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석의 매크로 리뷰 <8> 약세 통화된 韓 원화, 트럼프 충격 견딜 수 있나] ‘4만전자’ 만든 외국인 셀 코리아…‘환율 1400원 뉴노멀’ 굳어지나

정원석 선임기자 2024. 11. 2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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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재선 확정 이후 비트코인 거래 가격이 사상 첫 9만달러를 돌파하고, 다우존스 지수 등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트럼프 랠리’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달궈졌다. 일본, 독일, 프랑스 증시가 미 대선 후 3거래일 연속 상승했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이기간 1% 넘게 올랐다.

하지만 한국 금융시장은 외국인의 ‘셀 코리아(sell korea) 삭풍(朔風·겨울철 부는 강한 찬 바람)’을 맞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11월 15일 장중 2400 아래로 떨어지며 미 대선(11월 5일·이하 현지시각) 이후 6% 이상 하락했다. 코스피 대장주(株)인 삼성전자는 1088거래일 만에 ‘4만전자’가 됐다. 11월 13일 1410원으로 개장한 원·달러 환율도 1406.6원으로 오후 장을 마쳤다. 원화 가치 하락세가 멈추지 않자 외환 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11월 14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09원까지 올랐다. 외환 위기 트라우마를 자극했던 ‘환율 1400원’이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외국인, 삼성전자 주식 16조원 순매도

트럼프 재집권 확정 이전에도 한국 원화는 2024년 들어 가치 하락이 큰 통화 중 하나였다. 국제결제은행(BIS)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지수는 95.2 (2020년=100)로, 64개국 중 56위다. 타(他)국 화폐 대비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실효환율지수가 낮을수록 통화 약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국보다 실질환율지수가 낮은 나라는 전쟁 중이거나 통화 약세 정책을 지향한 일본(68.65), 중국(91.12), 태국(92.06), 말레이시아(94.08), 노르웨이(94.24), 튀르키예(94.26), 스웨덴(94.46), 이스라엘(95.12) 등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빅 컷(Big cut·0.50%포인트 금리 인하) 이후 원·달러 환율은 1307.8원(9월 30일)까지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트럼프 재선 가능성이 커진 10월 이후 상승(가치 하락) 폭을 키웠고, 미 대선 결과가 사실상 확정된 11월 6일은 1396원까지 치솟았다. 10월 1일부터 11월 13일까지 원화의 절하 폭(-6.5%)은 주요 통화 중 일본 엔화(-7.6%) 다음으로 컸다.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화(-2.5%), 관세 폭탄 위협을 받는 멕시코 페소화(-4.8%)보다도 통화 가치가 더 많이 떨어진 것이다. 미 대선 직후 절하 폭은 원화가 주요 통화 중 가장 크다.

이같이 가파른 원화 약세는 외국인 주식 매도와 맞닿아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11월 11일 사이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5조630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7월 11일 2891.35까지 올랐던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 매도 폭탄이 쏟아지면서 미 대선 이후 2500 아래로 떨어졌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주가는 이 기간 최고 8만300원(8월 16일)에서 4만9900원(11월 14일)까지 석 달 동안 40%가량 떨어졌다. 외국인이 삼성전자 주식을 16조원 이상 순매도하면서 유례 없는 주가 급락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 경제, 트럼프 노믹스에 취약” 인식 확산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등에 대한 외국인의 주식 순매도에서 비롯된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한다고 분석한다. △대미 무역 흑자국에 대한 고율 관세 △미국 내 생산 법인에 대한 법인세 인하 등 강달러를 유발하는 2기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 리스크에 한국 경제가 취약한 구조라고 판단한 외국인이 포트폴리오 축소 조정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골드만삭스가 11월 11일 발표한 ‘트럼프의관세 위협이 아시아 여러 국가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보고서는 이런 우려를 집약한다. 앤드루 틸턴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기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다소 줄었지만 다른 아시아 수출국에 대한 적자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면서 “트럼프와 2기 정부 인사가 (대미 흑자 규모가 큰) 한국,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국가에 ‘양자 적자’를 줄이기 위한 관세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독점적 지위를 기반으로 2023년 어느 나라보다도 큰 444억달러의 무역 흑자를 보고 있으며, 이 중 30%는 자동차에서 나온다”고 했다. 국제금융센터도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1~10월 기준 한국 무역에서 대중 무역 비중은 23.3%로, 미국과 유럽의 합계(25.3%)에 육박할 만큼 크다”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트럼프발(發) 보호무역주의 등 부정적 영향에 적극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상목(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월 14일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적극적 시장 안정 조치를 적기에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면서 구두 개입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원·달러 환율 1400원 저항선 붕괴

취약해진 한국의 거시경제지표 흐름도 외국인의 원화 매도를 촉발하고 있다. 종합 경제 성적표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분기 1.3% 깜짝 성장 이후 2분기(-0.2%), 3분기(0.1%) 연속 쇼크 수준의 뒷걸음질 중이다. 내수 부진이 길어지는 가운데, 성장 엔진인 수출 열기가 식어 외국인의 ‘패닉 셀(panic sell·공포에 의한 매도)’을 유발했다는 시각이 있다. 한국의 월평균 수출 증가율은 7월 13.5%로 정점을 찍은 후 9월(7.5%), 10월(4.6%)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11월에는 1~10일 수출액이 전년 대비 18% 감소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뚫고 올라가면서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기 때문에 4분기에는 1420원까지 올라갈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우려가 커지자, 11월 14일 최상목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긴급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를 개최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경우에는 적극적 시장 안정 조치를 적기에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면서 외환시장 구두 개입에 나섰다. 그러나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 1400원’이 안착한 후 나온 한발 늦은 대응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외국인의 ‘셀 코리아’ 강도가 강해진 배경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 후퇴가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우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수정 경제 전망을 발표한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연구원은 2024년 GDP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하향 조정했다. 3분기 GDP 성장률이 0.1%에 그친 충격으로 인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2~0.3%포인트씩 하향한 것이다.

내년 경제 전망은 올해보다 좋지 않다. 2025년 GDP 성장률을 한국은행은 2.1%, KDI와 금융연구원은 2.0%로 제시하며 종전 전망치를 0.1~0.2%포인트 낮췄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시각은 이보다 더 어둡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밝힌 주요 IB 여덟 곳 중 HSBC(1.9%), 노무라(1.9%), 바클레이스(1.8%), 시티(1.8%), JP모건(1.8%) 등 다섯 곳이 2%를 밑도는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했다. 만약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터지면 1%대 초반 성장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현대경제연구원이 11월 7일 발표한 ‘트럼프 노믹스 2.0과 한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2차 관세 전쟁’의 수준에 따라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최대 1.14%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악의 경우 0%대 성장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 전망대로라면 2023년 1.4% 성장에 그친 한국 경제는 2024년 잠재성장률(2.0% 내외) 부근의 성장세를 회복한 이후, 2025년 다시 추세 이하 성장으로 가라앉는다. 이에 대해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한국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성장 경로를 회복하지 못하고 한 단계 낮아진 성장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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