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80에 시작한 사진, 生에 소중한 것은
지난 주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한 갤러리에서는 눈길을 끄는 사진전이 열렸다. 여든 일곱 살 엄마와 예순 다섯 살 딸이 함께 찍은 사진들의 전시회였다. 미수(米壽, 88세)를 앞둔 나이에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사진은 어떤 것일까? 전시 첫날인 지난 13일 서울 운현궁 뒤 골목에 있는 전시장을 찾았다. 딸 전인숙 (65) 사진가가 있었고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엄마 이정인(87) 씨와 함께 사진을 걸게 된 사연을 들었다.
엄마가 80이 된 해에 전 씨는 자신이 쓰던 자동카메라를 드렸다. 딸이 준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던 엄마는 어느 날 “내가 찍은 거는 왜 네 사진처럼 뒤가 안 날아가니?”라고 물었다. 엄마 카메라는 ‘똑딱이 자동카메라’라 아웃포커스 기능이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도 딸처럼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다.
결국 전 씨는 줌렌즈가 있는 DSLR을 사드렸고, 어딜 가든지 엄마 이 씨는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딸은 “ 오랜 남편의 병수발과 5남매 모두 잘 키우시고 고생만 하던 엄마는 나이 팔십에 카메라를 들자 집 밖으로 나가셨다.사진을 찍으며 ‘나’라는 존재를 찾으신 것 같다”고 했다.
전시장엔 엄마의 사진들이 많았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하거나 색종이를 접고, 시골 평상 앞에서 모인 사람들도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 열중하는 딸의 모습과 반대로 엄마를 찍은 딸의 사진도 있었다. 언뜻 보면 평범해서 사진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카메라로 뭐든지 찍고 싶었다. 천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나 풀잎에 맺힌 이슬을 촬영한 사진들로 지난 2019년엔 단체전에 함께 전시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엔 엄마가 만난 주변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을 촬영한 때가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어도 사진마다 세상을 떠나거나 지나간 과거에 자신이 어울렸던 형제, 친구들의 모습이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심해지자 엄마는 오랫동안 살던 강원도 원주에서 딸들이 사는 서울 강동구로 이사했다. 친구나 형제, 어울리던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 또 볼까하는 마음이 사진 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한번은 원주에 사는 친구를 그리워하던 엄마를 모시고 내려갔고, 엄마가 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딸 전 씨는 기록했다. 그렇게 그립던 사진 속 친구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고, 걸려있던 사진은 생전에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의 생은 어쩌면 그리 특별하거나 빛나는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오직 그 시간을 살아온 자신만 기억할 뿐이다. 사진은 그런 기억들을 기록하고 특별한 이야기로 남겨 우리 앞에 소환한다. 엄마는 카메라를 선물한 딸에게 “최고의 효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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