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숲이 필요하다
6년 전 내가 이도주공아파트를 터전으로 찾게 된 것은 우선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임에도 임대료가 저렴하면서도, 꽤 안락하고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니 꽤 많은 청년들이 이 곳을 잠시 머무를 곳으로 선택해 살고 있었다.
1985년부터 단계적으로 지어진 이도주공아파트는 약 1만100여 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제주도 내에서는 손꼽히게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이다. 1985년 1단지를 비롯해, 1988년 2, 3단지가 지어졌고 수많은 사람이 이 아파트를 터전 삼아 살았다. 이 아파트가 위치한 이도2동은 시청, 법원, 정부청사, 세무서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이 자리 잡아있으며, 병원, 약국, 식당, 마트 등 생활 편의시설도 가까이에 있다. 게다가 영화관, 서점 등의 문화 시설도 도보로 10~15분 거리에 위치해 그야말로 도시 생활자에게는 최적의 생활 조건을 갖춘 곳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이 아파트에 살고 싶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오래된 나무들이었다. 단지를 빙 둘러싼 키가 큰 나무들. 단지와 단지 사이에 3-4층 높이의 큰 나무들이 마치 숲 속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것들에 종종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이 시대에 이 오래된 아파트의 작은 숲은 바깥 세상의 소란함에서 나를 보호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 곳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6년의 시간이 흘렀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이도주공아파트는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이나 재건축과 관련된 송사 같은 것 때문이었다. 매해 내년에는 철거할 예정이니 올해까지 살고 나가야 한다는 뜬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2024년 4월, 이도주공 2‧3단지에 대한 관리처분계획 인가 고시가 내려졌다. 해마다 미뤄온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머지않아 이주 계획이 나오고 철거 예정 시기가 정해졌다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하나 이곳을 떠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사람들이 떠나는 아파트와 넓은 단지 안의 녹색 세계, 이 곳이 사라지면 이 나무들과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이 작은 생태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라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린제주어리타운'의 유리님과 이런 고민들을 나누게 되었다. 그린제주어리타운은 도시 속 그린인프라를 찾고 관계 맺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었다. 여러 논의 끝에 9월 프로젝트를 이도주공아파트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함께 아파트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물을 주워 시아노타입으로 기록하는 길지 않은 산책 프로그램이었다. 2‧3단지부터 1단지까지 이도주공아파트 단지들을 한 바퀴 돌아보며 참가자들과 그 때 그 때 느껴지는 감정들을 자유롭게 나누고 자연과 교감하며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공원 안에 집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몰랐던 세계, 울타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참가자들의 말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그린제주어리타운의 유리, 은애님과 나 역시 남은 시간동안 이 곳과 더욱 더 깊이 관계 맺고 싶어졌고, 앞으로의 그린제주어리타운의 프로젝트들을 이도주공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또 몇 년 간 이도주공에 머무른 기억이 있는 영상 감독 수진님이 이도주공아파트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이도주공의 남은 시간들을 기록하기로 하였다.
