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뉴스] 3km도 힘들었던 나…마라톤 10km 도전기
[편집자주] 어느 날 배가 불룩 나왔다. 지나가던 아내가 “아저씨 배가 임신 8개월”이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아저씨로 변하는 과정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시작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경상도에서는 아저씨를 ‘아재’라 부르는데, 장난스럽게 “아재요”라고 듣던 말들도 이제는 반박 불가. 청년기본법에도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으로 정의하지 않나. 쳇바퀴 돌듯 살아가다 이렇게 됐으니 ‘뭐라도 해야 달라지지 않을까’ 고민했다. 카메라를 들고, 나와 같은 아재들의 공감을 기대하며 평소에 생각조차 하지 않던 일들을 해나가는 ‘아재 도전기’를 써보려 한다.
“김채호 파이팅!”
2.1㎞ 지점. 팀AZ(러닝크루)의 한 일원이 날 지나치며 응원의 말을 던졌다. 남은 거리는 7.9㎞. 생각보다 달릴만했다. 누가 앞서가든 ‘1㎞ 6분 페이스만 지킨다면 완주는 문제없다’고 나 자신을 세뇌하며 달렸다.
지난 9월 처음 아재뉴스를 기획하며 ‘러닝’을 시작했다. 내친김에 10㎞ 마라톤 대회도 신청했다. 지난 17일 열린 국제신문 부산마라톤대회였다. 학창 시절 이후로는 제대로 달린 적 없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평균 나이 40세 팀AZ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마라톤 훈련을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새벽 6시 부산 전역을 코스로 함께 달렸다. 첫 훈련에 참가했을 땐 3㎞ 정도를 뛰다가 ‘도주해’ 말 그대로 집에서 기절을 했다.
한번은 업힐(오르막길) 구간에서 뒤처지자, 팀AZ의 크루 조 씨가 바로 옆에서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을 보탰다. “걷지 말고 보폭을 짧게, 할 수 있다!”
거북이보다 느려진 나의 발에 그는 다른 크루원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안도감을 느끼며 인도로 벗어나려고 했는데, 어느새 반환점을 돈 그가 내 옆에 와 착 달라붙어 뛰었다. 이날은 도주 의사를 접고 무사히 완주했다. 페이스 메이커를 해준 것이다. 개인 훈련과 병행해 이렇게 크루와 마일리지(반복되는 러닝 훈련을 마일리지라 표현)도 적립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5㎞를 뛰어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러나 직장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해외출장과 국내출장을 연이어 다녀왔다. 마침 코로나19 감염으로 합법적으로 러닝 훈련도 중단했다. 이때 체중이 빠졌다 다시 증가하는 ‘요요 현상’을 경험했다. 한창 잘 달리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지난 9, 10월간 달린 거리는 92㎞. 지난 1일, 몸은 무거워졌고 1㎞ 페이스는 5분 30초에서 7분을 넘겼다. ‘완주는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회 9일 전 경기도에서 일하던 아내가 갑작스럽게 부산에 왔다. 월말부부라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아내는 “달리기 도와줄게” 하더니 날 끌고 나섰다. 원하지 않았지만 결혼 전부터 ‘아내 말이 무조건 맞다’고 교육돼 있던 터라 거부감은 없었다. 3km, 5km, 6km….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달리기에 집중했다.

지난 17일 마라톤 대회 당일.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완주’에 대한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예약한 알람보다 1시간 빨리 깼다. 오늘의 운세를 보니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의 도움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마침 대회 당일에는 모닝 햄버거가 맛있다는 말이 기억나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밖으로 나왔다. 10여 분 뒤 햄버거 프랜차이즈를 방문했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불안했다. 도로의 정속을 지키며 대회 장소인 다대포해수욕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44분이다.
오전 8시. 팀AZ와 모이기로 한 다대포 낙조분수에서 다 함께 몸을 풀었다. 이날 부상으로 경기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응원하러 와준 팀AZ 김 회장과 “부상 없이 안전하게 달리자”며 응원해준 문 총무의 따뜻한 말을 가슴에 새겼다. 촬영을 온 후배는 나의 도주 방지를 위해 고프로를 몸에 달고 출발점으로 향했다.
9시 9분 59초 출발선을 통과했다. 초반엔 앞선 주자들의 속도에 휩쓸려 1㎞ 페이스가 5분 12초로 나왔다. 기록보다 완주를 목표로 출전했기에 속도를 늦췄다. 앞에서, 뒤에서, 좌우에서 참가자들이 지나치기 시작했다. 러너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코스 오른쪽으로 이동해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고독한 싸움이라는 마음으로 달렸다.
교훈을 하나 얻었다. 3㎞ 지점을 지나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걷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들을 피해 달리거나, 멈추는 이들로 인해 부딪힐 뻔했다. 그래도 속도를 내기보다 걷지 말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다. 나를 지나쳤던 사람 중 일부는 걷기 시작했는데, 느리지만 달리던 나에게 뒤처졌다.

4㎞를 지나자 앞선 이들이 정신없이 남기고 간 것들이 보였다. 다 마신 일회용컵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급수대였다. 꼴찌 그룹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받아가는 모습에 나도 대열에 동참했다. 그렇게 달리는 와중에 보이는 급수대 대열 3곳에 모두 출석했다. 물을 제공하는 구역을 참고 뛰는 참가자와 마음 편하게 이동하는 이들 간 거리가 더욱 벌어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쯤 달렸을 때 발바닥에 신발 끈이 걸리는 느낌이 났다. 첫 출전이라 운동화 끈을 평소보다 꽉 묶고 신발 안으로 넣었다는 생각에 끈을 밖으로 빼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나 보다. 발바닥에 좀처럼 잡히지 않던 물집이 생겼다. 달릴 때마다 통증이 심해져 멈추고 싶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파이팅”, “1㎞ 남았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모르는 이의 응원이고 어쩌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으로는 그만 뛰고 싶었지만 발을 계속 움직이는 이들과 함께 나아갔다.

골인했다. 드디어. 기록은 1시간 3분 21초. 10㎞ 3,635명 중 1411위로 들어왔다. 마라톤은 혼자 뛰는 운동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크루와 함께하는 훈련과 아내의 무조건적인 칭찬과 격려가 없었다면 완주는 힘들었을 거다. 지금은 상상도 안 되지만, 언젠가 42.195㎞ 풀코스에 도전할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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