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산·죽도, 물통 하나면 된다… 홍성에 혼자 와서 미안하다

김홍준 2024. 11. 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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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생각났다. 이곳의 이름, 홍성 뒤에 한 글자 ‘우’를 더했더니 그의 이름이 됐다.

성우는 이름 때문에 중학교 사회 선생님에게 종종 질문을 받았다. “우리나라 지진이 제일 세게 난 곳이 어디야.” “충남 홍성이요.” 여기까지는 좋다. “언제" "규모는" "왜 났어" 등의 질문이 이어지면 성우의 동공에 작은 지진이 일어났다.
충남 홍성 용봉산(381m)은 기암괴석이 즐비하지만, 힘들이지 않고 3시간이면 볼 것 다 보고 누릴 것 다 누릴 수 있는 산이다. 춘하추동 가릴 것 없이 이 고장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처럼 '은근히' 많이 찾는 산이다. 용봉산 주능선에는 막 뜬 해가 빛을 비추고, 능선 위에는 달이 저물어가는 장관이 펼쳐졌다. 김홍준 기자

지난 2일 서해선과 장항선 복선전철화 운행이 시작되면서 열차편이 늘어났다. 홍성역이 들썩이고 있다. 홍성역 관광안내소 관계자는 “방문객이 5배가량은 늘었다”고 전할 정도이니까. 1978년 10월 일어난 규모 5.0 지진으로만 이 고장을 기억한다면, 홍성은 억울해할 것 같다. 산과 바다. 이 두 가지로도 새 기억을 심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성우가 사회 시간 뒤에 말하곤 했다. “나중에 그 홍성에 한 번 가봐야겠어.” 나도 같이 가자고 했다. 그로부터 몇 년도 아니고, 수십 년이 흘렀다.

#열차편 늘어나면서 방문객 5배 늘어
지난 18일. 서해선을 타고 평택 안중에서 온 50대 여성들이 홍성역 앞에서 ‘산’과 ‘바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홍성역에서 우회전해 용봉산(381m)으로 가느냐, 좌회전해서 남당항 앞 죽도로 향하느냐. 어딜 가도 후회막급 U턴을 할 까닭은 없다. 홍성 사람들 자부심이 가득한 용봉산으로 먼저 향했다.

희한했다. 큼지막하게 꽉 찬 수퍼문에서 막 벗어난 달이 서쪽에, 비 오다가 흐리다가 며칠 만에 몸통을 드러낸 해가 동쪽에. 그리고 이렇게 늦게까지 피어있는 단풍이 곳곳에. 동튼 지 겨우 얼마. 햇과일처럼 신선한 햇살에, 살 드러낸 바위들은 차라리 연분홍이었다.

근처 당진 현대제철소 해오름산악회 회원들이 경공(輕功)을 연마한 듯, 발끝을 곧추세우고 바삐 다가왔다. 용바위에서였다. “산행 경력으로 보면 내가 아무래도 선배”라며 이름을 밝힌 길선배(59)씨가 말했다. “홍성에 오서산(791m), 백월산(394m) 등도 있지만, 발은 기암괴석과 폭신한 흙에, 눈은 멀리 예산과 서산·당진·안면에 두루 둘 수 있어요. 그것도 부담 없이 물통 하나만 들고 3시간이면 산 한 바퀴를 돕니다.”

정말 물통 하나만인가. 조상 대대로 살아왔다는 홍성 토박이 김남순(63)씨는 그 물통 하나마저도 없었는데, 그는 “기기묘묘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산, 홍성 사람들의 자부심이 새겨진 산”이라며 “어제(일요일)도 사람이 많아 줄 서서 올라갔다는데…”라고 전했다.

용봉산 노적봉 정상 아래에 있는 '옆으로 크는 나무'는 '용봉산의 보물' 중 하나다. 김홍준 기자
용봉산 정상에는 고양이들이 사는데, 이곳을 찾는 2030 등산객들에 의해 SNS를 타고 인플루언서가 됐다. 김홍준 기자
솟구치고 벌어지고 퍼지고. 동그랗고 네모나고 층지고. 그래서 병풍·행운·솟대·용…. 저마다의 모양으로 이름과 뜻을 갖게 된 바위들. 우린 이런 바위산을 골산(骨山)으로 부른다. 그런 바위에 기대어 살아가는 ‘옆으로 크는 나무’도 있고, SNS로 뜬 인플루언서 야옹이들도 있으니 때로는 멀리 둔 시선을 거둬 앞에 놓을 필요도 있다.

다산 정약용도 일찌감치 용봉산 바위에 감흥이 일었나 보다. 그는 북산이었던 이 산의 이름을 바꾼 절을 찾은 뒤 ‘용봉사를 지나며’라는 시에 이렇게 남겼다. ‘뭇 봉우리 드높이 솟아오르니/투박한 살 털려 나갔네.’

