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약만으론 안 돼! 생활습관 개선이 혈당 관리의 열쇠”
규칙적인 식사·운동·금연 병행해야 혈당 조절 가능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배우 김수미의 사망과 세계 당뇨병의 날(11월14일) 등으로 당뇨병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뇨병은 고혈압처럼 약만 먹으면 관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 10명 중 7명은 치료받아도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병은 소변에 당분(포도당)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더 정확하게는 혈중 당분이 많아진 질환이다. 우리가 밥(탄수화물)을 먹으면 소화 과정에서 탄수화물이 포도당으로 바뀐 후 혈액을 타고 온몸에 전달돼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포도당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다.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배송 역할을 못 하면 포도당이 사용되지 못하고 혈액에 고스란히 쌓인다. 이렇게 혈당이 정상보다 높아지면 당뇨병이다. 혈당이 높은 상태로 유지되면 뇌졸중·심근경색증·만성 신장질환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며, 심각한 경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배우 김수미의 사망으로 인해 이슈로 떠오른 고혈당 쇼크도 주로 당뇨병 환자에게 발생한다. 고혈당 쇼크는 고혈당 상태에서 발생하는 응급 상황을 의미한다. 고혈당이란 신체 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혈액에 포도당 농도가 급격하게 상승한 상태다. 고혈당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장기 기능 저하와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혈당이 400~500mg/dL(밀리그램/데시리터) 이상이면 쇼크가 올 수 있다. 날이 춥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또는 약 복용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에도 고혈당이나 쇼크가 올 수 있다. 혈당이 높아지면 케토산증도 생긴다. 혈당이 높으면 우리 몸은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케토산이 생겨 혈액이 산성화되면서 쇼크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험에 처한 당뇨병 환자가 우리나라에 약 600만 명 있다. 당뇨병 전단계까지 포함하면 약 2200만 명(성인 인구의 약 63%)이 혈당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당뇨병 전단계란 당뇨병은 아니지만 혈당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 높아진 상태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환자는 인지·치료·조절 단계를 거친다. 인지는 의사로부터 당뇨병 진단을 받아 혈당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단계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인지율은 당뇨병 환자 10명 중 6.7명이다. 나머지는 자신이 당뇨병 환자인지 모른다는 얘기다. 치료는 당뇨약(혈당 강하제)을 복용하거나 인슐린 주사를 맞아 혈당을 낮추는 단계다. 치료율은 환자 10명 중 약 6.3명이다. 조절 단계는 치료를 통해 혈당이 목표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를 의미한다. 조절률은 25%에 불과하다. 치료 후 혈당이 정상 범위(당화혈색소 6.5% 미만)에 도달한 사람이 4명 중 1명뿐인 셈이다.
나머지 75%는 왜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까. 질병관리청이 조사해 보니 남자는 흡연과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 여자는 비만 때문으로 확인됐다. 당뇨병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우고 과식하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당뇨병은 발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조절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인지 단계'부터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당뇨병 초기에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으로 체중을 줄이고 근육량을 늘리면 혈당이 조절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당뇨병의 30~70%는 유전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유전적 영향이 없더라도 나쁜 생활습관은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유전적 요인이 있더라도 올바른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당뇨병 조절을 위해서는 약물요법 외에도 금연과 체중 관리 등 건강생활 실천과 정기적인 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전문의가 당뇨병 환자에게 공통으로 처방하는 것은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이다. 이 두 가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생활습관이 아니라 당뇨병 치료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이라고 부른다.
당뇨병 치료·예방 조건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식이요법의 목표는 체중 조절이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비만은 2형 당뇨병의 주요 원인이고, 당뇨병 환자의 80%는 비만이다. 고도비만인 사람은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10년 후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80배 높다. 따라서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과식을 피하는 식습관을 길러야 한다. 1형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상태이며, 2형 당뇨병은 세포가 인슐린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질환이다. 성인 당뇨병의 대부분은 2형 당뇨병에 해당한다.
