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타운이 점령한 그 나라 [사이공모닝]

이미지 기자 2024. 11.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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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 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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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찌민시 타오디엔이라는 동네는 원래 ‘외국인 마을’ ‘백인 마을’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국제학교가 많아 외국인 학생과 선생님들이 많고, 우리나라의 한남동 같은 부촌 지역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최근 이곳은 ‘제2의 한인타운’이라 불립니다. 로컬 해산물 식당과 수제 맥줏집, 미용실이 있던 자리엔 한국식 고깃집, 주꾸미 집, 조개구이집 등이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스타일의 머리를 해준다는 미용실과 한국 브랜드의 스크린 골프장도 들어섰지요. 과거에는 공항 근처 슈퍼볼 지역이, 그 이후에는 한인학교가 있는 7군 푸미흥 지역이 한인타운으로 불렸었는데 이제 타오디엔도 한인타운 못지않게 한글 간판이 많아졌습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17만8000명. 동남아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을 합친 것보다 6만명 더 많은 수치이지요. 미국, 일본, 캐나다, 중국 다음으로 거주 한국인이 많은 나라가 바로 베트남입니다. 변두리가 아닌 시내 곳곳, 주요 지역에 ‘한인타운’이 형성돼 있다는 점도 굉장히 특이하지요.

베트남 호찌민시에 있는 한국 음식점. /구글 캡쳐

◇한국 고객 찾으러 베트남으로

며칠 전 닛케이 아시아는 “베트남에서 틈새 사업으로 ‘코리아 타운’이 흥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아세안 국가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다 합해도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에 사는 한국인이 더 많다는 것도 부제로 달았지요.

이 기사가 주목한 것은 베트남에서 오로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이 대거 성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로 소개한 것은 바로 ‘두피 문신’을 하는 매장이었습니다.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두피 문신점으로, 인터뷰는 한국어를 베트남어로 통역해주는 직원을 통해 진행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베트남어로 인터뷰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해당 기사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주재원들만을 위한 자체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한 달치 임금보다 비싼 사업이 베트남의 상업 중심지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에 대한 방증이라는 것이지요.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진 것은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이 많아진 덕분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운영되는 한국인 소유 기업은 1만개에 달합니다. 8년 만에 두배로 증가한 것이지요. 2009년 삼성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함께 건너온 1·2차 납품사들과 LG그룹 계열사는 물론, 의류·잡화 생산 공장, 인테리어 업체들까지 베트남으로 넘어왔습니다. 2022년 865억 달러였던 무역 규모는 2030년 1500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지요.

베트남 호찌민시의 한 횟집 메뉴판. 한국어로 메뉴가 다 적혀있다. /호찌민=이미지 기자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사업체가 늘어나면서 베트남어를 하지 못해도,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처럼 생활할 수 있는 한인타운이 베트남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하노이에는 쭝화·미딩에 한국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고, 다낭은 팜반동에 몰려 있습니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LG그룹 계열사 베트남 공장들이 많은 하이퐁에서는 반 카오를 중심으로, 삼성·오리온 등이 많은 박닌에서는 보끄엉 쪽에 한인타운이 형성돼 있지요.

한국 한의원에서 침을 맞거나 한약을 지을 수도 있고, 최근에는 예쁜 글씨체로 교정해주거나 장식품을 만드는 캘리그라피 수업도 열립니다. 필라테스나 헬스 트레이너도 한국인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넘쳐나는 한식당에 주꾸미, 육회, 콩국수까지 먹을 수 있어 토종 입맛도 적응이 어렵지 않습니다. 영어나 베트남어로 설정해야 하는 배달 앱을 겁내는 사람을 위해 한국어로 볼 수 있는 ‘배달-K’라는 앱도 있습니다. 세무법인은 물론, 국내 대형 로펌과 회계법인들까지 베트남 지사를 차립니다. 굳이 영어나 베트남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요.

◇현지 소비자 공략법 없는 진출은 금물

이런 상황 덕분인지 베트남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만 치료 업체 365mc는 지난 13일 베트남 하모 그룹과 협약을 맺고 호찌민시에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삼겹살 프랜차이즈인 하남돼지집 역시 이달 호찌민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그릭요거트 전문점, 서핑 체험 업체 등도 베트남 시장에 뛰어들었지요. 떡볶이 전문점 ‘두끼’처럼 베트남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브랜드도 많습니다.

베트남 호찌민시의 한 쇼핑몰 안에 있는 한국 브랜드 '두끼 떡볶이'. /호찌민=이미지 기자

베트남에 진출하기만 하면 돈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을 가진 분들이 늘어나는 건 걱정입니다. “한국인이 많다는데, 한국에서 잘되는 브랜드를 들여가면 ‘향수병’을 앓는 한국 주재원들이 몰려오지 않겠느냐”는 희망으로 베트남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이미 베트남 시장은 ‘한국인’만 상대로 하기에 이미 일부 업종은 포화 상태에 가깝습니다. 한국식 고깃집은 이미 베트남 현지 프랜차이즈 업체까지 뛰어들며 경쟁이 심화하고 있고, 편의점·술집도 다양합니다. 한국 성형외과도 베트남 내에 거리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이고,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 서비스 역시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이지요.

이제 베트남에 진출하는 한국 업체들은 ‘현지 소비자’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베트남 내 한국인과 소비력에 차이가 있고, 단순히 ‘한국 브랜드’라는 점만 내세워서는 방문 횟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현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 가격대, 공략법을 충분히 마련해놓고 진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베트남 한인타운이 베트남 시장과 동의어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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