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코트와 작별한 ‘흙신’, 그를 보내는 팬들의 진심 ‘Gracias Rafa’
“마요르카의 한 작은 마을에서 온 좋은 사람으로 더 기억되고 싶습니다.”
24년 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라파엘 나달(스페인)의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한 마디였다.
‘흙신’의 위대한 여정이 자신의 조국 스페인에서 막을 내렸다.
나달은 20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네덜란드와 2024 데이비스컵 파이널스 8강전에서 보틱 판더잔출프(80위)에 0-2(4-6 4-6)로 패했다. 나달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였다.
로저 페더러(스위스),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와 함께 남자 테니스 ‘빅3’를 이루며 한 시대를 풍미한 살아있는 역사다. 2005년 프랑스오픈에서 처음 메이저대회 단식 정상에 올랐고, 이후 2022년 프랑스오픈까지 메이저대회 단식에서만 22회 우승해 조코비치의 24회에 이은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 역대 2위에 올라있다. 3위는 20회의 페더러다.
특히 프랑스오픈에서만 14번이나 우승하며 ‘흙신’, ‘클레이코트의 황제’라는 찬사를 들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따내 ‘골든 슬램’을 달성했다. 페더러는 1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달에 대한 헌사를 전하면서 “내가 당신을 이긴 것보다 당신이 나를 이긴 적이 더 많았다. 특히 클레이코트에서는 너무 강한 상대였고, 당신을 이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했다”며 “라켓 끝에라도 공이 맞기를 바라는 마음에 라켓 헤드 크기를 더 크게 했을 정도였다”고 예우를 보였다.
‘빅3’가 코트를 지배하던 시절은 테니스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그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3명 모두 스타일이 다른 것도 팬들이 즐거워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조코비치의 테니스가 ‘기계’, 페더러의 테니스가 ‘우아함’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었다면, 나달의 테니스는 ‘야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다.
그래서 나달은 조코비치, 페더러와 테니스를 넘어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서도 가장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이뤘다. 기계처럼 어떤 공도 완벽하게 받아내는 조코비치를 상대로 아랑곳하지 않고 야수처럼 때려박는 나달의 톱스핀 포핸드는 무시무시했다. 우아한 테니스에 맞서 거친 야성미를 뿜어내는 페더러와 나달의 대결은 마치 ‘미녀와 야수’를 보는 듯 했다. 나달은 조코비치와 통산 전적에서 29승31패로 근소하게 뒤지며, 페더러를 상대로는 24승16패로 앞섰다.
나달이 정말 위대한 이유는, 선수 생활 내내 부상을 안고 뛰었음에도 이런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나달은 전성기에 오를 시점이었던 19세 때부터 뮐러-와이즈 증후군(Mueller-Weiss Syndrome)이라는 희귀병을 앓기 시작했다. 바닥 관절이 변형되는 희귀병인데, 성인이 되면 발 중앙부의 주상골이 자연적으로 괴사 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주상골에 혈액공급이 안 돼 발생하며 중족부와 후족부의 변형과 통증을 유발한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병이라 나달은 특수 깔창, 진통제로 평생을 통증과 맞서 싸웠다. 여기에 엄청난 운동량을 바탕에 둔 그의 플레이 특성상 허리와 무릎, 발목 등 여러 부위에 크고 작은 부상이 닥쳤다. 그리고 선수 생활 말미에 찾아온 고관절 부상은 결국 나달이 은퇴를 결심하게 되는 결정타가 됐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딛고 나달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해 뛰었다. 도저히 받을 수 없을거라 여겨지는 공도 쫓아가 쳐내고 쓰러져도 곧바로 일어나는 투혼이 담긴 그의 플레이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윔블던에서 처음으로 페더러를 꺾었던 2008년 윔블던 결승, 조코비치와 5시간53분에 달하는 체력전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던 2012년 호주오픈 결승은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스페인은 이날 나달에 이어 2단식에 나선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으나 마지막 복식에서 패하면서 탈락이 확정됐다.
경기 후 경기장인 카르페나 아레나에는 한 시대를 치열하게 경쟁했던 페더러와 조코비치, 그리고 그와 경쟁한 테니스인들과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축구) 등 스포츠인들의 헌사가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팬들은 사방에서 환호성을 쏟아냈고, 나달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나달은 “삼촌이 테니스 코치였고 좋은 가족을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그저 꿈을 좇아 최대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의 내가 됐다”며 “많은 사람이 매일 최선을 다한다. 난 정말 운이 좋았고, 테니스 덕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내가 꿈꿔온 것 이상을 이룬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난 테니스에 지치지 않았지만 몸이 더 이상 테니스를 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랜 시간 취미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덧붙였다.
나달은 2004년 데이비스컵 데뷔전에서 패한 뒤 내리 단식 29연승을 달렸다. 그러다 이날 20년 만에 데이비스컵에서 패했다. 나달은 “데이비스컵 첫 경기에서 패했고, 마지막 경기에서도 패했다. 그래도 그렇게 우리는 원을 완성했다”며 환히 웃었다.
스페인 팬들은 데이비스컵 경기가 열리기 전부터 카르페나 아레나 외벽에 나달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말은 스페인을 넘어, 전세계 테니스 팬들이 나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고마워요 라파(Gracias Rafa)’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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