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테크 공습… 무너지는 K산단

정지성 기자(jsjs19@mk.co.kr),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안두원 기자(ahn.doowon@mk.co.kr) 2024. 11. 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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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여수·울산·오송 4대 산업단지 현장르포
중국산 저가철강에 잇단 공장 셧다운 …"IMF때보다 심각해"
유화, 제값 못받고 재고만 쌓여…오송엔 공장매매 현수막뿐

◆ 차이나테크 공습 ◆

'테크'로 무장한 중국 기업들의 전방위 공세에 K산업 기반이 초토화되고 있다. 철강·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산 저가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공장을 폐쇄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중국 기업의 파상공세로 휘청이는 한국 기업들의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매일경제가 전국 4대 전통 산업단지를 찾아갔다.

지난 15일 방문한 포항은 잇단 제철소 공장 폐쇄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이틀 전 가동 중단 통보를 받은 현대제철 포항2공장 근로자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멈춰선 공장건물 옆으로 어지럽게 쌓여 있는 원자재들을 바라보던 근로자들은 정부와 국내 철강업체들의 안일한 대응을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한 직원은 "정부가 중국산 덤핑 제품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했어야 하는데 손놓는 바람에 다 무너졌다"며 "되레 산업용 전기세를 올리면서 가뜩이나 약한 가격 경쟁력이 더 떨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스코마저 45년 넘게 가동해온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의 문을 닫겠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업종 특성상 공장을 멈추기 어려워 수요가 줄어도 생산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 재고만 늘어가고 있다. 여수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제값도 못 받으면서 24시간 공장을 돌리고 있다"며 "제조원가가 높은 데다 전기요금 등 유틸리티 비용은 계속 올라가는 삼중고"라고 하소연했다.

중국산 원료의약품 수입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내에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고 공장 매물을 소개하는 현수막만 눈길을 잡았다. 의약품업체 관계자는 "저가일 뿐만 아니라 기술 수준도 많이 올라와 있어 중국 기업과 경쟁이 안 돼 간신히 유지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그나마 낫다는 울산의 조선업계도 성토가 쏟아졌다. 이무덕 동형이엔지 대표는 "조선특구를 지정해 '주 52시간'을 해제하고 E7 비자 대상도 12개 공정 모두에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이런 규제 때문에 조선업이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화학제품 일감 30% 뚝 … 차라리 공장 닫는게 낫다"

 기술로 무장한 중국 기업들의 융단폭격식 진출에 따른 산업계 위기감은 전국의 산업단지 모든 곳에서 감지됐다. 지역경기 침체도 그대로 이어졌다. 석유화학분야의 중국 물량공세는 공포스러울 정도다. 지난 5년간 전 세계 나프타 분해설비 신·증설 규모의 56%가 중국에서 이뤄졌다. 울산의 석유화학산단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도 "국내에는 대규모 석화단지가 손에 꼽을 정도지만 중국에는 비슷한 규모로 100곳이 넘게 있다고 한다"며 "경쟁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수산단에서 협력사를 운영하는 최경남 성진실업 대표는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산단 조성 이래 최대위기"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여수산단 내 주요 기업의 화학제품을 포장하고 운송하는 1차 벤더사를 운용하고 있다. 그는 "주문 물량이 1년여 전보다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당연히 직원들의 초과근무도 없어졌고 아예 감원하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석유화학단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인근 온산국가산단에서 진행 중인 '샤힌 프로젝트' 덕분에 일부 업체에서 증설 움직임이 있는 것이 전부다. 시설보수업체 D엔지니어링의 한 직원은 "석유 부산물이 다양하니까 중국 영향이 적은 쪽으로 피해가려고 증설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현대제철에 이어 포스코까지 일부 공장 가동 중단을 발표하자 포항은 충격을 받는 모습이다. 현대제철 포항2공장은 뛰어난 품질의 특수강을 생산하는 핵심 설비다. H형강, 압연론, 강널말뚝, 궤도처럼 세계일류상품으로 경쟁력이 높았는데 중국산에 밀려 차라리 공장을 닫는 게 그나마 손해를 줄인다고 판단했다. 철강업계는 한국 철강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 완성차 업계를 비롯한 고객사들의 고통분담과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지역경제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이무덕 동형E&G 대표는 '주 52시간' 규제완화를 요청했다. 그는 "잔업을 하면 중소협력업체 직원은 많으면 월 150만원 넘게 소득이 늘어난다"며 "그 돈이 지역에서 소비돼야 골목 상권이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여수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여수시내 산단의 영향력으로 인해 화학·정유 사업의 위기는 지역경제의 초토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 정지성 기자 / 여수 추동훈 기자 / 울산 안두원 기자 / 오송 김지희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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