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의 명사산행 | 탤런트 박상원] "연기자의 길은 산행과 많이 닮아 있어요"

신준범 2024. 11. 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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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5,300m BC까지 거뜬히 오를 정도의 연예계 만능 스포츠맨
북한산 산행을 함께한 탤런트 박상원(왼쪽)씨와 엄홍길 대장.

서울 은평구 불광동 북한산 입구에 중절모를 쓴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등산객들이 "탤런트 박상원씨 맞죠?", "아니 엄 대장님이 북한산에도 옵니까?" 하며 악수를 청한다.

엄홍길 대장과 탤런트 박상원(55)씨가 불광동 북한산 입구를 찾았다. TV에서 모 정장브랜드의 모델로 오랫동안 봐온 탓인지 등산복을 입은 모습이 낯설다. 하지만 TV에서 봐왔던 그의 호감 가는 미소는 익숙해 금방이라도 유명한 광고 카피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라고 얘기할 것만 같다. 한때 초등학생들이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 하고 묻는 시험문제에 대거 오답을 써냈을 정도로 그는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쌓아 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북한산 족두리봉, 365m로 낮지만 산행 시작부터 급경사다. 안정감 있는 걸음걸이에서 박상원씨의 산행 연륜이 느껴진다. 두 사람은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넘었다. 그는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이 창립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그에 앞서 2005년 엄홍길 대장이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망한 후배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나섰던 휴먼원정대를 응원코자 베이스캠프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 산간오지에 지은 여섯 번째 학교의 준공식에 아내와 함께 참가했다. 찻길도 없는 산간오지라 며칠간 산행을 했다. 변변한 화장실도 없이 텐트 생활을 해야 했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기 위해 묵묵히 걸었다. 엄 대장은 "박상원씨가 힘들고 험한 코스였는데도 너무 적응을 잘해서 놀랐다"며 "아이들과 교감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고 한다.

"히말라야에선 불편한 걸 즐겨야죠. 온종일 걷고 텐트에서 자더라도 거기 있다는 것 자체가 일류호텔보다 더 좋아요. 텐트에서 듣는 빗소리가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며칠을 트레킹하다 로지(숙소)에 왔는데, 화장실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놓치고 있었던 작은 행복을 히말라야에서 다시 찾았죠."

국내 유명산은 물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있는 해발고도 5,300m까지 오른 만만찮은 산행 실력의 박상원씨는 연예계에서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져 있다. 스키 패트롤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수준급의 스키 실력을 자랑하며, 패러글라이딩, 스킨스쿠버는 물론 철인3종 경기에 출전했을 정도다. 그는 "모두 다 연기 훈련을 위해 했던 것"이라 설명한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연기과 교수인 그는 1979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데뷔했고, 1986년 MBC 공채로 TV 화면에 얼굴을 선보였으며, '인간시장',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그대 그리고 나'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 족두리봉 정상에서 북한산의 시원한 경치를 즐기는 두 사람. 2 개나리처럼 환하게 웃는 박상원씨.

베테랑 연기자와 역전의 산악인이 북한산 족두리봉을 오른다. 낮은 산이라 해도 이들의 발걸음은 신중하다. 느리게 산을 걸으며 조금이라도 시야가 트인 곳에선 경치를 음미한다. 진달래가 곳곳에서 봄이 왔다고 일러 준다. 박상원 교수와 엄 대장의 배낭에는 천으로 꼬아 묶은 나일론 소재의 댕기 같은 것이 있다. 박 교수의 배낭에는 두 개가 달려 있는데, 네팔에서 받은 '행운의 부적'이라고 한다.

엄 대장은 "불경이 적힌 목도리인데 귀한 손님의 목에 걸어 주는 감사와 행운의 징표"라며 "네팔에 왔다고 다 주는 것이 아니라 네팔 사람들과 진심으로 교감을 나눠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네팔 언어로 '가다'라고 한다. 박 교수는 "가다도 보통 가다가 아닌 엄 대장님이 8,000m의 기운을 담아 직접 묶어 준 것"이라 자랑한다. 그는 산악회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서 가까운 청계산을 자주 찾는 편이라고 한다.

정상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화강암 덩어리라 해발고도보다 몇 배나 높은 고도감이다. 서울 시내가 발아래로 펼쳐지자 "역시 산에 오길 잘했다"며 박상원 교수가 환하게 웃는다. 지나온 산길을 바라보며 연기 인생을 되돌아본다.

"1979년 데뷔 작품은 우리나라 첫번째 대중뮤지컬이었어요. 당시 유인촌 선배가 주인공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단역이었던 제가 주연을 맡게 됐어요. 굉장히 운이 좋았죠. 이후 무용을 했는데 제가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 현대 무용수였어요."

그는 서울시 산하 시립가무단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연극을 하면서 고정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고 한다. TV에는 1987년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했다. 당시 베스트셀러극장은 신인들의 등용문이기도 했지만 "출연해서 잘 되면 스타가 되고 실패하면 연기인생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출연한 '강'은 그해 베스트셀러극장 베스트5 안에 들 정도로 인기를 끌어 스타탄생을 예고했다.

