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억 달러’ 청구서 외면한 선진국들…내년도 기후총회서 ‘전환’ 이룰까

최원형 기자 2024. 11. 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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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결산
기후재원 ‘선진국 3천억달러’ 합의에 비판 잇따라
화석연료 감축 등 주요 의제 실종…‘국제 탄소시장’만 성과
24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한 활동가가 기후재원 마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에이피 연합뉴스

“부자 세계는 바쿠에서 ‘대탈주’를 감행했다.”

지난 24일(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폐막한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 대해 케냐의 기후운동가 모하메드 아도우가 던진 평가는, 이번 기후총회의 결과가 ‘실패’에 가깝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총회는 지구 평균 온도가 파리협정에서 정한 ‘1.5도 목표’를 넘어선 첫 해에 열리는 데다, 가장 본질적인 ‘돈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중요한 무대였다. 그럼에도 이전 그 어떤 총회보다도 주목받지 못했다. 3연속으로 ‘석유국가’가 주관하는 기후총회에 대한 비판과 회의, 기후변화 반대론자의 대통령 당선에 따른 세계 최강국의 ‘이탈’ 전망, 기후총회와 같은 시기에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 총회가 1주일 지났을 때, 아제르바이잔에서 막혀 있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 브라질에서 진행되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무어라 말하는지에 주목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확고히 굳힌 것은, 아도우의 말대로 “ 테이블에 실제 돈을 올려놓지도 않은 채 ‘자금을 동원하겠다’며 모호하고 책임질 수 없는 약속으로 자신들의 의무를 저버린” 선진국들이었다.

‘선진국 3천억달러’의 의미

이번 총회에서 합의한, “2035년까지 연간 1조3천억달러 규모로 기후재원을 확대한다”는 목표 자체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요청으로 기후재원을 연구해온 ‘기후재원에 대한 독립적인 고위 전문가 그룹’(IHLEG)이 이번 총회에 맞춰 내놓았던 분석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들은 14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지구적인 기후행동을 위해 요구되는 투자 규모를 “2030년까지 연간 6조3천억~6조7천억달러”라고 분석하고, 여기에 쓰일 기후재원을 “2030년까지 연간 1조달러 마련해 2035년까지 1조3천억달러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간 1조3천억달러’라는 양적 목표와 ‘2035년까지’라는 시한이 최종 합의 내용과 같다.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선진국이 기여해야 할 몫이다. 의장국은 지난 22일 협상을 위한 초안에서 전체 1조3천억달러 목표를 제시하며 이중 선진국 기여분을 “2035년까지 연간 최소 2500억달러”로 제시했는데, 당시 보고서 저자들은 전체 목표는 환영하면서도 선진국 기여분은 “너무 낮고 파리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경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신들은 전체 기후재원 중 선진국이 “2030년까지 최소 3천억달러, 2035년까지 3900억달러”를 제공해야 한다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 합의는 “2035년까지 최소 3천억달러”로 이뤄졌다. 전체 재원의 규모와 시한은 동일한데, 선진국 책임이 되어야 할 몫만 연간 900억달러 줄어든 결과다. 애초 개발도상국들의 요구는 “2030년까지 5천억달러”였다.

최종 합의는 여러 다른 방식으로도 선진국의 부담을 희석시켰다. 기후재원 마련을 위해 “모든 행위자(all actors)가 협력”한다고 명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뼈대를 이루는 파리협정 9조는 “선진국 당사자는 개발도상국 당사자에게 (기후 대응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기후재원을 조달할 책임을 은근슬쩍 ‘선진국’에서 ‘모든 행위자’로 돌린 셈이다. 선진국이 오롯이 책임져야 할 기여분인 ‘3천억달러’에 대해서도 ‘제공한다’(provide) 대신 ‘주도한다’(take the lead)고 명시했는데, 이 역시 선진국의 책임을 덜어주는 표현이다. 재원 조달의 방식으로 공공·민간, 양자·다자 등을 가리지 않고 “대안적 자원들”(alternative sources)을 활용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후재원 가운데 선진국 정부들이 책임져야 할 몫 자체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민간에서 높은 이자율로 대출을 해준 것까지 개발도상국에 조달해준 ‘기후재원’으로 셈할 우려가 있다.

