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못 버티고 떠나기도...“말로 표현할 수 없다” 북한 확성기 피해 [르포]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등 날로 그 심각성이 더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소음을 참다못해 마을을 떠나기까지 한 것으로 23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고령자가 대부분인 마을에 소음이 수개월간 계속되면서 일부 주민은 수면제를 복용하며 잠을 청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날 세계일보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접경지를 찾았다.
이곳은 한강의 끝자락과 한남정맥의 끝이 서로 만나는 마을이다. 보구곶리는 워낙 작은 데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김포 시민들도 생소한 지역이다.
게다가 북한과 인접한 마을이기 때문에 마을에 들어가려면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철책이 둘러싸인 한강을 마주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지난 9월부터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이 본격적으로 송출되면서 고령층 주민들이 정신·육체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면 장애 △스트레스 △불안 증세 등을 보인다.
이날 세계일보와 만난 한 주민은 “70 평생 살았지만 처음 듣는 소리다.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라며 “확성기 소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송출돼 밤에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이웃에 3살 어린 자녀를 둔 가구는 소음을 참다못해 마을을 떠났다”면서 “시끄러워 죽겠다는 말이 진짜 있더라. 특히 어린아이들은 소음에 더 민감한 거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은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소음으로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이런 상황이 수개월째 반복되면서 온전한 일상을 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밤잠을 제대로 못 자다 보니 낮에 피곤함을 느껴 일상생활에 지장이 따른다는 하소연이다.
한 주민은 “고통은 들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며 “정신적 고통이 크다. 다들 나이 많은 어르신인데 오죽하겠나”라고 피해를 전했다.
실제 앞선 21일 경기 김포시에 따르면 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지난 8~14일 김포 월곶면 성동리와 하성면 시암·후평리 일대 접경지 주민 102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사를 진행한 결과 2명은 ‘고위험군’, 27명은 ‘관심군’으로 진단됐다. 나머지 73명은 정상군으로 분류됐다.
김포시 보건소 관계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치료를 진행하고 희망자에게는 정신과 전문의 진료도 지원할 계획”이라며 “주민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게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소음은 해가 질 무렵인 오후 7시쯤 시작돼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계속된다. 들리는 소음은 △귀신소리를 시작으로 △동물 울음소리 △쇠 긁는 소리 △표현하기 어려운 잡음 등이 시간대별로 송출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떤 날은 낮에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실제 이날 세계일보가 현장을 찾았을 때는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소음은 새벽 1~5시에 가장 심해 주민들의 수면 장애를 더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주민들은 수면제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음 피해는 접경지역인 인천시 강화군도 상황은 비슷해 군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지난 2일 대남방송 피해가 집중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일대 주민 78명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10%가량이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전해졌다.
접경지 주민이 지난 국감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고통을 호소한 게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에 인천시는 우선 예비비 3억 5000만원을 들여 북한의 소음 방송이 가장 가깝게 들리는 당산리 35가구 주택에 방음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강화군 관계자는 “방음시설을 설치해 효과와 개선점이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라며 “지역별로 소음을 측정해 피해 정도를 파악하고 행정안전부·인천시와 협의해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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