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야권 1위 후보, ‘대선 직행’ 못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2024. 11. 25. 09:01
[특집 | 이재명이 흔들린다] 대통령 임기 중반 ‘차기’ 조사 1등, 그 결과는?
놀랍게도 임기 중반 여론조사 1등이 최종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범보수의 경우 2000년대 이후 다섯 번의 대선을 놓고 보면 최종 후보는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두 명이다. 대통령에 당선한 사람은 2012년 박근혜 후보뿐이었다.
여론조사로 볼 때 대선후보 선출과 대통령 당선은 범보수와 범진보 모두 네 가지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2000년대 이전엔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 인물이 주요 정당의 최종 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했다. 둘째, 2000년대 이후 범보수에선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였던 이회창 전 총리(2002년)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2012)만 최종 후보를 꿰찼다. 박 전 대표는 그해 대통령에도 당선했다. 셋째, 2000년대 이후 범진보에선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는 아무도 최종 대선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넷째,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 또는 대통령 당선은 대부분 기존 인물 중에서 나왔다.
기존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한 것은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최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3월 검찰총장을 사퇴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당선했다. 범보수의 경우 이회창 전 총리가 1994년 4월 YS에 맞서 전격 사퇴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전 총리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총리 사퇴 직후부터 범보수 대표주자로 부각됐기 때문에 완전한 정치 신인은 아니었다. 2020년 총선 전후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차기 주자 1위였지만 최종 대선후보 선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범진보에선 1992년부터 지난 2022년까지 새로운 인물이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2002년 16대 대선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진행됐다. DJ는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민주당)을 창당했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주도하던 국민신당을 흡수 통합한 것이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선전하면서 주목받았던 이 전 지사의 대세론은 민주당 출범 후 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 지사 대세론은 엉뚱한 데서 균열되기 시작했다. 2002년 2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가 당권·대권 분리를 거부한 이회창 총재를 비판하며 탈당했다. 당시 박 부총재가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이 전 지사 대세론도 흔들린 것이다. 이후 '노무현 대안론'이 급부상했고, 대선을 불과 9개월 앞둔 3월 16일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이 전 지사 대세론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노무현 전 해수부 장관은 4월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그러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은 끝난 게 아니었다. 민주당이 그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며 '노무현 후보 교체론'이 확산했다.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4강에 오르면서 당시 정몽준 월드컵조직위원장이 대선후보로 떠올랐다. 결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노무현은 그해 11월 25일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의 야권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해 본선에 진출, 48.9% 득표율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46.6%)를 꺾고 승리를 거뒀다.
2007년 17대 대선 때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회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면서 한나라당은 큰 위기에 빠졌다. 총선 패배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한나라당은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지만 121석으로 선전했다. 17대 총선 이후 '박근혜 대세론'이 형성됐다.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석권했다. '박근혜 대세론'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박근혜 대세론'은 외부 요인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했는데 이후 이명박 서울시장이 1위로 치고 올라왔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고조되면서 여성보다 남성 리더십을 선호하는 여론이 확산한 것. 이듬해 3월 3위권에 머물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이 전 시장은 2007년 8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꺾고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거머쥐었다. 득표율 차이는 1.5%포인트로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범진보에선 이낙연 전 총리가 상당 기간 1위를 질주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를 총리로 지명했다. 이 전 총리는 풍부한 정치 경험, 안정적 내각 관리 등에 힘입어 차기 주자 1위에 올라 대세론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 전 총리는 2020년 1월 총리 사퇴 후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이 전 총리는 그해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이 전 총리 1위 시대는 그해 11월로 막을 내렸다.
● 이인제→ 노무현, 고건→ 정동영
● 박원순→ 문재인, 이낙연→ 이재명
● 野, DJ이후 임기 중반 1위 후보 대선 직행 실패
● 여권은 이회창·박근혜 대선행…당선은 박근혜 ‘유일’
● 현재 1위 한동훈·이재명도 안심 못 해
지금 우리는 선거 여론조사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여론조사가 도입된 시기는 1987년 대선이었다. 당시 여론조사는 선거 판세와 전략 마련을 위해 사용됐고, 외부 공개는 허용되지 않았다. 14대 대선 경쟁이 본격화하던 1992년 6월까지도 언론사들이 후보자 지지도를 조사해 공표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그해 11월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후보자나 정당 명의가 아닌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 공개가 허용됐다.
