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해진 부산 앞바다, 두 번씩 확인하며 항해”
플라스틱 감축 촉구 위해 부산 방문
어망·방수포 많아 항해때 더욱 조심
한국,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 줄여야
“특히 이 해역에서는 이중으로 신경 써요(Especially in this area I’m double aware).”
부산 남항대교 앞에 떠 있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만난 헤티 기넨 선장은 지난 17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오는 25일 시작되는 유엔 국제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를 앞두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포함한 협약을 촉구하기 위해 홍콩과 대만을 거쳐 지난 14일 부산에 도착했다. 한국을 찾은 건 8년 만이다.
기넨 선장을 긴장하게 한 것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이었다. 시작은 2016년이었다. 17년간 그린피스에 몸담은 끝에 그는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선장으로서 첫 항해를 부산에서 시작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멈춰 섰다. 선박의 프로펠러 날개에 무언가 걸렸다. 물 속으로 잠수부를 내려보내 확인해 보니, 어업용 그물이었다.
대만 가오슝(高雄)항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며칠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거대한 플라스틱 천이 바다에 떠 있었다. 선박 적재물을 덮는 방수포로 추정됐다. 기넨 선장은 “엔진을 잠시 멈추고 살핀 뒤 걷어내야 했다”며 “몇 분 내에 해결됐지만 위험했다. 방수포가 녹아내리기(melting) 시작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당시 바다로 들어갔던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루이스 페르난데스 바스퀘즈 기관장은 “수심 4m 지점을 5분 이내에 돌아오는 얕은(shallow) 잠수였지만 진을 빼는(exhausting) 작업이었다”며 “이전에도 예닐곱 번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파도가 높고 선박이 매우 흔들려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써야 했다”고 돌이켰다.
남극해부터 그린란드해, 대서양, 남태평양, 인도양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쓰레기가 침투하지 않은 바다는 없었다는 것이 레인보우 워리어호 사람들의 증언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는 바다에는 늘 고통받는 해양생물들이 있었다.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이그나시오 소헤 부선장은 지난해 대서양 멕시코 연안에서 그물에 걸린 혹등고래를 만났다. 혹등고래를 붙잡고 있던 건 게잡이 그물이었다. 랍스터 등 갑각류 어업이 대규모로 이뤄지는 곳은 한창 북쪽인 미국 북부와 캐나다다.
소헤 부선장은 “혹등고래가 언제, 어디서부터 그물에 걸렸는지 모르지만 엄청 느린 속도로 헤엄치고 있었다. 펄떡(flapping)거리는 게 꼭 주의를 끄려는 것 같았다”며 “그물을 끊으니 행복해 보였다”고 회상했다.
플라스틱 오염은 해양 생물과 뱃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이를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가속한다.
기넨 선장은 “이번 부산까지 항해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태풍”이라며 “10월 말이면 태풍이 끝나야 하는데 올해는 11월이 넘도록 지속됐다. 기후변화, 화석연료, 그리고 플라스틱의 악순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극지방을 아홉 차례 찾았다는 소헤 부선장도 갈 때마다 달라지는 바다를 목격했다. 그는 “이전에는 갈 수 없던 장소에 이제는 쉽게 갈 수 있다”며 “얼음을 부수거나 물대포를 쏘아 녹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에서 비롯되는 피해의 면면을 이미 봐버린 레인보우 워리어호 사람들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이들의 과제는 플라스틱 오염의 무서움을 모르는, 혹은 외면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다. 물론 쉽지 않다.
소헤 부선장은 “거대한 바다와 플라스틱 오염 앞에 나는 너무 작은 존재”라며 “경험담을 들려주거나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주는 건 쉽지만, 가슴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건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기넨 선장도 “좋은 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플라스틱 오염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의 지지와 동참이 중요하다”며 “그러면 정책 입안자들도 인식 변화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인보우 워리어호 사람들이 본 부산은 아름답고 깨끗하고 살기 좋지만 플라스틱 감축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했다. 부산에 기착했던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모든 물건이 이중 포장돼 있어 놀랐다”, “때로는 원치 않아도 신선 식품을 먹으려면 플라스틱 쓰레기까지 함께 사야 했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우선 불필요한 플라스틱부터 줄여가자는 것이 레인보우 워리어호 사람들의 조언이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포장만 벗겨내면 바로 기능을 잃는다. 바스퀘즈 기관장은 “의료 등 일부 분야에서 플라스틱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외에는 플라스틱 선택권이 제한돼야 한다”며 “시민은 스스로 판단하고, 상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2040년까지 플라스틱 원료(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을 2019년 대비 75%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될 국제플라스틱협약에 적어도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넨 선장은 “협약조차 없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고,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는 늘어나기만 할 것”이라며 “부산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포함한 ‘좋은’ 협약이 성안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주소현 기자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