애학생 학부모, 특수교사, 일반 과목 교사, 비장애학생, 비장애학생 학부모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각자 못 살겠다’는 장벽에 갇힌 채 ‘공동의 문제 해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악순환이다. 우리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란 어리석은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2023년부터 수면 위로 올라온 학교 관련 사건들을 보면 서이초 사건을 제외하고는 사실 장애와 관련한 것이 많았다. 특수교육과 통합교육의 경계에서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법적 공방으로 비화하면서 서로 큰 상처를 주고 끝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반복된다는 건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그 구조를 영속화하는 인식이 있다는 거다. 그런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환기시키고 싶다.”
약자끼리 상처 주고 끝내기, 이제 그만
—학교 현장의 장애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내가 처음 교사가 됐을 때, 학교가 제도적·예산적·인식적으로 장애교사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그런데 나도 직장에서 당연히 ‘사회적 관계’가 필요하지 않나. 근데 동료 교사들과 교류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마다 특수학급에 놀러 갔다. 마치 내가 특수교육 대상 학생인 것처럼. 그때 얘기 나누던 특수 선생님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이제는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일반학교에서 아직 장애란 개념은 생소하다. 동료 교사조차 낯설어하니 장애 학부모와 학생은 더 암담할 거다. 그래서 특수교육 대상 학부모들은 특수교사에게만 죽어라 매달린다. 그런데 특수교사로서도 한계가 있으니 문제가 발생한다. 특수교육 경계에서 나타나는 일들은 ‘모든 학교 구성원의 문제’인데, ‘그들만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주호민 사건’만 봐도 관련 문제들이 악마화돼서 극적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이걸 ‘모두의 문제’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서로 오해와 갈등이 쌓이고, 사안이 단순화되고 있다.”
—‘주호민 사건’을 보면 9살 된 어린 장애아동이 바지를 내리는 행동을 했을 때, 비장애학생 학부모가 분리조치를 요구하자 학교가 이를 그냥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
“맞다. 분리조치를 했는데 그 분리조치하는 공간이 특수학급이었다. 당시 특수교사가 요구한 것들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냥 모든 게 다 특수교사의 업무로 떠넘겨졌다. 이상적으로는, 해당 담임선생님이 더 교육적으로 정리하는 책임 의식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이게 ‘학교폭력 문제’로 다뤄지다가 ‘특수교육 문제’로 다뤄지면서 갑자기 회의 주체가 특수교사가 되고 특수학급의 일이 돼버렸다.”
—학교 현장에서 이런 여러 갈등이 나오는데, 그럼에도 왜 통합교육이 필요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사람들은 없어지지도 않고, 숨긴다고 해서 감춰지지도 않는다.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존재한다’는 걸 학교 구성원들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받아들이고, 교육현장을 거기에 맞춰나가야 하는 거다. 건물을 만들 때 가급적 경사로를 놓고 문턱을 없애야 하는 이유랑 같다. 휠체어 장애인이나 유아차가 없다고 전제하고 만든 건물에 나중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고치기가 힘들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본값을 전제해 사회제도나 공식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장애학생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아이가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는 데까지도 굉장히 많은 투쟁을 해야 했는데, 일반학급에서 문제 행동을 하면 바로 특수학급으로 추방당하는 걸 지켜보는 거다. 이건 ‘분리’고 ‘격리’다. 그러다 장애학생이 학교를 옮기는 것은 겉보기에는 ‘선택’ 같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그냥 ‘떠밀려’ 계속 더 외곽으로 가는 것이다.”
—특수교육이 부분적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의 방향성 문제라고 했는데.
“우리가 늘 얘기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상위 15%를 위한 교육이다. 모든 학교의 자원이 거기서부터 순차적으로 배분되는 구조다. 이제는 상위 15%가 아니라 ‘특별한 요구가 있는 학생 15%’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학교 행정과 수업적 자원 분배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 완전히 혁명적인 거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문제가 계속 재발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특수교사들이 한 학교에 1명 혹은 2명이 있는데 그 소수를 갖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풀리지 않는다. 사실 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교사의 관심’인데 이 교사의 관심은 한정적이다. 관심, 예산, 교장의 중점 등 공교육의 방향성을 완전히 재설계해야 문제가 풀린다. 특별한 요구가 있는 학생들 실태를 더 적극적으로 파악해 지원책을 다 함께 마련해야 하는데, 이걸 자꾸 ‘장애학생만의 문제’ ‘특수교육의 문제’로 풀려고 한다. 공교육의 지향점에 대한 이야기를 ‘특수학급의 문제’로 축소 환원하니까 그 언저리에서 계속 문제가 터져 나온다.”
상위 15% 위한 공교육 구조 뒤집어야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지금 공교육의 중요한 역할은 뭔가.
