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의료위기① Acute on Chronic : 수면 위로 드러난 의료 위기

뉴스타파 2024. 11. 2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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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 위기 사태가 9개월 넘도록 지속되고 있습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고, 당장 내년에 배출될 신규 의사도 전년 대비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의료 공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달 들어 여야의정 협의체가 뒤늦게 가동되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2천명’이란 숫자를 고집하며 협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윤석열 정부는 오는 2028년까지 의료 개혁 명목으로 총 10조 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을 추가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의대 증원이 일으킨 난맥상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가 어떻게 의료 개혁을 완수하고, 필수·지역 의료를 되살리겠다는 것인지 의문은 더 커집니다. 시민 사회에선 ‘의료 영리화’를 위한 포석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마저 나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3개월간 의료 공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전국의 의료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의료 개혁으로 명명한 독단적 정책의 결과를 진단하고, ‘의료 대란’의 해법을 찾기 위해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의료 개혁의 본질인 필수·지역 의료 강화에 천착했습니다. 오늘(11월 21일)부터 총 2편으로 나눠 필수의료 위기, 지역의료 위기를 각각 보도합니다. 첫 편은 필수의료 위기입니다. 전공의 사직과 전문의 이탈로 대변되는 필수의료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은 무엇인지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Acute On Chronic은 만성 질환이 급격히 악화한다는 뜻의 의학 용어입니다. 지난 9개월간의 의료 공백으로 다양한 층위의 보건의료 문제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현 상황과 딱 들어맞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지난 2월 6일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수련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촉발된 의료 공백은 현재로서 해결이 요원해 보입니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고, 정부는 돌이킬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니 무엇을 위한 개혁이었는지 돌이켜 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의대 증원이 진정 국내 보건의료 환경을 개선해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정책인지, 반대로 국내 보건의료의 미래를 망치게 하는 건지, 정부와 의료계 모두 한 치의 양보 없는 모습에 시민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으로 발생한 피해는 오롯이 병상에 있는 환자들과 시민들의 몫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인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전국의 암 환자가 수술을 받은 건수는 전년 대비 16.8% 줄었습니다. ‘필수 의료’, ‘지역 의료’를 강화해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겠다며 추진한 ‘의료 개혁’이지만, 암 환자가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치명적인 상황으로 악화한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의정 갈등으로 환자와 시민 피해 가중... '무엇을 위한 개혁이었나'

정부가 의대 증원을 위시한 필수 의료 강화 방안을 내놓은 것과 대비해 의료계는 당면한 의료 공백의 해결책으로 ‘기피과’로 전락되는 구조를 해결하는 것을 제시합니다. 드러난 문제점들을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해 미래에 해당 영역에서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 복잡다단한 문제지만, 크게 보면 △사법리스크 △비급여 △원가보전 등의 키워드로 압축됩니다.

의료계가 꼽은 필수과 기피 주요 원인 1. 사법리스크

상급종합병원 바이탈과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만나는 다수의 환자들은 생명의 경계에 있습니다.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며 보람을 느끼지만, 죽음을 목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환자가 사망하거나 잘못됐을 때 의사를 고소하는 경우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전문직 중 의사의 비율은 평균 73.9%에 이릅니다. '환자를 살리지 못하면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게 당연시되는 상황인데 어떻게 바이탈과에 의사들이 몰리겠냐’는 게 의료계의 입장입니다.

의료계는 사법리스크 해소를 위해 영국의 의료위원회와 같은 의료사고에 대한 독자적인 조사/행정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중대한 윤리 위반에 대해 형사처벌이 이뤄지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의료 과실에 대해서는 별도의 면허 심의 기구를 통해 면허 정지나 취소 등의 방식으로 패널티를 준다면 지금보다는 기피과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의료계가 꼽은 필수과 기피 주요 원인 2. 비급여

현재 국내 의료 시장 가격은 국가에서 가격을 정하는 급여항목과 각 요양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비급여항목으로 나뉩니다. 환자 입장에서 비급여 항목의 검사, 시술 비용은 급여 항목과 비교하면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실손보험을 통해 비급여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악용해 실손보험 여부에 따라 비급여 끼워팔기를 하는 관행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상급종합병원의 바이탈과에서 일하는 의사와 개원의 간에 봉급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손보험이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까지 보상하면서 과잉 의료에 따른 건강보험의 과다 지출 문제에 대한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이번 의료개혁안에 급여 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함께 시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혼합진료 금지'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혼합 진료를 금지하면 국내 건강보험 보장률이 67%인 상황에서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입니다. 먼저 보장성을 강화하고 비급여 항목이 과다하게 이뤄지는 진료에 대해선 건강보험을 동시 적용하지 않는다거나 실손보험이 급여 항목의 본인부담금을 중복 보상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의료계가 꼽은 필수과 기피 주요 원인 3. 원가보전

현 의료 지불 체계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의료 행위 하나하나를 쪼개서 가격을 정하고 각각의 행위를 할 때마다 수익을 내는 방식입니다. 크게 업무량, 비용, 위험도 등에 점수를 매겨 가격을 책정하는데, 의료기계가 고가다 보니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행위보다는 MRI 검사와 같은 항목들이 높은 점수를 얻게 되면서 의사의 의료 행위, 즉 노동 가치가 적어지게 됐습니다.

문제는 일반적인 진료 행위만으로는 원가조차 보전 받지 못하고, 적자를 내는 구조 속에 있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진찰 행위’가 많은 내과, 소아과 등의 과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습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매출에 기여하지 않는 과를 지원할 동기가 없으니 정부에서 정한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함께 일할 동료는 적어지게 되고 노동 강도는 심해집니다. 의료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환자에게 미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문제를 방치하면 응급실 이송 지연, 소아과 오픈런, 3분 진료, 의료쇼핑,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문제 등 국내 보건 의료의 부정적 전망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실한 환자 중심 의료체계 역시 국내 보건 의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입니다.

의료 공백 직접 겪은 당사자가 기획... 국가가 방치한 보건의료의 근본적 문제

본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신동윤 PD는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 의료 공백을 직접 겪은 당사자입니다. 의료 공백이 병상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이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절실한지 몸소 겪었고,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본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습니다.

사직한 전공의들은 왜 임상 현장을 떠났는지, 어떻게 하면 돌아올지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특정 과에 대한 기피 현상은 왜 생겼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고,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니 한국 사회가 오랜 기간 방치해 온 보건의료 정책 및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는 다양한 임상 의료진과, 의료계 전문가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제작진이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 겪은 경험도 담았습니다. 영상이 조금 깁니다만, 켜켜이 쌓여 있는 국내 보건 의료 현실을 함께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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