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한다고? 영어 가사 있어야 돼? [콘텐츠의 순간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 음악 차트를 점령했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가사다. 한국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했다. 애초에 한국 대중을 목표로 만든 곡이었으니까. 싸이는 당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을 타깃으로 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평소처럼 국내 팬을 대상으로 내놓았는데 세계적인 히트곡이 된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이룬 성과는 맞춤 전략이나 영어 가사 등, 영미권 대중음악계 진출을 위해 필수라고 여겨졌던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았다.
물론 곡이 성공한 데에는 익살스러운 춤과 전염성 강한 뮤직비디오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해외 팬들이 ‘오빤 강남스타일~’을 떼창하는 부분에선 한국어 가사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강남스타일’ 이전에 로스 델 리오(Los del Río)의 ‘마카레나(Macarena)’가 있었듯이 꼭 영어 가사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이 대중음악 변방이었던 과거, 대략 2000년대까지만 해도 영어 가사를 기본으로 여기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긴 한다. 영화계와 마찬가지로 음악계에서도 언어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매년 정부 산하, 혹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진흥기관에서 아티스트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왔다. 현지 페스티벌 참여나 쇼케이스 주최, 음원 발매나 음반 계약 등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아티스트를 세계 음악 팬과 관계자에게 알리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키워드가 ‘영어 가사’다. 지원을 받으려는 아티스트 측은 영어 가사로 된 곡이 있거나 작업 중이란 사실을 중요하게 어필한다. 심사위원 일부는 매번 영어 가사로 된 곡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영어 가사의 곡을 발표한 이력이 없는 아티스트에겐 그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이가 한국 대중음악의 세계화를 위해선 영어 가사가 필수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많은 이가 ‘영어’에만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음악의 일부로서 영어 가사가 주는 감흥은 단순히 영어란 점에서 발현하지 않는다. 복합적 요인이 있다. 우선 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간과해선 안 된다. 언어는 각각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상징적 체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문화는 언어에 영향을 미치고 언어는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를 배제한다면 언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국보다 비교적 가사의 미학을 중요하게 따져온 영미권 대중음악에서 이 같은 언어와 문화의 밀접한 관계는 곧 가사가 발휘하는 힘과 직결된다.
이를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랩과 힙합이다. 땅이 넓은 만큼 로컬 문화가 탄탄하며 예술적 기반이 잘 형성된 미국에서 힙합은 지역마다 다른 언어의 특성과 힘이 감흥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장르다. 그들의 문화권 밖에 있는 우리에겐 전부 비슷한 영어로 들리겠지만 뉴욕·로스앤젤레스·애틀랜타 등등, 힙합 역사 속 주요 도시만 봐도 래퍼들이 다른 발음과 비속어를 사용한다. 각자의 삶과 문화에 따라 사용해온 언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금과 달리 남부 래퍼들이 소외받던 1990년대 중반, 뉴올리언스에서 활동하던 래퍼 주버나일(Juvenile)은 오로지 지역 팬들만을 고려한 음악을 발표해왔다. 철저히 지역 빈민가에서 쓰이는 비속어를 사용하여 가사를 만들고, 남부 억양으로 랩을 했으며, 뉴올리언스 특유의 트워킹(자세를 낮추고 상체를 숙인 채로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며 추는 춤) 문화를 반영한 비트를 선보였다. 그러던 중 ‘백 댓 애즈 업(Back That Azz Up)’이란 곡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 히트했을 때 래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만의 언어와 문화를 반영한 곡이 뉴올리언스를 벗어나서까지 히트할 줄은 몰랐어.”
이 일화는 영어 가사의 음악이 지닌 다각적 매력과 함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크게는 같은 문화권에 사는 듯하지만 세부적으론 다른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이 모인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영어 가사의 곡임에도 발음과 표현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되는가 하면, 다름이 오히려 커다란 감흥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단 힙합만의 예가 아니다. 과거 알앤비·솔(Soul) 역시 시카고·필라델피아·멤피스 등 지역 이름을 딴 서브 장르의 아티스트 대부분은 고향 특유의 발음으로 노래하곤 했다.
영어 가사가 독이 된 케이스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커다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라틴 아티스트의 음악도 좋은 예다. 그들은 주로 스페인어와 영어를 혼용하여 작사를 하거나 영어로만 된 곡을 이른바 ‘라티노화’한 발음으로 부른다. 보편적인 영어권 문화 속의 대중에게 그들이 구사하는 영어와 발음은 이질적이지만, 그렇기에 일반적인 영어 가사의 곡에서 느끼지 못한 색다른 감흥을 받기도 한다. 대중의 영역을 영미권으로 확대하면 간과해온 부분이 더욱 커진다. 대표적으로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만 비교해봐도 각각 사용하는 표현과 발음이 천지 차이다. 같은 영어이지만 일상에서의 의사소통이라는 기능을 뒤로한 채 본다면 영어 가사 자체는 국경을 넘어 어필하는 데에 별다른 효과가 없어 보인다. 과거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은 힙합·알앤비 미디어 〈리드머〉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선 래퍼들이 미국식 영어로 랩을 하면 야유를 받을 때도 있어요”라고 밝힌 바 있다. 그야말로 영어 가사가 독이 된 케이스다.

지금처럼 영어만을 중심에 둔다면, 도리어 수없이 많은 영미권 대중음악 속에서 고유한 매력을 상실한 채 ‘평범한 곡들 중 하나’가 될 가능성도 크다. 이미 온라인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을 접하고 열광하는 세계의 음악 팬에게 영어 가사 여부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익히 들어온 영어 가사의 곡보다 새로운 언어인 한국어 가사에 호기심을 보이고 흥미로워한다. 애초에 케이팝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배경만 따져봐도 영어 가사 지분은 크지 않았다. ‘강남스타일’처럼 영미권 대중음악에서 듣고 보기 어려웠던 음악적 특징과 음악 외적 요소의 결합이 신선함을 준 덕분이다. 한국어 가사도 그중 하나다.
당연히 아티스트가 영어를 잘한다면 유리하다. 다만 음악 자체보다 활동 면에서 그렇다. 세계의 매체나 팬들과 소통이 원활할수록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인지도를 쌓고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음악이 꼭 영어 가사일 필요는 없다. 음악이야말로 언어의 장벽을 가뿐히 뛰어넘어 누구의 마음에든 가닿을 수 있는 예술 분야이니까. 음악적인 매력이 선행된다면 가사는 알아서 해석하며 듣는다. 우리가 예전부터 팝송을 그렇게 들어왔듯이 말이다. 더구나 지금은 AI 번역 기술이 언어에 따른 단절을 해소하는 시대다. 여전히 영어 가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오늘날 일종의 강박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메이저와 인디의 많은 케이팝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강일권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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