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눈물 나는데 금융주만 신난 이유

2024. 11.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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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나흘째 급락세를 지속한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65.49포인트(2.64%) 내린 2,417.08에 거래를 마감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김범준 기자



국내 증시가 나홀로 하락을 이어가면서 너도나도 해외 증시로 투자 이민을 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장(국내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은행주는 달랐다. 올해 국장에서도 재미를 본 대표적 업종으로 꼽힌다. KB금융지주 주가(11월 20일 종가 기준)는 연초 대비 78% 오르며 금융 대장주로 우뚝섰다.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각각 42%, 41% 뛰었다. 전직 회장의 친인척 불법대출 사태 등 잇따른 악재를 겪은 우리금융지주도 29% 상승했다.
 

 ①은행주 어떻게 밸류업 수혜주가 됐나

올해 은행주의 랠리(강세)를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은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 정책은 주주환원 의지가 높은 저평가주를 발굴하고 지원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가치 저평가)를 해소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핵심 전략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및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 등이다. 기업가치 우수기업으로 구성된 지수를 개발해 ETF·펀드 등 금융상품 출시에 활용하고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벤치마크 지표로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저평가주로 꼽히는 은행주와 자동차주를 비롯해 코스피와 코스닥의 가치주는 연초 밸류업 기대로 상승 흐름을 탔다. 

지난 2월 밸류업 정책 발표 직후엔 실망 매물이 쏟아졌다. 주주환원을 유도하기 위한 파격적인 세제 지원도 없었고 우수기업의 정의도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알아서 잘하라는 게 전부였다. 당시 금융당국은 “매년 우수기업에 대한 표창을 수여하고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등 세정 지원을 할 것”이라며 “다양한 세제 지원 방안도 강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은행주는 달랐다. 주가의 질주가 계속됐다. 정부의 입김 속에 주요 금융지주들은 다른 업종보다 높은 수준의 주주환원 정책을 약속했다. 배당도 두둑하고 자사주 소각 규모가 엄청났다. 

KB금융의 연간 배당금은 총 1조2000억원으로 분기당 3000억원 규모다. 올해 자사주 소각은 총 8200억원이다. 1분기 3200억원의 자사주를 소각했는데 당시 시가총액이 31조원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분기 만에 1% 주식이 사라졌다. 투자자 입장에선 이 주식을 들고 있으면 밸류업 수혜에 주가도 상승하고 배당금도 챙기고 자사주 소각에 또 한 번 상승하는 일석삼조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적도 좋았다.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은 이자이익만 30조원이 넘었다(3분기 누적 기준). 잘나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영업이익이 21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자 장사의 위력을 알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도 반응했다. 은행주는 기존에도 외국인이 많이 들고 있었고 올 들어 매수세가 더 강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B금융의 경우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5254억원, 4473억원을 순매수했다(1월 2일~11월 20일). 반면 개인은 7574억원을 순매도했다. 1년 전 72% 수준이었던 외국인 지분율은 현재 78% 수준까지 상승했다. 신한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59%→61%(외국인 지분율), 우리금융은 37%→45%로 올랐다. 하나금융은 68% 수준을 유지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②지수 포함 안 돼도 질주

9월 24일 한국거래소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구성종목과 ①시장대표성(시총) ②수익성 ③주주환원(배당·자사주 소각) ④시장평가(PBR·주가순자산비율) ⑤자본효율성(ROE·자기자본이익률) 등 5가지 선정기준을 발표했다. 모호한 선정 기준과 구성 종목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편입 기준(수익성)을 충족하지 못한 SK하이닉스가 시장 영향력을 이유로 특례제도를 통해 지수에 포함된 반면 파격적 주주환원 대책을 제시한 KB금융과 하나금융 등은 빠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은행주는 시총과 수익성, 주주환원 요건은 충족했지만 PBR 기준에서 탈락했다. 산업 내 PBR 상위 50%를 충족해야 하는데 비교군이 ‘금융업’으로 설정되면서 최근 2년 평균 중앙값인 0.6배에 못 미치는 금융지주(PBR 0.3~0.4배)가 모두 배제된 것이다. PBR이 높은 손해보험사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였다. 다만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은 포함됐는데 “발표 전 밸류업 공시를 한 데다 공시한 기업 중 비교군에서 상대적으로 PBR과 ROE 기준이 높아 편입됐다”고 거래소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런 논란에도 은행주는 고공행진했다. 특히 KB금융과 하나금융은 발표 이후 한 달간 각 20%, 10% 넘게 뛰었다. 금융지주들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일제히 발표한 영향이 컸다. 이들은 3~4년 안에 주주환원율을 5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주주환원율은 벌어들인 순이익에서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등을 통해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비율을 의미한다. 과거 금융지주의 주주환원율은 30% 수준을 넘어선 적이 없다. 계획에 맞춰 주주환원율을 확대할지는 알 수 없지만 투자자들은 매수로 호응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사실 방법론은 대동소이하다. 올해 밸류업 공시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이행 속도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③최대 수혜자 KB, 앞으로 더 오를까

