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통령 관저 ‘유령 건물’…커져 가는 무상·대납 의혹
수천만원 넘었을 공사비 집행 내역
감사원 감사 보고서에도 등장 안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지어진 ‘유령 건물’을 두고 공사비 대납 의혹이 커지고 있다. 70㎡(20평) 정도로 추정되는 이 단층 건물은 증축 2년이 넘도록 신고하지 않아 등기부에도 나오지 않는다. 적게 잡아도 수천만원이 드는 공사비 집행 내역은 정부 예산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특정 업체가 무상 또는 대납 형태로 공사를 해줬다면, 대통령을 보고 준 뇌물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조계 평가다.
관저 이전 공사에 참여했던 업체 관계자는 지난 19일 한겨레에 해당 건물이 2022년 5월에서 8월 사이에 증축됐다고 밝혔다. 관저 이전 공사와 동시에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관저 공사 도중에 주거동 침실이 있는 쪽 바로 옆에서 기초 공사가 시작됐다.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관저 공사를 마치기 전에 외장 공사가 먼저 끝났다”고 했다. 건물 구조에 대해서는 “육안으로 봤을 때 골조는 경량철골구조에 쓰이는 각파이프로 세웠다. 길이는 10m 정도, 높이는 4m 정도였다”고 했다.
앞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용현 경호처장과 경호처가 현대건설 담당자를 통해 시행업체에 제안했다”며 이 건물 위성사진과 스크린 골프 시설 설치 계획이 담긴 현대건설 쪽 이메일, 설계도면 제안서 일부를 공개했다. 제안서를 보면 철골 구조인 건물 크기는 가로 10.5m, 세로 6.6m, 높이 4.2m였다. 외장재로는 백색 알루미늄 복합패널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겨레가 20일 구글어스 위성사진으로 확인해보니, 절반 이상 나무로 가려진 이 건물은 흰색 외장에 길이가 10여m로 업체 관계자 증언 및 제안서 내용과 일치했다. 설계도면과 동일하게 출입구 쪽이 돌출된 형태다.
관저 이전과 동시에 공사가 진행됐지만, 이 건물은 올해 9월 발표된 감사원의 대통령실·관저 이전 감사보고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감사원은 “예비비 외에도 시설공사와 직접 관련된 행정안전부·비서실·경호처 자체 예산 사업도 감사 대상에 포함시켰다”며 모두 56건의 공사 계약을 점검했는데, 기존에 알려진 드레스룸·욕실 증축 면적(45.53㎡)보다 1.5배 넓은 이 건물의 증축 계약과 예산은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경호처 전 시설관리부장과 브로커 등이 대통령·관저 방탄창호 비용을 18배 부풀리는 과정에서 해당 건물 공사비를 충당했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앞서 감사원은 경호처 부장이 공사업체에 경호처 긴급출동대기시설 등의 보수 비용 1억7600만원을 대납시킨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긴급출동대기시설’이라고 했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용현 경호처장 공관’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전직 간부의 공소장을 보면 △경호처장 공관 및 부속동 △대통령실 본관 지하 회의실 △국가안전보장회의실 공사비 대납 내역만 확인된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성훈 경호처 차장은 국회에서 해당 건물이 “스크린 골프 시설이 아닌 창고”라고 했다. 한겨레는 대통령실과 경호처에 공사비를 어떤 예산에서 집행했는지, 창고라면 왜 대통령 침실 쪽에 설치했는지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대통령실 해명처럼 ‘단순 창고’라고 해도 상당한 건축비가 들어간다. 일반적인 골조·패널 창고 건축비는 평당 2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제안서처럼 고급 내·외장재로 마감한 스크린 골프 시설과 탕비실이 설치됐다면 공사비는 수천만원이 더 뛸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1년 청와대 본관과 관저를 시공한 뒤 청와대 시설물 공사를 줄곧 맡아왔다. 20일 관저 공사 이메일을 보냈던 현대건설 관계자는 기자라고 밝히자 곧바로 전화를 끊고 더는 받지 않았다. 현대건설 본사는 “아는 내용이 없다.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21그램 등 관저 이전 공사 참여 업체가 공사비를 대납했을 가능성도 있다. 뇌물 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법조인은 “과거부터 대통령 경호처와 업무 연관이 많은 현대건설 쪽에서 대통령실 쪽 요구로 무상으로 지어줬을 가능성 등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대통령실이 공사비 출처를 입증하지 못하면 공사 주체가 누가 됐든 공사비만큼 대통령을 보고 준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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