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집값 상승 반전 어렵다
주택시장에서 2024년은 정부의 대출 정책 변화와 '똘똘한 한 채' 선호 심리가 시장을 좌우한 한 해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와 비슷하게 2분기(4∼6월) 이후 거래량 증가 및 가격 상승세가 나타났다. 하지만 9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으로 4분기(10∼12월) 주택시장은 거래가 감소하고 가격이 조정받는 국면으로 반전됐다. 더욱이 미국 대선 이후 환율 및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2025년 주택시장에 대한 비관적 전망도 적잖은 상황이다. 주택시장을 놓고 늘 하락·상승 기대가 엇갈렸지만 내년 전망은 어느 때보다 안갯속이다.
올해 시장 이끈 실수요자의 갈아타기
부동산시장은 수요나 공급 같은 시장 내부 요인은 물론 금리, 정부 정책 등 외부 요인의 영향도 받는다. 내년 주택시장에 영향을 끼칠 내부 요인 중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은 수요와 공급이다. 올해 준공되는 주택은 약 55만 채로 최근 5년간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당초 우려와 달리 올해 주택시장에서 공급 부족에 따른 변동성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금리인상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 따라 올해 인허가·착공 물량은 최근 5년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착공 후 준공까지 평균 3년가량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2~3년 준공 물량 감소에 따라 시장 불안이 높아질 수 있다.
공급과 달리 수요에서는 올해 뚜렷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른바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이동하는 수요다. 지방보다 수도권, 수도권에서도 서울, 그중 강남권이나 도심 등 입지가 우수한 곳 중심으로 거래가 늘고 가격 회복세도 두드러졌다. 이 같은 흐름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KB국민은행의 KB선도아파트50지수는 올해 들어 전 고점(2022년 4월)을 넘어섰고,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와 격차도 커졌다. 집값 상승세가 두드러지는 지역의 대장주 인기 단지를 중심으로 수요가 몰리며 오르는 곳이 더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상급 입지의 대단지 신축 아파트로 옮겨가는 게 정답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똘똘한' 아파트로의 이동 수요가 올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 흐름을 이끌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수요자가 주도했다. 국토교통부가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자금조달계획서에 "기존 아파트를 처분해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기재한 비율은 2022년 41.8%에서 65.7%(1∼8월 기준)로 급등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임대보증금 승계 비율은 44.6%에서 36.8%로 하락했다. 갭투자 비율은 줄고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실수요자의 이동이 인기 지역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올해 주택시장을 강타한 외부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대출 정책 변화였다. 윤석열 정부는 주택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과 세 부담 증대로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지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값 과열 우려를 통제하는 장치로 대출 규제를 택한 모습이다. 지난해 발표된 스트레스 DSR 단계별 시행 방안에 따라 올해 2월 26일부터 8월까지 스트레스 DSR 1단계, 9월 이후 2단계가 시행됐다.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물론, 신용대출까지 기존보다 50% 가산금리가 적용되고 제2금융권도 규제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대출 총량 감소로 주택 구매 심리가 위축되면서 거래량 감소와 가격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 주택시장 최대 변수는 대출 규제
내년 주택시장 전망은 어떨까. 국제 정세와 경제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커 여느 해보다 불투명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광의의 통화인 M2는 전달보다 0.2%(8조1000억 원) 늘어난 4070조7000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달 협의의 통화인 M1은 1224조7000억 원으로 전달 대비 0.6%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시중 유동성이 급격히 늘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올 대기 자금도 증가해 주택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반대로 금융시장 위기가 발생하면 시중 유동성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M2에 비해 M1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되는 대기성 자금에 가까운 돈이다. 9월 기준 M1이 전월 대비 0.6% 증가한 것을 보면 집값 급락 가능성은 낮은 듯하다.
내년 주택시장은 어느 때보다 정부 정책이 주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주담대의 경우 내년 하반기 스트레스 DSR 3단계가 시행되면 은행권은 물론 제2금융권까지 모든 대출 한도가 크게 감소한다. 가령 연봉 5000만 원인 차주가 수도권에 집을 살 때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은 2억4500만 원으로 스트레스 DSR 도입 전보다 8400만 원 줄어든다(30년 만기 분할상환, 대출이자 4.5% 가정). 내년 기준금리가 올해보다 1.5%p 이상 하락해야 스트레스 DSR 시행 전과 비슷한 자금 조달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주택 착공·준공 물량은 올해보다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 55만 채로 추정되는 주택 준공 물량은 내년 35만 채, 2026년에는 30만 채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흐름이 전세 가격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주택 매입심리가 위축되고 대기 수요자가 늘어날수록 전세 수요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내년 주택시장은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시장 가격을 이끄는 요소가 될 공산이 크다. 주택 수요는 금리인하, 대출 규제 완화 등 유동성 공급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미국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내년에 금리인하가 가속화되거나 대출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주택 수요 심리는 당분간 위축될 수 있다.
종합하자면 내년 주택시장은 공급 감소에 따른 집값 상승 요인이 있지만, 수요를 억제할 국내외 각종 변수의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집값이 상승 반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4분기 약세로 돌아선 수도권 주택시장 분위기가 내년 전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 강남권 등 선호도가 높은 지역은 가격 조정폭이 커질 경우 대기 수요자의 진입으로 거래가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금리나 전세 가격, 대출 여건 등 자금 조달 상황이 회복 속도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집값 반등은 대출이 필요 없는 부자들이 선호하는 강남권 등 고가 주택에서 시작돼 서울 외곽과 지방으로 퍼져나간다. 그런 점에서 당분간 서울과 지방의 집값 격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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