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됐던 ‘외교 참사’…韓, 군함도 이어 사도광산도 日에 당했다
깜깜이 진행하더니…日 야스쿠니 참배 인사 파견
희생자 추도식 아닌 ‘유네스코 등재’ 자축 행사였나
“日 선제적 조치” 믿었던 韓…대일 외교 도마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정부가 조선인 강제노동의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의 노동자 등을 추모하는 추도식을 하루 앞두고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사도광산을 등재 신청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반대’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는 전시를 유적 현장에 설치하기로 한 것과 함께 한일 양국의 주요 합의 사항이었다.
한일 간 협상 결과가 공개됐을 때부터 일본측의 합의 이행 의지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일본이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에도 ‘약속 미이행’ 지적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일본의 ‘선의’에만 의존한 결정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일본측은 추도식 개최일을 확정하는 것도 소극적이었고, 끝내 ‘진정성’의 지표로 여겨져온 일본 정부 대표 참석자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인사를 보내겠다고 결정하면서 외교적 파장이 일었다.
일본측의 ‘선제적인 조치’를 믿고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까지 강제동원 역사 현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을 막지 못한 한국 정부의 ‘외교 실패’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외교부는 23일 “우리 정부는 추도식 관련 제반 사정을 고려해 24일 예정된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결정의 배경에 대해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이 ‘정부측 대표’ 참석자로 발표한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의 이력이 문제가 됐다.
사도광산 추도식 개최 일정을 발표하고도 정부 대표 참석자를 공개하지 않았던 일본 외무성은 추도식을 이틀 앞둔 22일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을 발표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8월15일 일본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있다.
한국 정부는 그간 차관급인 정무관의 추도식 참석을 요청해왔기에 직급은 부합한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인물을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식에 일본 정부 대표로 보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정부는 일본측의 발표에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일본 정부 대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묻는 말에 외교부는 오후 9시가 돼야 “정부는 진정성 있는 추도식 개최를 위해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측에 강조해 왔고, 일본이 이를 수용해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라며 “해당 정무관은 일본 정부대표로서 추도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 대표를 수용한 것이라며 여론이 악화되자, 23일 오후 최종 불참을 결정한 것이다.
지난 7월27일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측 대표인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발할 것이며,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매년 사도섬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문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각주로 포함돼 결정문의 일부로 간주된다. 우리 정부도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이 올해부터 매년 7~8월경 사도 현지에서 개최된다”며 “올해 개최 일자와 장소는 현재 일본 내에서 조율 중이며 우리와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그동안 일본의 민간단체 차원의 추도식은 종종 있었으나, 이번에 일본이 약속한 추도식은 일본 정부 관계자도 참가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추도식 일자부터 차일피일 미뤘고, 추도식 관련 제반 사항들을 함구하면서 ‘깜깜이’로 진행해 일본측의 합의 이행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았다.
결국 일본은 당초 약속보다 3~4개월 후인 11월24일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 추도식을 개최하겠다고 밝혔지만, 한국의 기대와 다른 일본의 조치가 속속 드러났다.
추도식도 사도시 등 지방자치단체 소관이 아닌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라는 민간단체가 하기도 했다.
첫 추도식에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11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항공편과 숙소, 현지 경비 등 모든 비용을 주최측이 아닌 한국 외교부가 부담하기로 한 것도 논란이 됐다.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인 만큼 주최 측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유족 대상 설명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이마저도 추도식과 관련한 결정이 늦어지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종합할 때, 이번 추도식의 성격에 대한 한일 양국의 이해가 완전히 달랐던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추도식 명칭에 ‘감사’라는 표현을 추가하려 했고, 최근 하나즈미 히데요 일본 니카타현 지사는 “사도광산 추도식은 세계유산 등재를 보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일본은 처음부터 추도의 대상이 한국인뿐만 아니라 사도광산에서 일했던 ‘모든 노동자’라고 못을 박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한국인 유가족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유네스코 등재를 자축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는 2015년 군함도에 이어 이번 사도광산까지 일본이 강제동원 역사 현장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유네스코 신규 위원국에 당선돼 올해부터 2027년까지 위원국으로 활동, 최종 심사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등재를 찬성했다.
당시 외교부는 “정부는 일본이 이번에 사도광산에서 선제적으로 이행 조치를 취하기로 한 취지를 살려, 사도광산 관련 전시에 있어 약속을 계속 이행하고 도쿄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개선을 포함해 진정성 있는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을 계속 이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국 ‘선제적 이행조치’라는 일본측의 ‘선의’에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인사가 참석하는 상황으로 귀결됐다.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양국 관계에 악재가 터진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논평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일본의 성과를 자축하는 추도식에 우리 정부 관곚와 강제징용 피해자 유가족을 들러리로 세우는 ‘윤석열 정권식 외교적 성과’는 단호히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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