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세계 1위 자회사 팔고, CJ는 바이오 사업 접는다

이정구 기자 2024. 11. 2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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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지금 생존용 현금 확보전
일러스트=김성규

트럼프발(發) 경제 불확실성이 미처 닥치기도 전에 이미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는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매물이 줄지어 쏟아지고 있다. 이례적인 건 일반적으로 매각 1순위인 비(非)주력 사업뿐 아니라, 매출이나 영업이익에서 효자 역할을 하는 이른바 ‘알짜’ 사업도 매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점유율 세계 1위 상품을 보유한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회사 SK스페셜티는 약 4조원, CJ제일제당 영업이익의 30%를 차지하는 바이오사업부는 약 6조원에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20일 IMF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에 앞서, 국내 재계는 이미 불확실성과 불황을 예견하고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거는 등 선제적으로 사업 재편을 추진해왔다. 경기 침체는 길어지고 있고 철강, 석유화학, 배터리 등 한국 주요 산업과 경쟁하는 중국의 저가 밀어내기 공세는 여전한 데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무역 규제 강화가 예상되는 등 불안 요인이 더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핵심 수출 시장인 미국에선 고(高)관세 장벽이 유력하고, EU(유럽연합) 시장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경기 침체가 우리 경제의 핵심인 수출 시장 전망을 악화시키고 있다. 겹악재를 맞은 국내 산업계에서는 앞으로도 매각, 합병, 인력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재정비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픽=김성규

◇현금 확보 위해 알짜 매물까지 매각

반도체 특수가스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SK스페셜티 매각이 대표적이다. SK㈜의 100% 자회사인 이 회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과정에 쓰는 특수가스를 생산하는데, 삼불화질소(NF3)와 육불화텅스텐(WF6) 제조 세계 1위다. 작년 매출액 6817억원, 영업이익 1471억원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에서 SK하이닉스 등 SK그룹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30%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탄탄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가 더 큰 구상을 세운 반도체, AI(인공지능)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기 위해 아깝겠지만 알짜 사업까지 내놓은 것”이라고 했다. SK그룹은 2026년까지 80조원 재원을 확보해 AI·반도체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CJ제일제당도 몸값이 수조원대에 달하는 핵심 바이오사업부 매각을 진행 중이다. 작년 매출만 4조1343억원으로 회사 매출의 23%를 차지했고, 영업이익(2513억원) 비율은 30%에 달했다. 미생물을 원료로 식품 조미 소재, 사료용 아미노산 등을 생산하는 그린바이오 부문이 매각 대상으로, 그린바이오는 바이오부문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당장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갈수록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가 거센 상황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적기로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CJ그룹이 2018년 제약사업(CJ헬스케어)을 매각하고 이후 미국 냉동식품 2위 업체인 슈완스컴퍼니를 인수했을 때처럼 향후 M&A를 위한 현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반기 국내 M&A 시장에는 거래 금액이 조(兆) 단위에 달하는 ‘빅딜’이 이미 여럿 나왔다. LG디스플레이 광저우 생산법인(2조256억원), 삼성SDI 편광필름사업부(1조1210억원)는 모두 중국 기업에 매각됐다. 한때 중국 기업이 후발주자로서 한국 기술을 따라 시작했던 사업 분야들인데, 이제는 중국이 우리와 큰 차이 없는 기술 수준에다 저가로 가격 공세까지 해오면서 우리 기업들이 이젠 매각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 및 밀어내기 수출에 직격탄을 맞은 석유화학 업종도 마찬가지다. LG화학도 필름사업을 중국에 매각했고, 롯데케미칼은 작년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했던 기초화학 부문 비율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전통 주력 사업은 철수하고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상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황에 매각마저 난항 겪는 기업도

선제적으로 주요 사업을 매각해 불확실성에 대비하려 했지만 사업 부진으로 난항을 겪는 기업도 있다. 효성화학은 20일 IMM PE-스틱 컨소시엄과 진행하던 특수가스(NF3) 사업부 매각 협상이 결렬됐다고 공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리스크 여파 때문이다. 특수가스 사업 매출의 약 75%가 삼성전자인데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효성화학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지난 7월 약 1조1700억원대 가격에서 협상이 시작돼 최근 1조원 아래로 가격이 내려갔고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내수 부진은 여전한 가운데 자동차, 조선 등 몇 안 되는 산업이 이끌어왔던 수출도 현재가 정점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면서 “유연한 통화정책, 투자 지원 확대, 규제 완화 등 전방위적인 경제 살리기 노력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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