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능인의 험난한 장애등록…사회도 복지도 내겐 넘사벽일까요

장현은 기자 2024. 11. 2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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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한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냐는 능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지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1별관 306호를 김진영 변호사의 목소리가 채웠다. 김 변호사는 전맹 시각장애 변호사이자, 경계선 지능인 ㄱ씨가 서울 동작구청을 상대로 하고 있는 장애인 등록거부 관련 소송의 대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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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인 ㄱ씨는 ‘경계성 지능인’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게 어려웠다. 군대를 가서는 지시를 잘 따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폭언을 듣고 구타 등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제대 이후에는 국가시험 등을 준비해봤지만 낙방의 연속이었다. 마트 직원 등 단기 일자리를 구해봐도 ㄱ씨에게는 한 달을 채우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손이 느리다”, “이게 어렵냐”, “말도 못 알아듣는다“ 평생 이런 말을 들으며 인간관계·학습능력의 어려움을 ㄱ씨는 본인 탓으로 돌렸었다. 그렇게 30대 중반이 돼서야 ㄱ씨는 임상심리평가를 받게 됐다. 웩슬러 성인 지능검사상 전체 지능지수(IQ)는 72점, ㄱ씨는 본인이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평생을 비장애인으로 알고, 그렇게 교육을 받고 살았습니다. 저도 장애 신청하기가 싫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으니까요.”

그럼에도 ㄱ씨는 장애 등록을 신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 이상 개인의 노력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ㄱ씨 같은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제도는 거의 없었다. “(장애 등록) 신청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사회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그는 ‘지능지수(IQ) 70'이라는 기준에 부딪혀 구청으로부터 장애등록을 거절당했다. 지적장애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장애정도 심사용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전문의는 지능지수가 70을 초과하는 사람에게는 심사용 진단서를 자의적으로 발급할 수 없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지적장애인의 기준을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사람으로서 교육을 통한 사회적·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정하고 있다. 2023년 2월 동작구청은 이 규정을 근거로 ㄱ씨의 장애인등록신청을 반려했다. ㄱ씨는 소송으로 다퉈보기로 했다.

ㄱ씨 쪽은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서 (지적장애인을)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만 제한하고, 지능지수를 70으로 제한을 해서 장애 등록이 불가한 사람이 많고 평등 원칙에 위반된다. 등록 거부 절차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지적장애인은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돼 지적 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고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과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지자체는 같은 법의 시행규칙에 따라 ‘지능지수가 70 이하인 사람으로서 교육을 통한 사회적·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만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판단한다. 이는 지적장애인의 정의와 기준을 정한 상위 시행령 조항을 합리적 근거 없이 임의적으로 축소해석하는 것이라는 게 ㄱ씨 쪽의 주장이다. 경계선 지능인은 낮은 지능지수 외에 매우 복잡한 임상적 심리 행동 특성을 보이고, 특히 ㄱ씨의 지능지수가 72이지만 이것이 ㄱ씨의 기능을 온전히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ㄱ씨의 언어 능력은 다른 능력보다 높게 나오는 편이지만 추론능력, 손 작업기능, 작업활동능력 등이 저조하고 그중에서 지각추론 능력은 더욱 저조하다. 일상적인 업무나 지시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ㄱ씨가 언어능력은 높더라도, 추론능력과 작업 능력 등 여러 능력이 저조해 불균형한 상태를 이루고 있고, 이로 인한 어려움이 큰 상황”이라며 “사회 기술, 소통능력의 부족으로 사회생활 영위에 많은 제약이 있다. 이런 상태가 고착화돼 치료나 교육 통해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성인 경계선 지능인의 특징이자 어려움”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앞서 2019년 투렛증후군 진단을 받은 장애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투렛증후군 장애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는 없지만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온 점 등을 감안해 장애인복지법 적용을 받는 장애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시행령 조항이 그 장애를 장애인복지법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려는 전제에서 있다고 새길 수 없고 단순한 행정입법의 미비가 있을 뿐이라고 보이는 경우에는, 행정청은 그 장애가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등록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형식이 아닌 실질적 어려움을 기준으로 장애인 등록의 기준을 넓혀 울타리 안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게 ㄱ씨 쪽의 주장이다.

ㄱ씨의 도전에도 지난해 11월 1심 재판부는 “(장애 기준은)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ㄱ씨 청구를 기각했다. 1년째 이어지고 있는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지적장애인 기준인 지능지수 70이라는 기준이 어떤 기원을 가지고, 외국의 현황은 어떤지 피고인 동작구청에 자료를 요청했다.

지난 7일 열린 3차 변론기일에는 김 변호사가 직접 변론에 나서 소송이 가지는 공익적 의미를 짚었다. 김 변호사는 “ㄱ씨의 직업능력평가 결과 역시 장애 등록이 필요하고 지원을 받아야만 안정적으로 직업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복잡한 지적 능력·특성에도 불구하고 지능지수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여러 능력을 고려하지 못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자발적으로 장애를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원고가 자립해서 직업생활을 영위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환대의 문을 재판부가 열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다음 변론기일은 내년 1월에 열린다. ㄱ씨에게 사회생활은 항상 남들보다 한 단계 높은 벽을 두고 있었다. ㄱ씨가 바라는 것은 이제라도 사회가 제공하는 복지 제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아도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나 사회적 인프라가 있다면, 저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하는 이런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제도권에 들어가는 것,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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