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 회장의 신세계, ‘New World’가 되기 위한 조건 [권상집의 논전(論戰)]
트렌드·온라인 역량은 물음표…시험대는 이제부터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올해 재계 임원 인사에서 주목받는 이슈 가운데 하나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의 회장 승진 소식이다. 정유경 ㈜신세계 회장의 승진은 두 가지 상징성을 지닌다. 첫째, 재계 10위권 대기업 중 여성으로는 최초의 회장 승진이다. 범삼성가 3세 중 첫 번째 여성 회장의 탄생이기도 하다. 둘째, 회장 승진은 공식적으로 독자경영을 의미한다. 정유경 회장이 꿈꾸는 신세계의 새로운 스토리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잡화점 '구세계'를 럭셔리 '신세계'로
2024년은 신세계그룹에 매우 상징적인 한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취임이 올 상반기 그룹 내 최대 이슈였다면 정유경 회장 취임은 하반기 그룹 내 최대 이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은 인사에 매우 신중한 인물로 유명하다. 자녀 중 한 명에게 칼자루를 완전히 넘겨주지 않고 이마트와 백화점을 각각 나눠준 대목은 정유경 회장이 탁월한 성과와 경영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신세계그룹은 정유경 회장이 2015년 총괄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곧바로 계열분리 작업을 시작했다. 이명희 총괄회장이 정유경 총괄사장의 경영능력과 리더십을 이미 인정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정용진·정유경 회장의 신세계, 이마트 지분 교환 이후 2020년 이명희 총괄회장은 동일한 비율로 신세계, 이마트 지분을 두 사람에게 증여했다.
자산 규모가 62조원에 달하는 신세계그룹은 계열분리가 완벽히 마무리되진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자산 43조원의 이마트와 자산 19조원의 백화점 중심 신세계로 나뉘었다. 정유경 회장은 이제 신세계백화점을 위주로 신세계DF(면세), 신세계라이브쇼핑(T커머스), 신세계인터내셔널(패션), 신세계까사(가구, 인테리어)를 총괄하게 됐다. 이마트 부문에 비해 자산 규모는 작지만, 하나하나의 사업엔 신세계의 전통과 역량이 담겨 있다.
정유경 회장의 역량은 신세계의 고급화 전략에서 드러난다. 백화점은 말 그대로 잡다한 상품을 진열해 판매하는 잡화점 성격이 강한 곳이다. 이런 이유로 거품을 빼야 살아남고 주요 거점 지역에 모두 진출해 상권을 흡수하는 양적 성장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롯데는 전국에 32개 백화점 점포를 열었고, 신세계는 13개를 보유하고 있다. 유통업계 하면 누구나 롯데를 떠올리는 이유다.
정유경 회장의 역량은 양적 성장으로 롯데에 맞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더 많은 곳에 백화점을 개점하기보다 더 많은 이의 주목을 받게 만들었다. 그의 학력과 경력의 핵심은 미술, 디자인, 예술에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가보면 다른 곳보다 확연하게 미술작품이 많이 배치돼 있다. 아울러 패션 부문에서 신세계 바이어가 글로벌 영역을 방문해 상품을 매입·판매하는 자체 편집숍 '분더샵' 전략도 신세계의 고급화에 기여했다.
지난 10년간 신세계백화점은 지역 랜드마크를 승부처로 삼았다. 유통업계에서는 거래액과 트렌드를 보기 위해서는 롯데백화점 본점을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신세계는 백화점의 프레임을 잡화점이 아닌 럭셔리 공간으로 전환했다. 명품 매장을 1층에 배치하는 다른 경쟁사와 달리 신세계 강남점은 2층 이상에 명품을 배치했다. VIP 고객들이 곧바로 명품 매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소비자 편의를 극대화했다.
최다가 아닌 최고를 추구한 신세계의 전략은 상징성(질적 성과)과 매출액(양적 성과) 모두를 거머쥐었다. 신세계 강남점은 2017년 백화점의 패권을 유지하던 롯데백화점 본점을 누르고 매출 1위에 등극한 후 현재까지 8년째 백화점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점포당 매출액에서도 신세계(2000억원)는 롯데(537억원)의 3.7배를 넘어섰다. 신세계 강남점을 포함해 세계 최대 백화점 센텀시티점 등은 신세계의 현재를 자랑한다.
정유경 회장이 그릴 '신세계'의 미래는?
지난해 신세계 강남점은 국내 백화점 단일 점포 사상 최초로 거래액 3조원을 돌파했다. 부산 센텀시티점은 지방 점포 최초 '거래액 2조원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성과는 회장 지위, 독립경영이라는 선물로 돌아왔다. 롯데그룹이 롯데마트를 정리하고 오히려 바이오와 배터리 사업으로의 전환 등을 추진한 점을 감안할 때, 유통업계의 1차 대전은 사실상 신세계그룹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단, 이는 오프라인 상황일 뿐이다. 정유경 회장이 이끌 미래의 신세계백화점그룹은 분명 지금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신세계(New World)'를 꿈꾸고 창출해야 한다. 적어도 오프라인 경쟁에서 신세계의 적수는 보이지 않는다. 신세계 강남점, 센텀시티점뿐 아니라 대전, 대구, 광주의 대표 백화점도 신세계가 장악했다. 그러나 향후 10년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과 트렌드 세터 영역에서 '뉴 월드(New World)'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랜드마크 전략은 신세계백화점 앞으로 사람이 몰리는 효과를 창출했지만 신세계백화점에 들어오게 하지는 못한다. 백화점은 올드한 장소라는 인식도 강하다. 더현대 서울과 더현대 대구는 팝업스토어와 콘텐츠로 MZ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신세계는 VIP에겐 최적의 장소지만 2030세대의 핫플은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이미 트렌드 세터(유행 선도) 전략으로 전환했다. 신세계는 아직 느리고 더디다.
신세계의 온라인 역량은 여전히 '구세계(Old World)'에 머물러 있다. 오프라인은 럭셔리 공간으로 탈바꿈이 가능하지만 온라인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에 초점을 두고 이를 최적화해야 한다. 오프라인 경쟁력만으로는 신세계의 미래를 격상시키기 어렵다. ㈜신세계의 시가총액은 1조5000억원 수준이다. 시장은 아직 신세계가 완벽히 새로운 세계를 열지 못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트렌드 세터로의 전환, 그리고 사용자 경험 최적화 등 미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정유경 회장이 열어갈 새로운 세계의 시험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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