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자 서민은 왜 트럼프를 뽑았나 [데이터로 읽는 미국 대선]

11월5일 오후 10시, 조금씩 해리스 후보의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가슴 한 곳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해리스가 패해서가 아니라 여론조사의 문제점이 또다시 드러나서였다.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정치를 연구하는 필자의 생업이 부정당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선거 결과를 복기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가 예측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선거 후 민심 이해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과 데이터는 미국 정치와 유권자의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 현실을 하나씩 짚어보자.
〈그림 1〉은 이번 대선을 하나로 정확히 요약한다. 올해 전 세계 모든 선거에서 집권당은 예외 없이 득표율이 떨어졌다. 1950년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1980년대 인플레이션 위기 때도, 집권당들이 이렇게 참패해본 적은 없다. 올해 미국 선거 결과의 붉은 점을 보면, 그나마 전 세계 집권당 중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여준다. 반(反)트럼프 진영이 최대 결집했지만, 전 세계적 인플레에 따른 집권당에 대한 불만을 이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선거가 여러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트럼프 지지세 확대가 전국 모든 곳에서 골고루 모든 유권자 그룹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인종, 성별, 교육수준, 소득수준, 종교, 이념, 도시·농촌 거주 여부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유권자 그룹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증가했다. 민주당을 승리로 견인할 거라 여겨졌던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 유색인종 여성, 젊은 여성 모두 2020년에 비해 민주당 이탈 현상이 뚜렷했다.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트럼프 지지 증가세는 다른 지역보다 더 가파른 모양새다. 전국 50개 주에서 유타와 워싱턴주를 제외하고 모두 트럼프 지지율이 올랐다.
민주당에서 가장 뼈아파 하는 부분은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의 이탈이다. 가장 큰 이탈은 라틴계에서 나타났다. 라틴계 유권자 사이에서 바이든의 득표율은 트럼프보다 28%포인트 높았지만, 해리스의 승리 폭은 13%포인트로 반토막 났다. 8년 전 트럼프를 지지하던 라틴계 유권자는 29%에 불과했지만 올해 42%까지 성장했다. 흑인 유권자 사이에서 해리스의 압도적 우위는 여전했지만, 각론을 보면 다르다. 4년 전 흑인의 트럼프 지지율은 8%였지만, 올해는 16%이다. 두 배로 늘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종 재정렬’이라고 평하기까지 한다.
저소득층의 이탈은 더 드라마틱하다. 최근 30년 사이 처음으로 저소득층이 공화당에 더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다. 〈그림 2〉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자리를 바꾼 모습을 명확히 보여준다. 1996년만 하더라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저소득층과 교육수준이 낮은 유권자에게 지지를 받았고, 밥 돌 후보는 고소득층과 교육수준이 높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다. 28년 후, 트럼프와 해리스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민주당이 대학 교육을 받은 유권자의 지지를 더 받게 된 건 2016년부터라 하더라도, 저소득층의 지지를 빼앗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권자는 ‘정책’만 보고 투표하지 않았다
이런 패배를 두고 민주당 정치인들과 진보 성향 언론인들은 민주당이 노동자 지지를 받는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심지어 한국 내 진보 성향의 언론인이나 교수들도 미국 민주당이 엘리트 정당이라며 노동자 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엄준하게 꾸짖는다. 그러나 이런 노동자·서민을 강조해야 한다는 구호에는 ‘어떻게’가 빠져 있다. 노동자 계층을 돕는 정책을 추진하면 그들이 자연스레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부터 검토하지 않는 이상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좋은 정책이 지지를 불러오지 않는다. 현대 미국 정치의 네 가지 장면을 검토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미국 최대 운수노조인 팀스터스 노조가 해리스 지지를 포기했다. 노조 지도부는 기층 노조원들의 트럼프 지지가 뚜렷하다는 이유로 해리스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의 노조 친화적 기조가 그저 구호에 달했다면 기층 노조원들과 지도부의 선택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위기에 빠진 팀스터스 노조의 연금펀드에 공적자금 50조원을 투입했다. 굉장히 큰돈을 팀스터스 노조원을 위해 투자했음에도, 팀스터스 노조원도 지도부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결론 내렸다. 노조를 위한 정책은 표로 이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장면은 테네시주 서부에 위치한 헤이우드카운티에서 펼쳐진다. 한국에서 IRA로 알려진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미국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자동차 공장 설립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포드는 헤이우드카운티의 스탠턴에 7조8000억원을 투자해 6000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인구 1만7000여 명인 헤이우드카운티에는 상당히 큰 투자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4년 전에 비해 얼마나 지지율이 올랐을까?
민주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예전에 비해 감소했다. 그것도 큰 폭으로 줄었다. 2020년 바이든은 8.9%포인트 차이로 승리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는 0.4%포인트로 겨우 이겼다. 민주당이 700여 표를 잃는 사이, 공화당은 50여 표를 추가했다. 일자리 창출로 노동자들에게 표를 얻으려던 정책은 지지율 감소라는 결과로 끝났다. 테네시 상황을 잘 아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이 지역 공화당 정치인들이 전기자동차 공장의 부정적 면모만 강조했다. 지역 주민들은 전기자동차 공장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며 민주당이 표를 벌기 위한 흉내만 낸다고 믿었다고 한다. 공화당이 백악관과 상하원 승리를 거머쥠에 따라 결과적으로 IRA의 운명은 불투명해졌다.
