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수출 장애물 될 트럼프 관세 폭탄, 1기 때 ‘픽업트럭’ 같은 돌파구 찾아야

김홍수 논설위원 2024. 11. 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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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美中 관세전쟁 대응책
그래픽=백형선

트럼프 2기 출범 예고만으로도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증시는 바닥을 기고, 환율도 불안하다. 트럼프가 공언한 ‘관세 폭탄’이 수출 중심 한국 경제에 초대형 악재가 될 것이란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관세 10~20%를 물리고, 중국산 수입품에는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중(美中) 관세 전쟁이 본격화되면 직간접적 타격 탓에 우리나라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총수출의 7%) 격감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우리가 대응하기에 따라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다. 트럼프 1기 미·중 관세 전쟁 때 한국은 큰 피해 없이 비켜갔다.

그래픽=백형선

◇트럼프 2기 핵심 정책 ‘감세+관세 인상’

트럼프는 1기 때 실행한 ‘법인세 감세+관세 인상’ 정책 패키지가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이를 더 강화하는 ‘감세+관세 인상’ 시즌2를 준비했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 사태 이전 트럼프 1기 전반기(2017~2019년) 중 미국 경제는 연 2~3~2.9%씩 성장하며 좋은 성적을 냈다. 트럼프는 집권 2기 중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법인세율을 21%에서 15%로 내리겠다고 공약했다. 그의 경제 참모들은 법인세 감세로 10년간 줄어들 세금 2조5000억달러는 현재 3.3% 수준인 관세를 10~20%로 올리고, 중국에 60% 관세를 물리면 추가 세수가 생겨 재정 공백이 메워진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2기 정부에 관세 폭탄은 재정 실탄 확보 용도도 있는 셈이다.

◇트럼프 1기 美中 관세 전쟁

2017년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만성적 무역적자를 해결하겠다면서 대미 무역 흑자국인 중국, 독일, 일본, 한국 등 16국을 대상으로 90일 동안 무역적자 원인을 분석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불공정 무역에 대해 징벌적 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관세 전쟁의 시작이었다. 2018년 1월 중국을 포함해 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산 태양광 패널, 세탁기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고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해 3월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일괄 부과하면서 한국, 유럽연합(EU)은 빼주었다. 한 해 3500억달러의 흑자를 내는 중국이 주 타깃임이 분명해졌다. 2018년 4월 의료기기, 제약, 산업로봇, 통신장비, 전기차 등 연간 500억달러에 이르는 중국산 수입품 1333개 품목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중국이 보복에 나섰다. 미국산 농산물, 자동차 등 106개 품목, 500억달러어치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의 표밭인 팜 벨트(중서부 농업지대)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를 겨냥한 조치였다.

그해 9월 미국은 나머지 중국산 수입품 2000억달러어치에 대해 10% 관세를 부과하면서 2019년부터 관세를 25%로 올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중국도 보복에 나서 600억달러어치 미국 수입품에 관세 10%를 추가로 부과했다. 보복 관세 악순환이 계속되면 양측 모두 상처를 입을 게 뻔했다. 휴전 협상이 시작됐다. 2000년 초 중국이 2년간 원유·천연가스·농산물 등 미국 상품 2000억달러어치를 구매하는 협상안을 수용했다. 1차 관세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래픽=백형선