“우리사주 사면 소득공제가 돼요. 매달 월급에서 일정 금액이 빠져나가게끔 설정하고 그동안 신경도 안 썼는데 어느새 보니 주가가 10만원이 됐더라고요. 선물받은 것 같았어요.”(KB금융 직원)

밸류업 정책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곳은 KB금융이다. KB금융의 지난 11월 20일 종가는 9만5600원이다. 밸류업 공시를 한 다음 날인 10월 25일에는 1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현재 시총은 38조2000억원 수준이다. 연초 17위였던 코스피 시총 순위는 10위권까지 올라섰다.

최정욱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KB금융은 국내 은행 중 가장 높은 보통주자본비율(CET1)과 실적 개선 기대감, 리딩뱅크를 선호하는 외국인 수급 개선 효과 등이 맞물리며 업종 내 대장주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일본도 밸류업 정책 발표 이후 리딩뱅크인 MUFG와 SMFG의 주가 상승률이 타행들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KB금융과 하나금융의 경우 밸류업 지수에 새로 편입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12월 20일 밸류업 지수에 구성 종목을 추가로 편입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개발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혹평이 쏟아진데 따른 후속 조처다. 이에 따라 한시적으로 구성 종목 수가 ‘100+알파’로 늘지만 내년 6월 정기변경 때 편출을 통해 다시 100종목으로 돌아가게 된다.

신규 편입 심사 대상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 이후 12월 6일까지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이행한 기업이다. 주요 은행주는 전부 밸류업 공시를 이행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도 11월 안에 공시를 올릴 예정이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운용되고 2000억원 규모의 펀드가 조성되는 만큼 수급요인이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카카오뱅크까지 포함해 12월 주요 은행주가 밸류업 지수에 편입되면 수급의 차별화가 약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④ 저위험 대출만 늘려야 한다?

일각에선 밸류업 정책이 은행의 대출 문턱을 높이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CET1 비율 관리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금융권에 CET1 비율 관리를 13~13.5%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CET1 비율 관리가 금융지주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핵심 정책이 됐다. 

CET1 비율의 계산식은 분자가 보통주자본, 분모가 위험가중자산(RWA)이다. 자기자본이 늘어날수록 CET1 비율이 오르고 대출을 확대해 RWA가 늘어나면 내려가는 구조다. 담보가 있는 대출이나 차주 신용등급이 높을 경우 위험가중치가 상대적으로 낮다. 기업대출 중에서는 대기업대출이 중소기업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낮다. 밸류업 관리를 위해 중저신용자 및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대출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신한, 하나, 우리 등 상반기 기업대출에 드라이브를 걸던 주요 은행들이 최근 속도조절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래는 12%였는데 어느새 13%가 됐다”며 “금융사는 위험에 비례해서 돈을 버는 구조인데 이런 식으로의 규제는 금융산업 입장에선 이율배반적”이라고 꼬집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밸류업 정책 자체가 엉터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배당을 많이 해주는 것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며 “기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투자를 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삼성전자가 장기적인 미래 전략을 세우지 못해 실패했다”고 말했다.

반면 은경완 애널리스트는 “투자자 입장에선 밸류업 지수 산정의 적정성보다는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이 가져온 본질적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주주친화적인 경영전략 시행과 글로벌 주요 은행 수준의 총주주환원율 달성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행동주의펀드들이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인데 그동안 은행은 정부 곳간으로 눈치만 보고 주주환원 정책을 시행하지 못했다”며 “외국 자본 비중이 큰 금융사엔 이번 정책이 기회”라고 주장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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