고(故) 박무익(1943~2017) 한국갤럽 소장은 13대 대선 예측 결과를 처음 발표했다. 1987년 12월 16일 투표 마감 직후 6시에 기자들 앞에서 각 정당 후보들 예상 득표율을 읽은 것이다.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했는데, 노 후보 예측 결과는 34.4%로 실제 득표율 36.6%에 근접했다. 이를 계기로 여론조사가 선거 전면에 도입됐다. 이때부터 주요 언론사는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 지방선거에서도 정당 지지율, 예상 득표율 등을 공개했다. 또 대통령 임기 중간 중간, 매년 1월, 설, 추석 등 주요 기념일에도 정치와 선거 인식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고(故) 박무익(1943~2017) 한국갤럽 소장은 13대 대선 예측 결과를 처음 발표했다. 1987년 12월 16일 투표 마감 직후 6시에 기자들 앞에서 각 정당 후보들 예상 득표율을 읽은 것이다.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했는데, 노 후보 예측 결과는 34.4%로 실제 득표율 36.6%에 근접했다. 이를 계기로 여론조사가 선거 전면에 도입됐다. 이때부터 주요 언론사는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 지방선거에서도 정당 지지율, 예상 득표율 등을 공개했다. 또 대통령 임기 중간 중간, 매년 1월, 설, 추석 등 주요 기념일에도 정치와 선거 인식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임기 반환점 돌면 차기 주자 경쟁 본격화
대통령 임기 중반이 되면 차기 주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다. 다음 대선이 2년여 앞으로 다가오고 주요 정당 대선후보 경선은 1년 6개월 뒤 바로 시작된다. 윤 대통령도 임기 반환점(11월 10일)을 지나면서 차기 주자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 가까이 남았지만 각 당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주자들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2위권과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고, 순위가 자주 바뀌는 것도 아니다. 국민도 선거 여론조사 결과가 일상적으로 발표되면서 이러한 사실을 잘 안다.
놀랍게도 임기 중반 여론조사 1등이 최종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범보수의 경우 2000년대 이후 다섯 번의 대선을 놓고 보면 최종 후보는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두 명이다. 대통령에 당선한 사람은 2012년 박근혜 후보뿐이었다.
범진보 계열에선 2000년대 이후 임기 중반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후보가 최종 대선후보 선출로 이어진 사례가 단 한 번도 없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선 이인제 경기지사가 줄곧 1위를 지켰으나, 대선 9개월여를 남겨두고 노무현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선 고건 전 국무총리가 1위를 달리다 불출마를 선언(2007년 1월)하고 중도 하차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최종 대선후보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이름을 올렸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임기 중반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1위였지만 대선후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돌아갔다. 2017년 19대 대선에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1위였지만 문재인 전 실장을 넘지 못했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도 같은 패턴이 되풀이됐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대선 1년 3개월여를 앞두고 이재명 대표에게 1위를 내주고 말았다.
YS·DJ 이후 달라진 대선 성공 방정식
2000년대 이전엔 대부분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가 각 정당의 최종 후보가 되고, 대통령 당선으로 귀결됐다. 김영삼(YS)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1990년 1월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민주자유당(민자당))을 주도하면서 대세론을 형성했다. YS는 1992년 14대 대선에서 민자당 대선후보는 물론 대선에서도 여유 있게 당선했다. 범진보에선 1987년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김대중(DJ)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가 선두권을 고수했다. DJ는 1991년 민주당 출범을 주도했고, 이듬해 5월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범보수에선 이회창 전 국무총리, 범진보에선 DJ가 대선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여론조사로 볼 때 대선후보 선출과 대통령 당선은 범보수와 범진보 모두 네 가지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2000년대 이전엔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 인물이 주요 정당의 최종 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했다. 둘째, 2000년대 이후 범보수에선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였던 이회창 전 총리(2002년)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2012)만 최종 후보를 꿰찼다. 박 전 대표는 그해 대통령에도 당선했다. 셋째, 2000년대 이후 범진보에선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는 아무도 최종 대선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넷째,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 또는 대통령 당선은 대부분 기존 인물 중에서 나왔다.
기존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한 것은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최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3월 검찰총장을 사퇴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당선했다. 범보수의 경우 이회창 전 총리가 1994년 4월 YS에 맞서 전격 사퇴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전 총리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총리 사퇴 직후부터 범보수 대표주자로 부각됐기 때문에 완전한 정치 신인은 아니었다. 2020년 총선 전후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차기 주자 1위였지만 최종 대선후보 선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범진보에선 1992년부터 지난 2022년까지 새로운 인물이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2002년 16대 대선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진행됐다. DJ는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민주당)을 창당했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주도하던 국민신당을 흡수 통합한 것이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선전하면서 주목받았던 이 전 지사의 대세론은 민주당 출범 후 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이 전 지사 대세론은 엉뚱한 데서 균열되기 시작했다. 2002년 2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가 당권·대권 분리를 거부한 이회창 총재를 비판하며 탈당했다. 당시 박 부총재가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이 전 지사 대세론도 흔들린 것이다. 이후 '노무현 대안론'이 급부상했고, 대선을 불과 9개월 앞둔 3월 16일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이 전 지사 대세론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았다.