24일 기후재원 관련 협상에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연설에 나선 찬드리 라이나 인도 대표의 모습. 부족한 기후재원 합의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연설로 박수를 받았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슬아슬한 중국의 지위

기후재원 마련 책임을 부담스러워 했던 선진국들은 이번 총회에서 중국을 끌어들이고 싶어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것은 전세계 배출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같은 신흥 경제국들이다. 그러니 새롭게 기후재원을 부담하는 등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산업화 시대를 만든 선진국들에게 ‘역사적’ 책임을 묻기 때문에 일부 선진국들(부속서 II)에게만 재원 부담의 책임을 지우고 있고, 올해 총회에서도 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기후재원 관련 최종 합의를 보면, “개발도상국 당사국이 ‘남-남 협력’(개발도상국끼리의 지원)을 포함해 자발적으로 기여를 하도록 장려한다”고 명시하고, “(기후재원 참여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당사국의 개발 또는 수혜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의무를 부과하지 않을테니, 중국 등은 여태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자발적으로 기후재원을 많이 제공해달라는 것이다.

이번 총회에선 앞으로 중국의 지위 변화를 암시하는 분석 결과가 발표되어 관심을 모았다. 기후단체 ‘카본브리프’는 19일 “중국의 ‘역사적’ 배출량이 현재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국내 배출량을 따져봤을 때, 2023년 기준 중국은 3120억톤(이산화탄소톤)을 배출해 유럽연합(3030억톤)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원칙인 ‘역사적’ 책임으로 따지더라도, 중국이 예전처럼 ‘책임 없는’ 지위를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보여준다. 다만 국가 전체가 아닌 1인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중국의 14억 인구는 1인당 2270억톤을 배출했는데, 이는 유럽연합(6820억톤), 미국(1조5700억톤)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인식해서인지 이번 기후총회에서 중국의 움직임은 신중했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영국 비비시(BBC)는 올해 기후총회를 결산하는 보도에서 ‘중국’을 주요 항목으로 꼽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이 나라는 이번 총회에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개발도상국에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기후재원 규모에 대한 세부 정보를 처음 공개했을 뿐”이라고 짚었다. “전반적으로 매우 능숙하고 효과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평가다.

중국, 유럽연합, 미국의 ‘역사적’ 배출량 추이를 나타낸 ‘카본브리프’ 그래프. 누리집 갈무리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은 어디로

이번 기후총회에선 지난해 총회와 달리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ing away)과 관련해 새로운 발표는 거의 없었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영국, 콜롬비아, 우간다 등 25개국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 금지를 반영하고, 다른 나라에도 이런 조치를 촉구한 정도다.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국가 연합’에 영국와 뉴질랜드, 콜롬비아가 새로 합류하기도 했다.

지난해 실시한 1차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 이후 후속 조치에 대한 논의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행점검의 절차와 관련한 부분에서 당사국들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내년 6월 부속기구회의에서 다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내년 2월까지 당사국들이 제출해야 하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관련해선, 애초 예상과 달리 대부분의 국가가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 총회 기간 중 제출한 국가는 영국과 아랍에미리트, 브라질 등으로 모두 최근 기후총회 의장국들이다. 다만 총회 기간 중 ‘1.5도 경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선언’이 출범해 관련 논의가 촉진될지 관심을 모은다. 이 선언은 각국이 2035년 목표를, 파리협정의 1.5도 목표를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각국이 2035년 목표를 ‘2019년 대비 평균 60% 감축’으로 수립해야한다고 한 바 있는데, 이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서약에 동참한 나라는 유럽연합과 캐나다, 칠레, 멕시코, 조지아, 노르웨이, 스위스 등이다. 이미 탄소중립을 달성한 5개국(수리남, 파나마, 부탄, 마다가스카르)도 관련 성명을 내놨다.

24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기후총회 속 중국관의 모습. 연합뉴스

출발신호만 남은 국제 탄소시장

국제 탄소시장과 관련해선 이번 총회를 통해 시장이 작동할 기본조건이 모두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제시된 국제 탄소시장의 틀이 거의 10년 만에 마무리된 것으로, “출발신호만 남은” 셈이다.

탄소시장은 파리협정 6조에 규정돼 있는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거래하고, 이 거래를 위한 시장을 설립하는 내용이다. 탄소시장과 관련해서도 선진국과 개도국의 견해차가 있었는데, 실적이 과다발행되거나 해당 지역에 오히려 피해를 끼치는 문제가 감춰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총회에선 이런 실적 거래에 필요한 지침과 실적 등록부를 운영하는 방식, 거래보고 방식 등이 합의됐다.