공간을 빌리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준비하며 어느 새 한 달 반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은행잎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고, 여러 이끔이들을 초청해 6번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많은 참가자들이 이 공간과 관계 맺으며 다양하고 따뜻한 감정들을 나누어주었고, 그것들을 토대로 11월 말 전시를 앞두고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들도 담고 있다. 이도주공아파트,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아파트의 숲과 자연에 대한 추억들과 기억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2‧3단지 곳곳에는 이주 기간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2월말까지 전부 퇴거를 앞둔 아파트는 전보다는 조용하고 한가해졌지만, 아직도 이 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많다. 건물은 텅텅 비어가지만 아파트의 숲은 한결같이 푸르고 아름답다. 영원한 이도주공아파트와의 작별을 앞둔 지금 우리는 어떤 것들을 남기고 기억하며 이곳을 추억할 수 있을까. 이곳을 어떤 의미로 기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제주도가 자연과 너무 밀접하게 닿아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바다, 오름, 한라산 등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이 제일 먼저 들어오는 제주도에서는 곳곳에 있는 자연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그러니 당연하게 우리의 삶이 자연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끊임없이 자연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2021년 말 기준 제주도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14.45ha로 전국 평균인 11.48ha를 웃돌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놀랍다. 제주시의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11.67ha로 평균선을 간신히 넘었다. 서귀포시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이 22.55ha인 것과 대조적이다. (전국 도시숲 현황통계, 2021년 말, 산림청) 제주시 외곽 지역으로 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제주시 내 공원이 197개지만 이들 중 80% 이상이 제주시 동 지역에 위치해 있다. (전국도시공원정보 표준데이터, 2024년 11월 19일 기준) 이런 상황에서 제주시 외곽 지역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이 제주시 평균에 닿아있을지는 의문이다. 많은 도민들이 오름이나 바다 같이 자연적으로 조성된 환경 외에 생활 속에서 다양한 그린 인프라를 접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내 지역 역시 상황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도심에선 울창한 가로수를 보기 힘들고 그마저도 각종 정비를 위해 베어내고 있다. 숲세권 아파트가 각광받고 있는 요즘, 숲세권 아파트를 위해 녹지를 개발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보라. 한라산 뷰, 공원 뷰를 자랑하는 대단지 아파트 분양 광고가 도심 곳곳에 즐비하다. 환경 파괴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곳들이다. 제주의 삶이 마냥 자연 친화적이라고 하긴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곧 철거를 앞둔 이도주공의 숲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제주 도심 속에서 주민들의 삶에 이렇게 가까이 닿아있는 숲은 드물 것이다. 이도주공을 찾는 사람들이 놀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5층 아파트 높이에 가깝게 자란 나무들이 집 안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듯하다.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도주공의 숲도 처음과 모습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날이 갈수록 울창하고 깊어진 숲으로 주민들의 삶에 밀접하게 닿아있다. 주민들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식물들과 동물들이 이도주공을 터전으로 뿌리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이도주공아파트의 숲은 그 존재만으로 도심 속의 녹지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그린제주어리타운은 이 아파트의 마지막 순간들을 최선을 다해 따뜻하게 담아내고 싶다. 도시 속 작은 섬으로 존재한 이도주공의 녹색 숲을.
이도주공아파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아쉬운 점은 이러한 그린 인프라에 대한 부분들이 재건축이나 도시 개발의 측면에서 고려되지 않는 점이다. 이미 타 지역에서 진행된 다른 대부분의 재건축, 재개발 사례에서도 그랬듯 앞으로 공사 과정 중 이도주공의 숲 역시 대부분이 베어질 것이라 아쉬움이 크다. 나무를 이식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이식하더라도 생존율이 떨어져 경제적 측면이나 효율적 측면에서 이식은 고려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제주도정은 도시숲 조성을 위해 2022년부터 663억 원을 투자해 총 600만 그루의 나무 심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26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올해 안으로 120만 그루 식재를 목표로 나무를 심고 있다.(http://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2903) 그러나 이러한 나무 심기 운동을 진행하는 중에도 나무들이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제주지방법원 별관 공사를 위해 법원 주차장에 조성된 공원의 나무들이 베어지는 일도 있었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111220110005534?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법원 주차장의 나무들은 시민들의 쉴 그늘이 되어주는 소중한 공간이자 이도주공아파트를 비롯해 이 일대에 있는 그나마 넓은 녹지 공간이었다. 앞으로 이도주공아파트의 재건축이 수순에 들어서 벌목하기 시작하면 법원 인근에서 그린 인프라를 만나기는 한동안 쉽지 않을 것이다.
한 쪽에서는 나무를 심고 한 쪽에서는 나무를 베어낸다. 나무 심기 역시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숲을 보전하는 방법들도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에겐 지금보다 더 많은 숲이 필요하다. 도시 속 존재하고 있는 숲을 지킬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 글은 생태적지혜연구소와 제주투데이에 함께 게재됩니다.
[진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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