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기범에 징역 150년 선고 사례도…“한국, 처벌 강화해야” 

정윤성 기자 2024. 11. 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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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가벼운 경제범죄에도 징역형…병과주의로 징역형 기간 합산
韓, 1조원대 펀드 사기에 징역 40년 최대…무기징역 전례 없어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국내 피해자만 28만 명, 피해 규모는 3000억원에 이른다.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피의자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얘기다. 권 대표는 미국 대신 한국으로 송환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으로 보내져 재판을 받을 경우 더 엄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경제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비판도 함께 등장한다. 특히 경제 사범에 있어선 해외 주요국들에 비해 관대한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권 대표와 같이 글로벌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이 기를 쓰고 한국에서 처벌을 받으려는 일까지 벌어진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시사저널 박정훈

왜 그럴까. 일단 미국 연방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표에 따르면, 범죄의 중대성에 따라 범죄 등급을 4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제범죄인 사기와 횡령의 기본 등급은 6~7단계에서 시작하는데, 범행만으로도 6개월 이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단계다.

사기, 횡령 등은 재산범죄 특성을 반영해 피해액의 규모가 증가할수록 범죄 등급도 일정 수준으로 가산되도록 하고 있다. 사기죄의 경우 총 16단계의 피해 금액별 구간이 설정돼 있다. 피해액이 5500만 달러(약 766억원)를 초과하면 최대 30등급이 더해진다. 이는 19년7개월의 징역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단계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사기, 횡령의 양형기준을 총 5단계의 피해 금액별 구간으로 나누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처벌 기준이 한층 세분화돼 있는 셈이다.

범죄 전력에 따라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가중 처벌까지 적용되면 형량은 더 오른다. 양형기준표엔 총 6단계로 나뉜 범죄 전력 범주도 함께 명시돼 있다.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은 전과가 있는 경우 3점, 60일~1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았던 경우 2점 등이 추가되는 방식이다. 이 범죄 전력까지 최고 점수(13점 이상)를 받을 경우 약 34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동종 누범은 국내에서도 가중 요소로 적용되지만, 권고 형량 범위를 정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인 탓에 감경 요소가 더 많이 적용될 경우 의미가 옅어진다.

버나드 메이도프 전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 ⓒEPA 연합

정부 기관 횡령, 1000달러 이상이면 30년 징역·25만 달러 과태료

정부나 정부 산하 기관에서 벌어지는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은 더 촘촘하게 구성돼 있다. 여기서 벌어진 횡령의 경우 통상 횡령액이 1000달러 미만이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만 달러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1000달러 이상이면 중범죄로 여겨져 더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는데, 최대 30년의 징역과 25만 달러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다.

게다가 미국에선 형량 산정에 병과주의가 적용돼 죄의 수만큼 징역형이 더해질 수 있다. 병과주의는 각 죄에 대해 독자적인 형을 확정하고 이를 합산해 형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여러 죄를 저지르고 10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는 중대 경제 사범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메이도프는 650억 달러 규모의 다단계 '폰지사기'를 벌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0년을 선고받고 벌금 1700억 달러도 부과받았다. 메이도프에겐 증권 사기, 투자자문 사기, 편지·전화 사기 등 다수의 사기를 포함해 총 11개 혐의가 적용되면서 징역 기간이 150년까지 뛰었다. 선고 당시 71세였던 메이도프는 2021년 교도소 의료시설에서 사망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죄로 인정된 여러 혐의 중 형량이 가장 높은 혐의를 기준으로 가중 처벌하는 가중주의를 택하고 있다. 물론 특경법에 따라 사기·횡령·배임의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실제 무기징역이 선고된 전례는 없다. 경제 사범에게 내려진 최대 형량은 1조원대 펀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확정된 징역 40년이다. 앞서 권 대표가 한국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자본시장법,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가중까지 예상됨에도 한국행을 원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한국 사회와 사법 체계 특징이 다른 만큼 해외의 엄격한 처벌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최근 국내에서 선고된 일부 경제범죄 사건 중에선 변화하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대법원은 회사 자금 2215억원을 빼돌린 오스템임플란트 전 재무팀장에 대해 징역 35년을 확정했다. 벌금 3000만원과 추징금 917억원까지 선고됐다. 재판부는 장기 복역을 감수하고서라도 빼돌린 범죄 수익을 가지려는 계획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선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징역을 범죄 수익에 따른 비용으로 여기는 범죄 풍토를 겨냥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경제범죄를 제외하면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인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유독 경제범죄에 관대한 처벌 관행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에선 아주 중대한 경제범죄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처벌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며 "특별한 범죄가 아니면 1심에서 집행유예냐 실형이냐를 우선 고민하고, 집행유예를 못 하면 형이라도 조금 깎아주며 타협하는 악순환을 깰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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