“세상의 요구가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해졌다. 지금의 공교육은 세상의 다양한 요구를 받아내야 한다. 그런데 실제 현장은 그런 목소리들을 반영할 만한 구조가 안 돼 있다.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이다. 최중증도 장애학생부터 특목고를 다니는 학생까지 계급으로 나누자면 10단계도 넘는 계급이 있는 것 같다. 또 비장애학생이라 하더라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 어중간하게 하는 학생, 그냥 잘 따라가는 학생, 아주 잘하는 학생 이런 식으로 다양하다. 거주지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도 크게 다르다. 공교육이 이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 사실 ‘장애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다. 장애가 어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조건들을 아주 극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장애를 이해하는 건 굉장히 깊은 수준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학교 현장에선 그런 이해를 장려하는 것이 ‘인센티브’가 아니라 ‘패널티’가 되고 있다.”
—예산도, 지원도, 이해도 부족한 통합교육 시스템 탓에 일반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이 오히려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교육이라는 건 곧 관계의 총합이다. 또래 관계, 학생·교사 간의 관계, 교사·학부모의 관계, 부모·학생 간 관계. 이 총합이 교육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적 측면도 있지만, 특히 날 선 예민함을 가진 사춘기의 10대에겐 이 관계가 중요하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내가 환영받는지, 권력관계에서 최하위에 있는지’ 등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그게 안정적이지 않으면 학습이고 뭐고 안 된다. 그래서 장애학생은 또래 관계에서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느끼기도 하고, 장애에 대해 자각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한다. 당연히 저도 겪었다. 그런데 이럴 때 ‘어떻게 나의 정체성이 조화롭게 받아들여지는가’, 즉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선생님부터 시작해 동료 학생들이 이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본인의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내면화되고, 자의식이 과해지고, 열등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호응과 지지, 문화가 중요하다.”
—어떤 학교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가.
“살면서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걸 언제 가장 덜 느꼈냐면 통번역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사실 언어가 다르다는 건, 일종의 장애다. 그래서 다양한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가 다른 다양성 속에 있다고 느꼈다. 전공 언어마다 문화도 배경도 조금씩 달랐다. 통번역을 하는 사람들에겐 이질적 문화가 익숙해, 차별을 경험하지 않았고 관계도 인위적이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 느낌이었다. 나는 이 ‘이질적 문화를 환영하는 태도’가 학교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폐쇄적인 걸로 악명높은 공간이지만, 다원화된 사회를 이제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양성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야 할 때다. 자꾸만 특수교육 문제를 ‘법정 의무 교육’ ‘장애에 대한 윤리적 이해’ 이런 식으로 풀려고 하는데, 그렇게 강제적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서로 다른 인간을 보고 이해할 때 재밌지, 맨날 다 비슷한 사람들만 있으면 뭐가 재미있겠나. 예를 들면 학교는 ‘설사 물리적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학교라 할지라도 우리 학교는 장애학생인 너를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우리는 계단도 많고 엘리베이터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를 초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일단 초대하고, 방법을 찾아내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2017년 구룡중에 근무할 때 학생들이 사회현안 해결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 출퇴근길(구룡역부터 학교까지)에 점자 보도블록이 깔리게 시스템을 변화시킨 일이 있다. 그게 진짜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교육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누구나 신나고 재미있는 통합교육 위해
—또 학생들과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나는 오른쪽 눈이 먼저 실명돼 양쪽 동공 색깔이 다르다. 그래서 예전엔 한쪽 눈엔 홍채 렌즈라는 걸 끼고 다녔다. 티를 안 내려고 한 거다. 대학 갈 때 착용하기 시작해서 13년 동안 착용했다. 엄청 건조하고 눈이 아팠다. 당시 여자친구인 지금의 아내도 ‘안 껴도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안 끼게 된 계기가, 어느 날 눈이 너무 아파 렌즈를 안 끼고 학교에 갔는데, 그때 아이들이 한 말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괜히 자의식이 발동해 아이들한테 ‘선생님이 오늘 눈이 아파 렌즈를 못 끼고 왔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얘기했는데, 수업을 평소에 잘 안 듣던 뒷자리 여학생이 ‘그냥 앞으로도 끼지 마세요’ 하는 거다. 왜냐고 물으니 ‘아프잖아요’라고 했다. 그래서 반에서 제일 짓궂은 남학생한테 가서도 일부러 물어봤더니, 그 학생이 무심한 말투로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그게 선생님 매력이죠’ 하는 거다. ‘이놈 봐라.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진짜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나서부턴 렌즈를 안 낀다. 아이들이 괜찮다는데 동료나 학부모가 보는 시선이 뭐가 중요하겠나. 남의 시선으로부터 좀 해방돼 내 장애를 받아들이게 됐다.”
—학교 현장에 대해 더 알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서 ‘부정’하는 단계는 지났고 ‘인정’까지는 온 것 같다. 그런데 장애인을 ‘인정’은 하되 ‘긍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사회가 장애 문제를 ‘법, 의무, 책임’으로만 풀 게 아니라 ‘다양성’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어쩌면 ‘긍정’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야 사람들이 신나고 재밌어서 서로 통합교육을 하려고 하지, ‘누구 책임이냐’며 서로 악다구니만 쓰면 누가 하려고 하겠나. 장애라는 게 사실 참 비극이다. 나는 특히 보이지 않는 채로 아이를 키우면서 ‘가급적 인생에서 장애를 갖다 버릴 수 있다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갖다 버릴 수가 없지 않나.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좀더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고, 나는 그걸 해내는 게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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