국제 탄소시장이 아직 출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국가들은 다자, 양자 간 합의를 통해 감축실적 이행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고 있다. 일본, 싱가포르, 스위스 등이 주도적이고 한국도 2030년 감축목표 중 11.5%에 해당하는 3750만톤을 이 국제감축으로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탄소시장 합의가 졸속으로 이뤄졌단 지적도 있다. 비영리 탄소시장 감시단체인 카본마켓워치는 “위험할 정도로 느슨하고 불투명하며, 무분별한 사용을 조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녹색당도 성명에서 “지구 북반구 국가와 기업들이 남반구의 숲과 습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탄소 배출을 ‘상쇄’받는 전형적인 ‘가짜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탄소시장이 “돈으로 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구매하는, 또 하나의 식민주의”라는 것이다.

한국, ‘배터리 6배 확대’ 등 5개 서약 참여

이번 총회에선 기후행동을 촉진하는 14개의 선언이 발표됐는데, 개중 5개에 우리나라 정부가 참여했다. ‘에너지저장(ESS) 및 전력망 서약’과 함께 수소 선언, 유기성 폐자원 분야 메탄 저감 선언, 물 선언 등이다. 에너지저장 및 전력망 서약은 2022년 250기가와트(GW) 규모인 전 세계 에너지저장장치를 2030년까지 6배 늘린 1500GW로 확충하고, 전력망은 2040년까지 8천만㎞ 길이를 추가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총회에서 발표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서약의 연장선으로, 재생에너지의 전력생산이 일정치 않은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총회 중반인 15일 의장국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해 영국, 우루과이, 벨기에, 스웨덴 등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한국이 이 서약에 동참함에 따라 에너지저장장치를 대규모로 확대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한국의 에너지저장장치 누적 보급량은 2022년 기준 4.1GW로, 서약대로면 2030년까지 25GW로 늘려야 한다. 정부는 앞으로 태양광 등에 에너지저장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총회에서 미국 프랑스 등 22개 국가들이 2050년까지 세계 원전용량을 3배로 늘리는 확대 선언에 참여했는데, 이번 총회 기간까지 추가로 9개국이 참여해 31개로 늘었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은 “원전을 대하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도했지만, 최근 참여국 가운데 튀르키예가 원전 1개를 건설 중일 뿐, 모두 현재 원전이 전혀 없는 나라들이어서 장밋빛 약속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마클럽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공개 서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 유력 인사들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후총회는 과연 ‘전환’할 수 있을까

해마다 제기되던 기후총회 자체에 대한 비판 역시 올해 정점에 이르렀다. 해를 거듭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총회 시스템에 실망한 파푸아뉴기니 같은 나라는 애초부터 “시간 낭비”라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총회 개막에 일주일 앞선 지난 4일, 멕시코에서는 기후총회를 반대하는 ‘반기후총회’(AntiCOP)도 열렸다. 올해 총회는 특히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3연속으로 ‘석유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데다, 의장국 스스로 ‘화석연료 감축’을 말하긴커녕 그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 더 큰 비판을 불렀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화석연료 산업 로비스트가 1770명이나 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총회 개막 뒤인 15일 상드린 딕손-드클레브 로마클럽 공동의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환경과학자 요한 록스트룀 등 국제사회 유력인사들이 총회가 “더 이상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며 “전면적으로 개혁하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띄운 것은 이번 총회의 상징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볼 만하다. 이들은 표면적인 비판에 그치지 않고, “화석 에너지의 단계적 퇴출 또는 화석 에너지로부터의 전환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들은 의장국 선정에서 배제해야 한다”, “로비스트를 막기 위해 참석자들 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기후재원의 자격에 대한 정의를 표준화하고 그 흐름을 검증·추적해야 한다” 등의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비판들에 더해, 개발도상국들이 마지못해 합의하면서도 비판을 쏟아냈던 이번 총회의 최종 결과는 기후총회 시스템에 대한 각종 비판에 쐐기를 박을 전망이다. 총회 결과를 옹호하는 이들은 “합의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하지만, 합의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해 ‘보이콧’ 의사를 밝힌 파푸아뉴기니 쪽이 지적한 것처럼, 해마다 합의는 하지만 실질적으론 기후대응이 “헛돌기만”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내년 기후총회의 의장국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내년 총회를 ‘전환’(trasition)의 총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브라질은 1992년 오늘날 전세계 기후대응의 기본틀인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됐던 상징적인 장소다. 30번째 기후총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30차 총회는 지속가능한 숲과 그속의 삶이 전세계 온실가스 감축에 달려있는 ‘아마존의 도시’ 벨렝에서 열린다. 과연 앞으로의 기후총회는 제대로 된 기후대응을 촉진할 수 있도록, ‘전환’할 수 있을까?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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