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불쑥 추경론’에 당정 혼란, “급조” “주먹구구” 비판

최하얀 기자 2024. 11. 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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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한창인 와중에 돌연 내년 중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이 거론됐다. 22일 대통령실이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다. 그간 적극적인 재정운용에 선 긋기를 해오던 정부의 기존 입장을 염두에 두면, 커다란 정책 기조 변화다

하지만 정작 예산을 키워 쓰는 방식과 시점, 내용 등 ‘구체안’을 두고는 정부·여당 안에서도 혼란이 큰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재정운용 기조 변화 흐름에 대해 “뒤늦은 급조”, “주먹구구식 경제 정책”이란 평가를 내놨다.

■ 대통령실서 튀어나온 추경 편성론…하루만에 주워담기 급급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현재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재정이 이전보다는 더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맞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다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한 언론이 ‘내년 초 추경’ 가능성을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연초 추경은 전례도 거의 없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재 국회 예산 심의에서 필요한 예산을 반영해 내년 상반기에 집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적극적 재정 운용을 펼칠 것을 시사해 온 가운데, 그 방식이 연초 추경이 될지, 현재 심의 중인 예산안에서의 ‘변주’가 될지 등을 두고 대통령실 내 혼란이 표출된 모습이다.

여당과 기획재정부는 곧장 연초 추경론을 일축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입장문을 내어 “내년도 본예산 심의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추경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고, 기획재정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내어 “내년 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추경은 국회가 심의·의결한 예산(본예산)이 집행되는 도중에 경기침체·천재지변 등 특별한 사유가 생겨 새로 편성해 집행하는 예산인데, 아직 본예산이 결정되기도 전에 추경이 거론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분위기다.

이날 오후 들어서는 대통령실이 재차 나서 “추경은 논의한 바도, 검토한 바도 없다”는 설명을 내놨다.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오전 설명에서 또다시 말이 바뀐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은, 일반론적 언급”이라고도 부연했다. 설익은 추경론의 불씨가 진화하려 정부·여당이 종일 ‘주워담기’에 매달린 모양새다.

추경론 근거도 뒤죽박죽…“재정 기조도 급조하나” 쓴소리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내리 ‘짠물 예산’을 운용해오던 데서 적극적 재정운용으로 기조 변화를 꾀하는 ‘이유’도 혼란스럽다. 대통령실에서는 더 나쁜 경기 흐름과 양극화 타개 등 서로 다른 이유를 산발적으로 꺼내놓고 있다. 재정운용 기조의 변화를 준다는 큰 틀의 방향 제시만 있을 뿐, 기조 변화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재정 정책을 ‘급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며 “지금까지 기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할 수는 있지만, 이때 그런 정책적 결정을 하게 된 이유와 구체적인 내용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적 재정운용으로 돌아서는 필요성을 어느 쪽으로 내세우건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 대응을 앞세우자니, 최근까지도 정부는 “경제가 기지개를 켠다”(11월20일·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내수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기획재정부 경제동향 5∼10월호)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도 내년 우리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2.0% 내외)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경고를 새롭게 꺼내놓긴 했지만, 이 역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점이었기도 하다. 내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줄곧 제기돼 온 데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 대선 당선은 우리 경제의 ‘하방요인’이란 경고도 꾸준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 양극화 해소를 추경으로?…“감세 정책부터 원위치해야”

경기 대응이 아닌 양극화 타개를 강조하기에는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진작에 관련 예산이 반영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양극화 심화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특히나 양극화 타개를 위해 추경을 한다는 것은 매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며 “추경은 전쟁이나 경기침체 같은 상황에서 가라앉을 수 있는 경기를 떠받치기 위한 단기적 처방 성격으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정책은 더 긴 시야에서 맞춤형 정책설계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선 현재 국회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필요한 예산을 추가 반영하겠다고도 했지만 이 역시 구체안이 발표되지 않아 혼란을 키운다. 국회의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은 12월2일로, 앞으로 불과 약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도 예산안은 총지출(677조4천억원)을 올해 대비 3.2% 늘리는 초긴축 예산안으로, 국회 심사 과정에서 일부 예산을 늘린다고 해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더욱이 예산안과 함께 논의 중인 세법엔 상속세 완화 등 감세안이 여럿 담겨 이 때문에 5년간 20조2천억원의 세수가 줄어들 거란 분석(국회예산정책처)이 나와 있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재정운용 기조에 변화를 주려면 일단 추가적인 감세 조처부터 중단하고 기존의 감세 조처를 원위치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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