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연구원 3명 ‘일산화탄소 질식사’ 무게…경보기 하나 없었다

주성미 기자 2024. 11. 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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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1차 소견…밀폐 실험실서 배기가스 배출 장치 고장이 화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차량 성능 실험을 하던 연구원 3명이 질식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20일 오전 울산경찰청 형사기동대 차량이 합동감식을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감식은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진행했다. 주성미 기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차량 성능 실험을 하던 연구원 3명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질식 위험이 높은 밀폐공간인 실험실에 산소농도 측정기 등 안전장치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설비결함 등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안일하게 환기·배출장치만 믿은 것이다.

20일 오전 연구원들의 주검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는 이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는 1차 소견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인이 나오기까지는 2주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울산경찰청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전동화품질사업부 차량 성능 실험실인 ‘체임버’에서 합동감식을 벌였다. 경찰 등은 6시간여 동안 감식을 벌였는데, 숨진 연구원들이 실시한 시험과 동일한 환경을 만든 뒤 환기·배출 장치 등의 작동 여부 등을 감식했다.

추정 사인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알려지면서 사고 원인은 실험실인 체임버의 배기가스 배출 장치 이상으로 기울고 있다. 체임버는 차량 1대가량이 들어갈 크기의 밀폐된 실험실로 온도와 습도, 압력 등 여러 주행환경을 재연해 성능 시험이 이뤄진다. 전면부에는 외부 공기를 내부로 유입시키는 장치가 있고, 실험 차량의 배기구(머플러)에 배관을 연결해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장치가 있다.

19일 오후 3시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차량 성능 테스트 중 연구원 3명이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이날 촬영한 공장 정문 전경. 연합뉴스

사망한 연구원들은 모두 실험 차량인 GV80 모델의 운전석과 조수석, 뒷좌석에서 발견됐고, 차문과 차창은 닫힌 상태였다. 배기구에 연결된 배출 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실험 차량에서 발생한 배기가스 속 일산화탄소가 밀폐된 실험실 안에 쌓여 연구원들이 질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같은 실험실은 현대차 울산공장에만 여러곳이 있다. 사실상 밀폐 공간이지만, 이곳에는 산소농도 측정기나, 경보기 등 안전장치는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험실에 들어가는 연구원들도 일상적으로 산소마스크 등 보호구를 착용하거나 산소농도을 확인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배기가스 배출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만 여기고 밀폐 공간에 대한 위험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숨진 연구원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자료를 확인하고 있으며, 안전수칙 매뉴얼과 준수 여부 등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차량 성능 실험을 하던 연구원 3명이 질식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20일 오전 고용노동부 차량이 합동감식을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감식은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과 함께 진행했다. 주성미 기자

현대차는 이날 이동석 최고안전책임자(CSO·사장)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대표이사 시에스오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담함과 비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며 “사고 원인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필요한 조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잠재적 위험요인이 예상되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보다 철저히 추진해나가겠다”며 “향후 이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사과문에서 ‘대표이사 시에스오’라는 직책을 모두 세차례 사용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대상인 ‘경영책임자’가 이동석 사장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종사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해 종사자가 숨지는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한다.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경영책임자는 통상 대표이사로 해석돼왔다.

현대차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대표이사는 총 3명으로 ‘경영전반 총괄’ 정의선 회장과 ‘업무총괄(CEO 등)’ 장재훈 부회장, ‘업무총괄(생산·안전 등)’ 이동석 사장이 있다. 현대차는 법인 전체의 안전보건 업무는 이동석 사장이 총괄한다고 밝히는 등 경영책임자가 이 사장이라는 입장이지만, 실제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는 노동부 수사 과정에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앞서 전날 오후 3시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전동화품질사업부 차량 성능을 시험하는 ‘체임버’에서 남양연구소 소속 책임급 직원 김아무개(45)씨와 박아무개(38)씨, 경기도 화성의 자동차 연구개발업체 소속 장아무개(26)씨 등 연구원 3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모두 숨졌다.

이들은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일주일간 예정된 출장을 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들은 밀폐된 실험실인 체임버에서 차량 운행 조건에 따라 엔진룸 안에 있는 전선 커넥터가 열화·손상되는지를 시험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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