세 번째 장면은 오바마케어와 농촌 병원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한국의 지방 병원처럼 미국의 농촌 병원도 경영난에 시달린다. 2010년 이후 농촌 병원 136개가 문을 닫았고, 추가로 700개 병원이 폐원 위기에 처해 있다. 오바마케어는 저소득층의 건강보험 접근성을 늘려주는 메디케이드 확대 정책을 담고 있어서 농촌 병원의 경영 상황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집권하는 여러 주들이 이념적 이유로 오바마케어 정책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주들은 오바마케어 정책을 수용한 주에 비해 농촌 병원 폐업률이 3.3배 이상 높았다. 주지사와 주의회의 잘못된 선택이 농촌 지역 주민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농촌 병원 폐업을 겪은 유권자들은 주지사와 주의회를 심판했을까? 아니다. 민주당을 심판했다. 미시간 대학 마이클 셰퍼드 교수 연구에 따르면, 농촌 폐업 병원이 있는 주변 지역에서 민주당은 1%포인트 정도 지지율을 잃고 그 지지율은 트럼프에게 갔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지사와 주의회는 지지율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주정부의 잘못된 선택의 책임을 연방정부에 떠안긴 모양새다.
마지막 장면은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와 해리스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 결과에서 볼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여론조사로 트럼프와 해리스의 정책을 ‘블라인드 테스트’했다. 후보 이름 없이 정책만 놓고 어느 정책이 더 인기 있는지 시험했다. 결과는? 〈그림 3〉에 따르면, 해리스의 정책 대부분은 과반 지지를 받은 데 비해, 트럼프는 절반 가까이가 과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해리스 정책의 16개가 75% 이상 지지를 받은 데 비해, 트럼프는 겨우 4개 정책만 75% 이상 지지를 받았다. 블라인드 테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도 해리스 정책의 절반 이상을 50% 넘게 지지했다. 정책만 놓고 본다면 민주당이 승리해야 하는 선거였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은 정책만 보고 투표하지 않았다.

노동자 계층을 위한 정책이 지지를 이끌어내지 않는다면 무엇이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가? 정치학자와 언론인이 오래 물어온 질문이다. 토머스 프랭크라는 언론인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책을 통해 문화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백인 노동자 계층은 문화적 이슈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선호하고 이에 따라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정치학자들도 미국 유권자의 투표 행태는 자기 이익보다 ‘상징적’인 것들에 대한 입장에 좌우된다고 분석했다. 흑인·불법이민자·여성·부자·기업과 같은 추상화된 상징에 대해 유권자가 평소 어떤 성향을 갖느냐에 따라 투표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서민 대변하는 정당이 되려면
트럼프 이후 미국 정치는 정체성 그리고 ‘상징’을 둘러싼 정치가 더욱더 극대화되었다. 필자가 3년 전 기고(〈시사IN〉 제697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인종주의야’ 기사 참조)에서 트럼프 지지 요인을 분석한 것처럼 인종에 대한 태도가 트럼프 지지자와 비지지자를 구분하는 예측력이 가장 높은 변수다. 미국의 20대 남성을 분석한 기고(〈시사IN〉 제889호 ‘20대 남자 현상, 미국에도 있다’ 기사 참조)에서 밝힌 것처럼 ‘적대적 성차별주의’도 트럼프 지지자에 대한 예측력이 높은 변수다. 정책 지지는 트럼프 지지에 큰 예측력을 가지지 못한다. 이와 같은 분석이 트럼프 지지자를 인종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로 명명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지지자와 비지지자를 구분하는 것은 인종이나 젠더와 같은 문화적 요인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서 봐야 한다.
이런 현실은 미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 큰 숙제를 안겨준다. 노동자 계층은 전통적으로 인종, 젠더, LGBTQ(성소수자) 이슈 등에서 보수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노동자 계층이 민주당을 꾸준히 지지하던 1990년대에도, 아니 시간을 더 거슬러 미국 내전 이전에도 이들은 문화적 이슈에 보수적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진보적 이해집단을 아우르는 연합정당 성격을 띠는 민주당이 이러한 이슈에 보수적 입장을 갖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는 이민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이슈에 선명한 보수 색깔을 보여줌으로써 노동자의 지지를 결집할 수 있었다. 인종, 젠더 같은 이슈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이런 행보에 반발하면서 민주당으로 결집해 오늘날 미국 정치의 구도가 형성됐다.
2020년 바이든은 대선에 임하면서 나름의 이론을 제시했다. 미국 노동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제조업 고용을 늘린다면 노동자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4년 후 민주당은 노동자 지지 이탈이 더 가속화한 모습을 보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2008년 오바마 캠프와 같이 백인 노동자와 유색인종의 연합을 회복한다는 목표만 있지, 구체적인 실행법은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 정치학의 대가 래리 바텔스(벤더빌트 대학)와 크리스토퍼 에이큰(프린스턴 대학)은 〈현실주의자를 위한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잘못됐음을 지적한다. 현직 대통령의 정책과 실적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집권당이 책임을 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나이브하며, 대부분의 유권자는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기 때문에 많은 민주주의 정부들이 대중의 선호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번 대선을 인플레이션에 대한 심판 성격으로 봤을 때는 이 책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지난 4년간 정책적 노력에 유권자들이 보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유권자가 정체성을 따라 투표한다고 민주주의를 회의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정치인들이 노동자·서민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고장 난 것과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가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인”이라는 사실을 높게 친다. 정치 불신이 바로 트럼프 지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불신이 바로 오늘날 미국 노동자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였던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정책이 아닌 노동자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4년 뒤 그 정체성을 이해하는 정치인이 나온다면 ‘오바마 연합’의 회복도 가능할 것이다.
국승민 (미시간 주립대학 정치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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