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15] 우리 근현대사에 반짝였던 여성국극
추월만정(秋月滿庭). ‘가을 달빛이 뜰에 가득하다’는 뜻이다. 황후가 된 심청이 부친을 그리워하며 탄식하는 ‘심청전’의 한 대목이다. 이화중선(1898~1943)과 김소희(1917~1995) 명창의 소리로 유명한 추월만정이 ‘드라마 정년이’에 나와 여운을 남겼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국가무형유산인 판소리는 물론이고 여성국극까지 재조명되었다. 여성국극 스타를 꿈꾸는 정년이가 목소리 때문에 절망에 빠지자, 엄마 채공선은 “빈 소리를 무엇으로 채우려 하냐”며 읊조리듯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그녀의 삶을 녹여 부른 추월만정은 모녀의 감정선을 품으며 결정적 장면을 연출했다.
화제가 된 드라마 정년이의 원작은 웹툰이다. 원작자 서이레는, 인기를 누리다 잊힌 여성국극이 안타까워 작품 소재로 삼았다고 했다. 타고난 소리 천재 모녀 설정과 여성국극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1956년 목포를 배경으로 삼았다. 남도 소리의 한 축과 여성국극의 부흥기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여성국극은 1948년 ‘여성국악인동호회’가 만들어지며 이듬해 ‘햇님과 달님’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여자들만이 출연하는 여성국악동호회 공연, 당신은 보셨습니까? 또 한번 보십시오! 두 번 보면, 세 번 듣고 싶은 햇님과 달님”이라 소개하는 신문광고가 실리며 당시 인기를 실감케 한다.
여성 소리꾼들이 모여 국악 대중화도 모색하면서 소리와 춤 연기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 1960년대까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우리 여성국극은 같은 장르인 중국의 월극과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비해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쇠락하여 낯선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드라마 대사처럼 별천지 속 가장 빛나는 별들은 흩어졌을 뿐, 사라지지 않고 광막한 밤하늘에서 빛났다. ‘햇님과 달님’ 여주인공 김소희 명창을 비롯한 단원들은 국악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근현대사에 뚜렷한 흔적이 있는 여성국극의 존재감이 흐려진 게 아쉽다. 반가운 것은 정년이 영향력으로 관심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 흔적을 품은 공연도 기다리며 남도소리 길을 따라 초겨울 여정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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