충남 서쪽에는 높은 산이 없다. 해발 100m도 채 안 되는 산이 60%다. 그나마 오서산이 압도적인데, 홍성 사람들은 김남순씨 말처럼 용봉산에 마음을 더 둔다. “일단 와봐유.” 김씨가 숨길 수 없는 충남 사투리로 자신했다. 새로 단장한 홍성역 승강장 입구에 용봉산 사진을 1순위로 올린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듯하다. 길선배씨가 “요 앞에 충남도청이 들어선 것도 용봉산 때문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설이 있더라”며 귀띔했다.
용봉산 병풍바위로 향하는 능선 상의 한 바위에서 사진을 찍는 탐방객. 김홍준 기자

지난해 용봉산을 찾은 이들은 약 11만 명(관광지점 방문객 통계). 1년 새 4만 명가량이 늘었다. 홍성 관광지 중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이제 뻥 뚫린 홍성역을 통해 이 산을 찾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정아(31·경기 안양)씨도 그중 한 명. 막 뜬 해를 등으로 받아 그림자를 앞으로 쏟아낸 낙조대를 보더니 함께 온 부모에게 말했다. “동생 데리고 다시 오자. 멋지다.” 이렇게 걸러지지 않은, 단순한 표현은 강렬하다. 마음 깊은 곳을 콕하고 찍었다.
#2시간이면 죽도 한 바퀴 돌며 일몰 감상
탐방객들이 홍성 죽도 둘레길을 걷고 있다. 죽도는 남당항에서 홍주호를 타고 15분이면 닿는다. 대인 1인당 운항료(왕복)는 1만원. 배편은 오전 9시, 10시(주말), 11시, 오후 1시, 2시, 4시. 김홍준 기자
용봉산에서 일출을, 남당항에서 일몰을 지켜볼 수 있는 세트 여행도 괜찮다. 중간에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과 결성칼국수에 들를 수 있는 동선이다. '세트 메뉴'가 양이 제법 되므로 체력 조절이 필요하다. 시쳇말을 섞어 말하건대, 산행에 젬병이면 홍성역에서 바로 좌회전해 남당항으로 향해도 좋다.
홍성은 조선말까지도 홍주부(洪州府)란 이름으로 스물두 개의 군을 관할했다. 충청 서부권의 중심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홍주는 결성군과 합쳐져 이름 한 글자씩 가져와 홍성군으로 바뀌었다. 홍성에는 ‘홍주’를 앞에 내세운 간판들이 즐비하다. 번성했던 옛 이름을 되찾자는 홍성 사람들의 다짐인 것 같다.
충남 홍성군 홍북면의 고암이응로생가기념관 북카페에서 바라본 늦가을 정취. 커피를 포함해 카페 이용은 무료다. 김홍준 기자
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남당항에서 진득하게 기다릴 수도 있다. 물때가 안 좋으면, 바람이 심하면 배는 뜨지 않는다. 역시 ‘홍주’ 글자를 앞머리에 두른 배는, 귤 하나 까먹고 믹스커피 한잔 마시는 15분이면 죽도에 닿는다. 죽도는 ‘천수만의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죽도는 홍성군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작다. 마을이 2개, 전망대가 3개. 주체 못 할 정도로 많은 머리숱처럼, 대나무가 풍성하다. 이 대나무 숲 사이로 4㎞도 안 되는 단정한 둘레길을 음미하는 데 2시간이면 족하다. 이곳도 물통 하나면 된다. 하지만 작고도 짧은 길은, 장엄한 일몰처럼 여운이 강하다. 함께 홍주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용봉산의 한정아씨처럼 “멋지다”를 외쳤다.
탐방객들이 충남 홍성 유일의 유인섬인 죽도 둘레길을 걷고 있다. 김홍준 기자

얼마 전 대하축제를 치른 남당항에는 노을전망대가 있다. 홍성의 해안은 30㎞로 짧은데, 어디든 서 있는 곳이 일몰 전망대가 될 정도로 호젓하다. 지난 1월에는 65m 홍성스카이타워가 문을 열어 태안반도 너머까지 볼 수 있다.
어둑해질 무렵, 홍성역으로 다시 향했다. 홍주읍성에 불이 들어왔다. 다른 읍성과 달리 남쪽을 비운, 독특한 구조다. 20대의 3개월간 홍성에서 살았던 후배는 1일과 6일에 여는 홍성오일장에서 푹 고아 내놓은 소머리국밥이 최고였단다. 그리고 커피 한잔 들고 홍주읍성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때. 읍성을 비추는 불빛처럼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충남 홍성군 홍성읍 홍주읍성은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동문인 조양문(朝陽門)과 외삼문(外三門)인 홍주아문(洪州衙門), 동헌(東軒)인 안회당(安懷堂), 여하정(余何亭)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사진에 보이는 남문 홍화문(洪化門)은 2013년 복원한 뒤 지난해(2023년)부터 11월부터 시작한 보수공사를 마치고 올해(2024년) 7월 재개방했다. 김홍준 기자

다시 수십 년 전. 사회과부도 속 지도를 복사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성우는 자신의 집에 복사기가 있다고 했다. 재벌 집에도 복사기가 없을 텐데, 의심하기는 했다. 성우의 집에는 복사기가 아니라 등사기가 있었다. 외아들 성우의 누나 둘이 와서 "이 바보들"이라고 했다. 숙제를 못 한 우리는 다음날 사회 선생님께 호되게 당했다. “성우, 넌 홍성이 어디 있는 지는 알아야지, 그리고 홍주랑 이름 비슷한 너는?”

성우는 홍성에 결국 가지 못했다. 갈 수도 없었다. 그는 20대에 접어들기도 전에 더 먼 곳으로 떠났다.

홍성. 친구가 생각났다. 혼자 다녀와서 미안하다.

■ 홍성역 도착했다면 … .

「 ITX-마음이 새로 투입되는 등 열차편이 늘었지만, 홍성역에 도착한 뒤 다음 교통편을 준비하지 못하면 당황할 수 있다.
10명 이상의 단체라면 홍주문화관광재단에서 입찰 계약한 통일관광여행사(041-631-8288)를 이용하면 편하다. 1인당 5000원으로 버스에 몸을 싣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 예약은 필수다.
그보다 적은 4인 이하면 홍성군에서 진행하는 신바람 관광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4시간 이용에 4만원, 6시간은 6만원이다. 추가 1시간마다 2만원이다. 홍성군청 문화관광과(041-630-1228)나 로이쿠 앱으로 예약하면 된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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