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톰섀도 쏘자, 러시아 ICBM 날렸다... 확전 속 '트럼프 휴전안'도 부상
에이태큼스·스톰섀도 투입에 보복 공격
'서방 공격·핵 사용 가능' 경고 메시지 해석
'휴전 협상 급물살' 관측 속 격화하는 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강도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사거리 약 300㎞)에 이어 영국산 스톰섀도(사거리 약 250㎞)로 연이틀 러시아를 공격하자 러시아는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며 맞받았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러시아 본토 공격용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러시아가 사거리 수천㎞의 ICBM을 쏜 것도 2022년 2월 개전 이래 처음이다.
전쟁 격화 와중에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그대로 둔 채 휴전을 추진하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구상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3등분설'도 제기된 상태다. 협상 개시 전 영토를 한 치라도 더 확보하려는 양측의 거친 공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서방 미사일에... 러시아 개전 후 처음 ICBM 발사
우크라이나 공군에 따르면 러시아는 21일 오전 5~7시 남부 카스피해 인근 도시 아스트라한에서 우크라이나 중동부 드니프로를 향해 ICBM을 비롯, 극초음속 미사일 Kh-47M2 킨잘, Kh-101 순항미사일 등을 섞어 발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늘(21일) 새로운 러시아 미사일이 있었고 속도, 고도 등 모든 특징이 ICBM임을 보여준다"며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훈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분석 중'이라는 이유로 ICBM 사양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ICBM 'RS-26 루베즈'가 투입됐다"고 전했다. 앞서 러시아 모스콥스키콤소몰레츠도 러시아가 해당 무기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공격할 것이라는 예고성 보도를 전한 바 있다. 해당 미사일의 사거리는 5,800㎞ 정도로, 핵 및 재래식 탄두를 장착해 운용할 수 있다.
러시아의 공격은 우크라이나가 12기의 스톰섀도를 러시아로 발사(20일)한 다음 날 이뤄졌다. 영국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스톰섀도가 타격한 곳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8월 일부를 점령하고 러시아가 이를 탈환하고자 북한군까지 투입한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주였다. 우크라이나 군사 매체 디펜스 익스프레스는 "러·북 지휘관들이 은신한 쿠르스크 지휘 센터를 타격하고자 스톰섀도가 동원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19일에도 에이태큼스 6기를 접경지인 러시아 브랸스크를 향해 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 에이태큼스의 러시아 본토 공격 제한을 해제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이틀 만이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ICBM 발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군에 연락하기를 추천한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더 멀리 공격, 핵 동원"... 서방 향한 '메시지'
러시아가 보복 공격에 ICBM까지 동원한 것은 사실상 서방을 겨냥한 '경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개전 후 2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략무기' ICBM을 동원한 것 자체가 미국과 영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사정권에 두는 무기도 언제든 투입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에이태큼스 발사 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전쟁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것"(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라고 분노했다.
ICBM에는 핵 탄두 장착이 가능한 만큼 핵 사용을 불사하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러시아는 이미 19일 핵 교리 개정을 통해 핵 보복 범위를 넓혀 놨다. 개정된 내용의 핵심은 '비(非)핵보유국이 핵보유국 지원하에 러시아를 공격하면 모두 핵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는 부분인데, 우크라이나(비핵보유국)를 지원하는 미국·영국 등을 염두에 뒀다는 풀이가 많았다.
또 우크라이나군 패트리어트 대공 방어 미사일 시스템 요격을 피하기 위해 일반 미사일이 아닌 ICBM을 고각 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공군이 밝힌 ICBM 발사 장소와 목표 지점 간 거리는 약 740㎞로 최대 사거리에 한참 못미친다. 이날 러시아 미사일에 피해를 입은 지역 중에는 젤렌스키 대통령 고향인 드니프로페트로브스크주 크리비리흐시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 공격'으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종전' 대비? "푸틴도 협상 의향 있다"
전쟁 수위가 시시각각 높아지는 것은 내년 1월 취임하는 트럼프 당선자가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휴전 또는 종전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관측과도 무관치 않다. 트럼프 2기 출범 직후 진행될 수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휴전 또는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양측이 최대치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로이터는 러시아 전현직 관리 5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자와 휴전 협정을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전하면서 트럼프 당선자 구상은 현실화 가능성이 더 커졌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을 분할하는 것과 관련해 협상할 여지가 있다'는 비교적 상세한 시나리오도 로이터는 제시했다.
급기야 '우크라이나 분할 방안'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 인테르팍스통신은 러시아 국방부가 '2045년까지 우크라이나를 세 부분으로 나눠 서부는 유럽이, 중부는 친(親)러시아 정부가, 동부는 러시아에 병합한다'는 시나리오를 마련했고 이를 미국 지도부에 전달할 것이라고 우크라이나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불리한 전개... 우크라이나에도 '미묘한 변화'
상황이 계속 불리해지면서 우크라이나 입장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를 포기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크림반도 반환을 위해 수만 명의 국민을 죽게 할 수는 없다"며 '외교 채널 가동' 필요성을 말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영토'라는 입장은 그대로지만, 크림반도 반환까지를 전쟁 목표로 두던 것에 비하면 한발 물러섰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2%가 '빠른 종전'을, 이 중 52%가 '영토 일부 양보 가능'이라고 답하는 등 우크라이나 내부 여론도 전쟁 장기화에 동요하는 상황이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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