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효과’로 격화되는 우크라 전쟁

김원철 기자 2024. 11. 2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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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우크라이나가 수도 키이우 상공에서 러시아의 공격용 드론을 탐지하기 위해 탐조등을 사용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영국의 장거리 미사일로 연일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면서 1000일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급격히 접어들고 있다. 핵무기 사용 조건을 완화하는 핵교리를 개정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동원한 대규모 보복 공습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방침에 따라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휴전 협상에 앞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한다는 양국의 이해관계에 더해, 트럼프 당선자 취임 전 우크라이나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속내까지 맞물리면서 전황은 하루가 다르게 격화하고 있다.

“영국 제공 스톰 섀도 12발, 러시아로 발사”

뉴욕타임스는 20일(현지시각) 영국이 지원한 순항 미사일 스톰 섀도 여러 발이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주에 꽂혔다고 미 국방부와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영국 언론들도 자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스톰 섀도가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본토로 발사됐다며 미사일의 행선지로 북한군이 배치된 쿠르스크를 지목했다. 복수의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도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에 최대 12발의 스톰 섀도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일부 파편이 쿠르스크주 마리노 마을의 군지휘 본부로 추정되는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이 목표물이 북한군과 러시아군 장교들이 사용하는 시설로 보인다고 전했다. 스톰 섀도(프랑스명 스칼프)는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공대지 순항 미사일로, 사거리는 250㎞ 가량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후방을 향한 대규모 드론공격도 감행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 군이 19일부터 20일 밤까지 장거리 타격 드론과 스톰 섀도 미사일을 활용해 러시아 후방의 다양한 군사 목표물을 타격했다”며 “이틀간의 공격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이 제공한 장거리 무기 시스템을 활용해 효과적인 공격 패키지를 구성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대인지뢰가 포함된 2억7500만달러(약 3850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 원조 계획도 발표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용 탄약, 155㎜와 105㎜ 포탄, 박격포탄, 대전차 미사일 등을 추가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번 지원 물량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용 금지 선언을 깨고 제공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대인지뢰도 포함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진 부채 46억5000만 달러(한화 약 6조원) 이상을 탕감해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비핵보유국이라도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했을 때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핵억제력 분야의 국가정책 기초’(핵 교리)를 개정한 러시아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공습을 준비 중인 거로 알려졌다. 러시아 매체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러시아군이 카스피해 인근 도시 아스트라한의 군사 기지에서 키이우로 RS-26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 우크라이나에 발사한다면 이는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요동치는 전황

‘취임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각) 미 대선에서 승리를 확정 지은 뒤 우크라이나 전황은 요동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가→러시아 핵교리 개정 확정→미·영이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공격→대륙간탄도미사일 준비’ 등 양쪽 대응이 차례로 수위를 높여가는 식이다.

발단은 1만명 넘는 북한군의 투입이다. 이 상황을 방치하면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8월 점령한 쿠르스크주에서 밀려날 수 있고,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작될 것이 확실시되는 휴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는 매우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되찾지 못하더라도 휴전을 협상하도록 강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휴전 협상 개시 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최대한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걸 택한 거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 지역 일부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이 지역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의 많은 부분과 맞바꾸는 시도를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휴전 협상 테이블에서 우크라이나의 힘은 앞으로 몇 달 동안 쿠르스크에서 러시아와 북한 병력을 얼마나 막아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최근 병력 수천명을 잃으면서도 동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깊숙이 전진했다. 이번 성과는 최근 2년 내 최고치로 평가된다. 러시아는 점령해나가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영구적으로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평화가 코앞에 다가오자 양쪽이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려고 하면서 싸움이 더 치열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라며 “이런 위급한 전쟁 국면은 몇 달 내에 종료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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