박상원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은 1988년 MBC 드라마 '인간시장'이었다. 그의 연기실력을 세상에 알린 건 1991년 MBC 드리마 '여명의 눈동자'였고, 그를 스타 연기자로 자리 잡게 한 건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였다. 이밖에도 역대 TV 시청률 최고 순위 10개 작품 중 4작품에 출연했을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1 진달래가 만개한 북한산을 찾은 탤런트 박상원씨와 엄홍길 대장. 2 정상에서 그를 알아본 등산객이 주는 오이를 받고 있다.

"제자들에게 산 이야기를 자주 해요. 땀 흘리지 않고, 고통 없이 정상에 설 수 없잖아요. 이런 과정을 거쳐 정상에 올라서면 엄청난 감동이 있다고요. 산 아래에서 보는 세상과 정상에서 3차원적인 시각으로 내려다보는 세상은 다르다고 말이죠. 그래서인지 산에 오면 예술적인 감성을 느끼고, 잊고 지내던 중요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KBS '희망로드 대장정'에 출연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 개발도상국을 둘러보고 왔다. 특히 몽골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환경 관련 파노라마 촬영차 다녀왔다. 그는 "울란바토르가 겨울에는 스모그로 꽉 차서 숨쉬기 어려울 정도"라며 "대부분의 집에서 질 낮은 연탄을 때는 통에 유독가스가 엄청나온다"고 한다. 때문에 도시 인구의 20~30%가 연탄가스 중독 상태라며, 개발도상국의 환경의식 전환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산행을 하면서도 거대한 송전탑이나 감시초소 같은 인위적인 시설물이 있을 때마다 "자연 경관을 해친다. 가급적 철거하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다.

요즘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그는 아직 2G폰을 사용한다. 번호도 '017'로 시작하는 10년이 넘은 번호 그대로다. 이에 대해 그는 "처음 017이 나왔을 때 광고모델이었기에 애정이 깊다"며 "017 번호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쓰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스마트하지 못해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큰 의미는 없다고 소탈하게 말한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족두리봉을 내려와 능선을 걷는다. 바위 사이에 똬리를 틀은 멋진 소나무만 나타나면 감탄을 금치 못하는 연기자 박상원씨다. 엄홍길 대장은 "박 교수는 워낙 자연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해 몇 년 전 영종도에 마당이 딸린 집을 장만했다"고 한다. 마당에는 직접 구입한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바닷바람 탓에 나무가 시들시들할 때마다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꿈 꿨던 공간이 지금의 영종도 집"이라며 "대학교 1학년 때의 대본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모든 대본이 이 집에 다 있다"고 한다. 자신이 꿈꿨던 마당과 연기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연기자의 길이 산행과 닮아 있다고 얘기한다. 산의 면적은 수백만 평인데 반해 정상은 아주 좁은 몇 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며 "1,000명 도전한다고 해도 다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참고 견뎌낸 자만이 오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산을 오르는 인고의 과정이 연기자의 길과 맞닿아 있다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즐겨 얘기한다.

1 엄홍길 휴먼재단이 히말라야에 짓는 학교 기공식에 참가한 박상원씨와 그의 아내를 비롯한 관계자들. 2 네팔 아이들과 함께한 박상원씨 부부.

연기자는 자기 캐릭터가 있어야

또한 그는 "연기자로 성공하려면 '자기 캐릭터'가 있어야 하는데 "자연이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른 것처럼, 연기자도 자기만의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연기에 대해선 늘 진지한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이든 장르나 역할에 상관없이 열려 있다고 한다. 다만 예전에 그가 출연했던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처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 한다.

그의 성공 이면에는 형제들의 지원이 있었다. 여러 형제 중 막내인 그는 1980년대 신인시절 형들에게 승용차를 사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서울의 방송국에서 버스로 새벽에 출발해 지방의 촬영 장소까지 가서 오전 10시에 자기 출연분 촬영을 마치고, 모든 촬영이 끝나는 담날 새벽 2시까지 남아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너무 비효율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형님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차를 사주었다. 그는 "르망 제일 싼 모델 340만 원짜리를 사달라고 했는데 제일 비싼 600만 원짜리 모델을 사주셨다"며 "형님들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연기자로 성공하여 형님들이 지원해 준 돈을 몇 배로 되갚았다.

탕춘대능선을 지나 구기동 쪽으로 길을 잡는다. 산행의 끝을 향해 다가간다. 남은 연기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자, 이런 질문 오랜만이라며 미소 짓는다.

"믿음이 가는 연기자로,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아직도 늘 부족하니까, 정말 신뢰가 가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죠. 30년 전 인터뷰 때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저 스스로 한 점 부끄럼 없는 것이 목표예요."

평일이라 인적이 뜸한 오후의 산길을 내려선다. 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산을 내려오니 이북5도청 앞이 벚꽃으로 화사하다. "소박하지만 정말 괜찮은 산행이었다"며 중년의 잘생긴 남자가 따스한 손으로 악수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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