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초록 마녀라니 PC주의?…편견 이겨낸 ‘위키드’ 흥행

이정우 기자 2024. 11. 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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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관객수 20만 돌파 두 달 만
‘파퓰러’ ‘디파잉 그래비티’…캐릭터 그 자체인 노래
‘위키드’.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뮤지컬 영화 ‘위키드’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23일 ‘위키드’를 극장에서 본 관객은 21만 명이었다. 하루 관객 수가 20만 명을 넘은 건 추석 연휴에 개봉했던 ‘베테랑2’ 이후 2개월여 만이다. ‘위키드’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흥행 질주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위키드’가 흥행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세계 흥행 2위 뮤지컬(1위는 ‘라이온킹’) 원작을 충실히 구현했을 뿐 아니라 일부 장면에선 영화만의 묘미를 극대화하며 뮤지컬 영화 보는 맛을 살렸다.

이를테면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가 처음으로 마음을 통하게 되는 오즈더스트 무도회장 장면, 그리고 엘파바가 각성해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로 날아올라 포효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캐스팅 역시 당초 우려를 불식시키며 찰떡으로 판명 났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발랄함은 160분이란 긴 러닝타임에도 지치지 않게 도와주는 활력소이고, 신시아 에리보의 무게감은 극이 진행될수록 안정감을 준다.

고백하면, 예고편만 보고선 또 PC주의에 기댄 캐스팅이겠거니 생각했다. 흑인이 연기하는 초록 마녀라니. 동급생에 비해 10살은 더 차이나 보이는 신시아 에리보의 뚱한 표정은 이 영화 괜찮을까란 걱정을 안겨줬다. 결론부터 말하면 초록 마녀가 ‘위키드’(사악한 마녀)란 사실만 알던 뮤지컬 까막눈인 필자의 오판이었다.

‘위키드’.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초록색이 문제가 아닌데→초록색이라 힘들었겠다→초록색이니 뭐니 멋지다

‘위키드’의 주인공 엘파바는 초록색으로 태어난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아버지조차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모두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동생을 아끼고, 책을 좋아하며 바르게 자랐다는 컨셉이지만, 영화 초반 엘파바는 비호감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화를 제어하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 같달까. 쉬즈 대학 입학식 때 열 받아서 책상 등 물품들을 다 들어 올리며 학생들을 덜덜 떨게 만든 순간이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초록색이 문제여야 할 캐릭터인데, 초록색인 것만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글린다를 위시한 학생들이 엘파바를 왕따시키는 초반의 소동극은 어수선하고 지루했다. 뻔한 미국 하이틴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오즈더스트 무도회장 장면에서 생각은 반전된다. 글린다가 놀리려고 준 쭈글쭈글 모자(훗날 마녀의 상징이 되는)를 쓰고 무도회장에 나타난 엘파바. 학생들은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비웃는다. 그 광경을 보는 글린다는 마음이 편치 않다. 엘파바의 우스꽝스러운 춤을 따라 추는 글린다. 그 순간 처음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초록색이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장면은 영화가 뮤지컬보다 멋지게 연출된 장면이다. 먼발치에서 고정된 시점으로만 볼 수 있는 뮤지컬에 비해 영화는 카메라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시점에서 인물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엘파바와 글린다를 클로즈-업 함으로써 이들의 슬픈 마음, 애처로운 시선, 함께 공감하고 감정적으로 통하는 순간을 보다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영화 ‘위키드’의 멋진 전환점이다.

그 후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 둘. 글린다가 대표 넘버 ‘파퓰러’를 부른다. 글린다의 통통 튀는 매력이 살아있는 곡으로 이 노래가 글린다 자체다.

‘위키드’.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꿈에 그리던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간 엘파바와 친구 글린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위기가 그들에게 닥치고, 그들은 순응과 저항 사이 선택해야 한다. 운명에 저항하기로 결심한 엘파바는 ‘디파잉 그래비티’(중력을 거슬러)를 부르며 하늘로 치솟는다. 에메랄드 시티 상공에서 불합리한 기존 질서를 부정하며 사자후를 내뱉는 엘파바에 카타르시스가 절로 느껴진다.

‘한계가 없는’ 마녀가 탄생하는 순간. 토니상 여우주연상 수상자 신시아 에리보가 훌륭하게 자신 만의 ‘위키드’를 세상에 펼친 순간이다. 초록색이니 뭐니 상관없이 정말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원작 뮤지컬 팬이라면 흐뭇할 순간이 많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 주역 이디나 멘젤과 크리스틴 체노웨스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더빙 판에선 ‘한국 최다 공연 엘파바’ 박혜나와 ‘한국 대표 글린다’ 정선아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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