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먼저’를 기다립니다 [.txt]

양선아 기자 2024. 11. 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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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strong>요조의 요즘 무사한가요?</strong></span>
‘책방무사’를 2015년부터 운영해온 뮤지션·작가 요조가 책방에서 웃고 있다. 이전을 위해 책방은 잠시 쉬고 있다. 요조 제공

‘지금보다 나은 나’ 꿈꾸는 당신
묻고 들으며 책 ‘처방’해온 9년
이젠 독자 고민 듣고 편지 쓸 것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뮤지션이자 작가, 그리고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요조라고 합니다. ‘한겨레’ 지면에서 2018년 이후 두번째로 인사를 드립니다. 그때는 오은 시인과 함께 인터뷰어로 임했는데 이번에는 마음을 살피며 책을 추천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제가 책 추천에 소질이 있는 사람인가 자문해본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책 추천을 꾸준히 해왔다는 점에서 이 지면을 맡을 자격이 조금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전을 위해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저는 ‘책방무사’라는 이름의 책방을 2015년부터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책방에서 하는 여러 일 가운데 하나는 찾아주신 손님께 책을 추천하는 일이니, 저는 그 일을 지금까지 약 9년간 해온 셈입니다. 저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상상의 목장갑을 조용히 낍니다. 책방에서 일하며 책을 만지기 전 늘 목장갑을 끼는 것이 저의 버릇이자 의식인 탓입니다. 다만 상상의 목장갑을 낀 손은 책이 아니라 요청한 분의 마음속을 향합니다. 저에게 좋았던 책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좋은 책이 될 수는 없으므로, 저는 제 앞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는 느낌으로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책을 평소에 즐겨 읽는지 물어보고,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면 무엇인지도 물어봅니다. 또 요즘 관심사나 혹시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있는지도 묻습니다. 그 밖에 어디서 오셨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는 적당하겠다 싶은 책이 하나둘 떠오릅니다.

무사에 방문해주신 분들께 책을 추천해주던 경험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상품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당시 책방이 있던 제주까지 직접 찾아오기 힘든 분들을 고려한, 더불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고 싶은 소상공인의 염원(!)이 만들어낸 상품이기도 합니다. 그 상품이 완성되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1. 고객이 고민을 보내온다. 2. 고민에 집중하며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고른다. 3. 직원과 머리를 맞대고 완성한 편지를 선정한 책과 함께 고객께 전달한다.

이 상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1번입니다. 고객 쪽에서 먼저 시작해주지 않으면 상품은 영영 완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1번을 실천해주시는 분들이 꾸준히 계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혐오나 연민, 불안과 기대가 고민의 주를 이루었지만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를 깜짝 놀래주기 위해 신청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무사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뭉근한 사랑을 받았던 이 상품은 이제 이 지면에서 ‘요조의 요즘 무사한가요?’라는 제목으로 또 한번의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지면은 이렇게 완성될 예정입니다. 1. 독자께서 고민을 보내온다. 2. 요조는 고민을 읽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고르며 독자의 고민에 동참한다. 3. 독자의 고민과 추천 책이 소개된 요조의 편지가 지면에 나란히 실린다.

앞서 책방에서의 상품이 그랬던 것처럼 이 지면의 순서도 독자의 고민이 먼저입니다. 따라서 고민이 도착하지 않으면 이 지면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어쩌면 이 코너는 매번 아슬아슬하게 이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저는 굳이 독자 쪽에서 먼저 시작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싶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대체 왜 책을 좋아하는 것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게 있어 그 까닭은 제가 유일하게 반성과 성찰을 먼저 하는 때가 책을 고르고 읽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채로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접속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개는 아무 생각 없는 채로 그곳을 두리번거릴 따름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좋은 콘텐츠나 영화를 보고 나면 여운에 잠긴 채 깊은 생각에 빠지곤 하지요. 그러나 책 앞에서는, 언제나 제가 먼저 시작합니다. 제가 먼저 부족한 스스로를 인지하고 그것을 만회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책 주변을 기웃거립니다. 저는 그렇게 ‘내 쪽에서 먼저 시작하는’ 성찰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책을 읽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면, 언제까지고 저는 얼결에 성찰하는 존재가 아닌 내 쪽에서 먼저 성찰을 원하는 존재일 테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게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저는 너무나 잘못이 많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책방에 고민을 보내주신 많은 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내가 밉지만, 싫지만, 불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 내 친구를 잠깐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어제의 나를 만회하고자 하는 그 귀하고 안쓰러운 소망을 그들이 ‘먼저’ 시작해주었습니다. 그 염원을 전달받을 때마다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능동의 자리를 저는 여기서도 당신의 차례로 비워두고 싶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먼저 출발하는 이 칼럼의 바통을 저는 좋은 책과 성실한 마음으로 이어받아 끝까지 잘 마무리 지어보고 싶습니다. 당신만의 고민을 이곳(txt@hani.co.kr)으로 보내주세요. (불가피하게 지면에 맞추어 길이가 편집될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먼저’를 기다리며, 서울 명륜동에서, 요조 드림

요조 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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