1·2형 당뇨병의 공통점은 포도당이 세포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분과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건강에 좋다고 권장되는 과일도 당뇨병 환자는 적당히 섭취해야 한다. 가령 하루 한두 번 과일을 먹되 한 번에 사과 3분의 1쪽으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로 단맛을 낸 '제로 음료'가 많이 팔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음료의 혈당 관리나 체중 조절 효과는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당뇨병에 좋다고 소문난 식품들(돼지감자·꾸지뽕 등)도 많다. 대부분 성분이 명확하지 않고 효과도 검증되지 않았다. 일부 진액 제품은 설탕이 첨가돼 오히려 혈당을 높인다. 또 식품 자체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복용 중인 당뇨병 치료제와 상호 작용으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식품을 섭취하기 전에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안철우 교수는 "일반적으로 탄수화물은 혈당을 올린다. 그러나 개인에 따라 혈당을 올리는 음식이 다를 수 있다. 탄수화물 50g을 먹은 후 혈당이 치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방 50g을 섭취한 후 혈당이 오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개인의 혈당 반응에 따라 단백질·탄수화물·지방 섭취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또 최근 발표된 외국의 연구에서 혈당과 합병증을 가장 잘 낮추는 생활습관이 금주와 금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뇨병은 생활습관과 밀접한 질환이므로 생활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당뇨병 치료나 예방이 어렵다.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외에도 금주와 금연 등 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식이요법을 잘 실천해도 신체 활동량이 부족하면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운동요법은 식이요법과 함께 실천해야 한다. 운동은 혈당을 낮추고, 장기적으로 당뇨병 합병증을 예방한다. 운동을 통해 열량을 소모하면 식이요법 효과도 높아진다. 운동하려는 의욕에 치우쳐 무리할 필요는 없다. 무리하면 운동을 지속하기 어렵고,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또 혈당이 조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산이나 수영 같은 격렬한 운동은 오히려 혈당을 높일 수 있다.
자신의 생활 리듬 속에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운동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동안 강도가 높은 운동을 하는 것보다 강도가 약한 운동을 오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동 후 피로나 통증이 발생하는 운동은 피해야 한다. 대한당뇨병학회가 권장하는 운동은 걷기다. 하루 30~60분 걸으면 300kcal 이상을 소비할 수 있다. 한 번에 몰아서 하기보다는 조금 빠른 속도(1분당 80m)로 15분 이상 걷고 쉬기를 반복하는 편이 낫다. 운동 중에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즉시 휴식해야 한다. 오전과 오후 두 차례로 나눠 운동을 해도 된다. 맨손체조·자전거 타기·테니스·제자리뛰기·줄넘기·리듬체조·수영 등도 좋다. 이런 식으로 매일 또는 격일로 꾸준히 실천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너무 자주 또는 너무 드물게 운동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따로 운동 시간을 내기 힘든 상황이라면 출퇴근 시간에 걷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거나 짬이 날 때마다 맨손체조를 하면 된다.
꼭 이른 아침에 운동할 필요는 없다. 공복에 운동하면 저혈당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운동 시기는 의사와 상담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혈당은 식후 30~60분에 가장 높아지므로 식후 30분 이후 운동하는 것이 좋다. 운동 후 식욕이 증가할 수 있다. 운동했더라도 식사량이 늘어나면 혈당이 예상보다 많이 올라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혈압처럼 평소 혈당도 측정하자"
일상에서 혈당을 높이는 원인은 많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거나 야근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혈당이 오른다. 감기·독감·코로나19 같은 감염질환이나 약물(스테로이드제나 이뇨제 등) 복용으로도 혈당은 높아질 수 있다. 어떤 원인으로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혈당이 높아질 수 있다. 증상이 없으면 당뇨병을 조기에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인은 국가건강검진을 통해 2년마다 혈당을 확인하면 된다.
당뇨병 의심 증상이 생기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다음·다식·다뇨는 당뇨병 3대 증상이다. 물과 음식을 많이 먹거나 소변을 자주 보는 것이다. 그 외에 체력 저하·피로·무기력·졸음 등도 당뇨병 의심 증상이다. 여성은 비뇨생식계통 감염이 빈번해져 질염·방광염·전신 가려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40세 이상으로 비만한 사람, 가까운 친척 중 당뇨병이 있는 사람, 고혈압·췌장염·내분비 질환·담석증이 있는 사람, 당뇨병 발병을 촉진하는 약물(혈압강하제나 스테로이드제 등)을 복용하는 사람에게 정기적인 당뇨병 검사를 권한다.
대한당뇨병학회가 제시한 당뇨병 검사는 혈당검사·표준 포도당 부하검사·당화혈색소 검사다. 혈당검사에서 공복 혈당이 126mg/dL 이상이거나 식후 2시간 혈당이 200mg/dL 이상이면 당뇨병이다. 표준 포도당 부하검사는 포도당 75g을 먹은 후 1시간 간격으로 2차례 혈당을 측정한다. 혈당이 200mg/dL 이상이면 당뇨병이다. 당화혈색소 검사는 최근 2~3개월간의 평균 혈당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6.5% 이상이면 당뇨병이다. 이들 중 한 가지 이상 해당하면 당뇨병으로 진단받는다.
안철우 교수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혈당 스파이크(식사 등으로 혈당이 급증하는 사례)가 잦으면 당뇨병이 온다. 밥을 먹으면 혈당이 300mg/dL 이상 치솟기도 한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혈당 스파이크가 생기는지 확인하고 그 음식을 줄여가면 당뇨병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 평소 혈압이나 몸무게를 재듯이 혈당도 측정하면 좋겠다. 동네 병의원에서 혈당을 재거나 연속혈당측정기(CGM)를 구입해 측정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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