◇트럼프 2기 관세 전쟁 어떻게 대응할까

아무리 트럼프라도 국제 룰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보편 관세 10~20%를 물리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트럼프는 1기 때 캐나다, 멕시코 수입품의 관세를 올리기 위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일방 폐기했다. 미국 안보 위협을 이유로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입 철강에 대해 25% 일률 관세를 부과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보편관세를 시행한다고 일단 먼저 발표한 다음, 이를 압박 카드로 활용해 중국, 한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 상대국과 개별 협상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가 1기에 이어 2기에서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맡길 것으로 알려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과거 대미 무역흑자가 큰 나라를 집중 공략했다. 한국은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444억달러(8위 흑자국)에 달해 1차 표적에 포함될 것이다. 라이트하이저는 작년 6월 펴낸 책 ‘자유 무역이라는 환상(No Trade is Free)’에서 트럼프 1기 당시 한국의 신속한 대응과 영리한 협상 전략이 주효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까지 요구하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한국 협상팀은 한미 FTA 협정에서 2019년 시행으로 못 박아 놓은 ‘한국산 픽업트럭 보호 관세 25% 철폐’ 카드를 잘 써먹었다. 관세 철폐 시점을 2038년으로 20년 미루는 양보안이 미국 정부와 자동차업계를 흡족하게 만든 것이다. 그 덕에 나머지 통상 이슈들은 쉽게 풀렸다. ‘맞춤형 선물’이 ‘킹핀’(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치는 핀) 역할을 한 것이다.

유명희·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 등 전문가들은 “한국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협상에 나서면 관세 면제 등의 혜택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픽업트럭’ 같은 킹핀을 빨리 찾아야 한다. 산업계에서는 미국이 설계 기술을, 한국이 제조 기술을 가진 소형모듈원자로(SMR) 공동 개발, 한국과 일본의 미국 천연가스(LNG) 공동 구매 등이 그런 카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중국 전기차 200% 관세’를 누차 강조해 온 만큼 2기 관세 전쟁의 1차 타깃은 자동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수출 비율이 50%에 달하는 국내 자동차 업계는 미국 현지 공장 생산 비율을 대폭 늘리는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현재 16%, 13% 수준인 미국산 원유·천연가스 수입을 대폭 늘리는 등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편 중국이 희귀 광물 수출 통제를 대응 카드로 쓸 가능성이 크고,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가 큰 한국이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책도 미리 세워둘 필요가 있다.

1930년대 미국·유럽 관세 전쟁이 2차 세계대전 촉발

한국, 중국산 마늘 관세 올렸다가 ‘휴대폰 수입 금지’ 보복 당하기도

역사상 가장 후폭풍이 컸던 관세 전쟁은 1930년대 미국과 유럽 간 관세 전쟁이었다. 미국 상원 의원 2명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실업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관세율을 평균 26%에서 59%로 올리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만들었다. 경제학자 1000여 명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 미국이 관세를 대폭 올리자,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똑같이 관세율을 올렸다. 그 결과 국제 무역 교역량이 60% 넘게 격감했다. 이 여파로 독일에서 발생한 경기 침체가 히틀러 나치 정권을 탄생시켰고,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졌다.

1993년 시작된 미국과 유럽 간 바나나 전쟁은 20년을 끌었다. 유럽 국가들이 과거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바나나 생산국을 지원하려 남미산 바나나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남미 바나나 농장주는 대부분 미국인이었다. 미국이 영국산 리넨, 덴마크산 햄, 프랑스산 핸드백 등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이 WTO에 제소해 승소했지만, 바나나 관세 전쟁은 2012년에야 끝났다. 미국 협상 대표 올브라이트 국무 장관은 “내 인생에서 바나나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뺏길 줄은 몰랐다”는 말을 남겼다.

영국의 술 ‘드라이진’은 관세 전쟁이 만들어낸 주종이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영국 윌리엄 3세가 루이 14세가 통치하는 프랑스가 미워 프랑스 와인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영국 주당들은 네덜란드산 값싼 독주 ‘게네베르’를 수입, 영국식으로 개량해 ‘드라이진’을 만들어냈다.

2000년 한국의 마늘 파동은 약소국이 강대국을 향해 관세 칼을 휘두르면 어떤 재앙이 초래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2000년 6월 중국산 마늘 수입 급증으로 마늘 농가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자, 한국 정부가 중국산 마늘 관세율을 30%에서 10배 이상인 315%로 올리는 긴급관세(세이프가드)를 부과했다. 중국은 곧바로 5억달러에 달하는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하는 보복 조치를 취했다. 당시 한국은 중국에서 매년 100억달러 이상 무역 흑자를 내고 있었다. 결국 한국 정부는 중국산 마늘 3만톤을 수입하겠다는 백기 투항 수준의 양보안을 내민 끝에 겨우 문제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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