노무현 전 해수부 장관은 4월 민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그러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은 끝난 게 아니었다. 민주당이 그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며 '노무현 후보 교체론'이 확산했다.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4강에 오르면서 당시 정몽준 월드컵조직위원장이 대선후보로 떠올랐다. 결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노무현은 그해 11월 25일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와의 야권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해 본선에 진출, 48.9% 득표율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46.6%)를 꺾고 승리를 거뒀다.
2007년 17대 대선 때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회가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면서 한나라당은 큰 위기에 빠졌다. 총선 패배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한나라당은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지만 121석으로 선전했다. 17대 총선 이후 '박근혜 대세론'이 형성됐다. 한나라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석권했다. '박근혜 대세론'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박근혜 대세론'은 외부 요인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했는데 이후 이명박 서울시장이 1위로 치고 올라왔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고조되면서 여성보다 남성 리더십을 선호하는 여론이 확산한 것. 이듬해 3월 3위권에 머물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이 전 시장은 2007년 8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꺾고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거머쥐었다. 득표율 차이는 1.5%포인트로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범보수 황교안, 범진보 이낙연 임기 중반 1위
2022년 20대 대선에서도 범보수, 범진보 모두 임기 중반 1위를 달리던 정치인들이 모두 낙마했다. 2018년 6월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 책임으로 사퇴했다. 홍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게)라는 글을 남겼다. 지금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바로 그 글귀다. 황교안 전 총리는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범보수 차기 선호도가 홍 전 대표에서 황 전 총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황 전 총리 1위 시대는 2020년 총선 패배와 함께 급격히 저물었다.
범진보에선 이낙연 전 총리가 상당 기간 1위를 질주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당시 이낙연 전남지사를 총리로 지명했다. 이 전 총리는 풍부한 정치 경험, 안정적 내각 관리 등에 힘입어 차기 주자 1위에 올라 대세론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 전 총리는 2020년 1월 총리 사퇴 후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이 전 총리는 그해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이 전 총리 1위 시대는 그해 11월로 막을 내렸다.
한국갤럽 여론조사(2021년 1월 2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반을 조금 지난 시점인 2020년 1월 차기 선호도는 △이낙연(24%) △황교안(9%) △안철수(4%) △이재명(3%) △윤석열·홍준표(1%) 순이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1%에 불과했지만 1년 뒤엔 13%까지 급등했고, 범보수 1위에 올랐다. 대선을 불과 1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2020년 총선 전후 범보수 1위였던 황 전 총리는 순위에서 아예 사라졌고, 안철수·홍준표 의원은 각각 3%에 머물러 이렇다 할 적수도 없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3%에 불과했지만 1년 뒤엔 23%까지 급등해 이 전 총리(10%)를 멀찌감치 따돌렸다(여론조사 관련 상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대통령 임기 중반인 현시점에서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대표,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각각 선두로 2위권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앞서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가 최종 후보가 된 적이 거의 없던 것을 고려하면 한동훈, 이재명 두 대표 모두 안심하긴 이르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우선 한 대표에겐 윤 대통령의 유산이 깊이 새겨져 있다. 윤 대통령 국정 운영이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한 대표 대선 가도는 가시밭길이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를 넘어서야 한다. 1심과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이 대표의 당내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그러나 국민 시각에서 보면 다를 수 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변수는 많아질 개연성이 있다.
윤 대통령 임기 중반인 현시점에서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대표,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각각 선두로 2위권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앞서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임기 중반 여론조사 1위가 최종 후보가 된 적이 거의 없던 것을 고려하면 한동훈, 이재명 두 대표 모두 안심하긴 이르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우선 한 대표에겐 윤 대통령의 유산이 깊이 새겨져 있다. 윤 대통령 국정 운영이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한 대표 대선 가도는 가시밭길이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를 넘어서야 한다. 1심과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이 대표의 당내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그러나 국민 시각에서 보면 다를 수 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변수는 많아질 개연성이 있다.
차기 대선 '다크호스' 노리는 여야 주자들
만약 한동훈, 이재명 두 대표가 최종 대선후보, 나아가 대통령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일단 차기 주자 여론조사에 이름을 올린 정치인들일 가능성이 크다. 범보수에선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유력하다. 이 밖에 차기 주자 여론조사에 곧잘 이름을 올리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도 포함될 수 있다. 범진보에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동연 경기지사를 꼽을 수 있다. 역시 차기 주자 여론조사에 종종 등장하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부겸·이낙연 전 총리 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권력이 임기 종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라면, 미래 권력을 노리는 차기 주자들은 이제 막 스타트라인을 출발해 차기 대선 승리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 등 헌정 질서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전제하에서의 얘기다.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Copyright © 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동아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