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의 여론조사 '설계'... 윤석열 띄우고 이재명 낮췄다
지난 대선 당시 명태균 씨가 다수의 공표용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에게는 유리하게, 이재명 후보에게는 불리하도록 질문 문항을 편집해 윤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명태균 씨가 국민의힘 경선 시기 다수의 '비공표 여론조사' 샘플을 조작한 사실은 이미 뉴스타파 보도로 드러났지만, '공표용 여론조사'에도 부당한 영향력을 미친 사실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명태균 씨는 지난 대선 당시 후보에게 제기된 ‘고발사주 의혹’, ‘대장동 의혹’ 등을 묻는 여론조사 질문 항목을 만들면서 이재명 후보 측에 부정적인 문항을 적극 반영한 반면, 윤석열 후보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문항은 우회하는 방식 등을 활용했다. 명 씨의 편파적인 여론조사 문항 편집은 국민의힘 경선 기간 뿐만 아니라 대선 본선에서도 이어졌다. 이같은 사실은 뉴스타파가 새롭게 확보한 명 씨의 육성 전화녹음 파일을 통해 확인됐다.
편파 질문① 고발사주 주체 바꾸고 '정치 공작설' 출처 지웠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21년 9월 21일, 명태균 씨는 김영선 전 의원의 회계책임자 강혜경씨에게 여론조사 문항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 명태균 :리얼미터인가 갤럽인가 물어본 게 하나가 뭐냐 하면
□ 강혜경:네
■명태균:정치 공작이다 뭐야 고발사주, 윤 총장 문제. 거기 보니까 ‘정치 공작’ (응답)이 많이 나왔더라고 정치공작이냐, 그 두 가지, 그 두 가지 질문이 들어가야 돼
□ 강혜경 : 공표 조사 말씀하시는 거죠?
■ 명태균:네
□ 강혜경 : 알겠습니다.
- 2021년 9월 21일 명태균씨와 강혜경씨의 통화 내용
통화가 이뤄진 시점은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국민의힘(구 미래통합당) 측에 민주당 인사 및 비판적 언론인들을 형사 고발하도록 했다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이 불거진 때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당시 손준성 대검 수사기획관이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보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졌다.
당시 윤석열 후보 측은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제보자인 조성은 씨와 박지원 민주당 의원(당시 국정원장)과의 접촉 사실을 문제삼으며 고발사주 의혹이 여권(민주당)의 정치공작이라며 맞불을 놨다. 윤석열 후보 측의 고발사주냐, 민주당 측의 정치 공작이냐를 두고 공방이 가열되자, 이 사안에 대한 민심을 확인하기 위해 여론조사 기관들이 조사를 벌었다.
당시 리얼미터도 여론조사를 진행했는데, 앞서 강 씨와의 통화에서 명씨가 언급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문항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총선 직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측이 범여권 인사 및 언론인들에 대한 형사고발을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에 사주했다는 의혹에 대해, 윤석열 예비후보와 국민의힘 측은 여권의 정치공작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고발사주 의혹이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에 대해 공감하십니까?
- 2021년 9월 1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문항
리얼미터는 1) 고발사주의 주체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측이라고 했고 2) 고발사주의 표적이 범여권 인사 및 언론인들이라는 사실도 알려줬다. 3) 동시에 이 같은 고발사주 의혹을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하는 쪽은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측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적시했다.
그러나 당시 명태균 씨가 리얼미터 조사 문항을 참고해 만들라고 지시를 내린 후 작성된 여론조사 문항은 리얼미터와는 달랐다. 아래는 명 씨의 지시 이후 만들어진 질문이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검찰총장 재직 시 검찰에서 여권인사 등에 대한 고발을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에 사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중 어느 의견에 더 공감하십니까?
1)번 검찰과 야당이 결탁한 국기문란 사건이다
2)번 야당 대선후보를 흠집내기 위한 정치 공작이다
3)번 잘 모름, 무응답
- 2021년 9월 23일 명태균씨 측 여론조사 문항
우선 1) 고발사주의 주체가 '윤석열 검찰총장 재직 시 검찰'이라고 되어있다. 윤석열 후보 본인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뉘앙스다. 2) 고발사주의 표적이 범여권 인사 및 언론인들이라는 사실은 삭제됐다. 3) '고발사주 의혹은 민주당 측의 공작'이라고 주장하는 주체가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그저 양쪽의 주장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보기를 나란히 줬을 뿐이다.
고발사주의 주체 및 표적, 그리고 이른바 정치 공작설의 진원지를 밝힌 리얼미터 여론조사와 그렇지 않은 명태균 씨 측의 여론조사 결과는 공교롭게도 정반대였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민주당 등 여권의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자는 42.3%,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43.7%로, 오차범위 이내지만 윤석열 후보 측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이 더 높았다. 반면 명태균 씨 측의 지시를 받아 만들어진 여론조사에서는 야당 대선후보(윤석열)를 흠집내기 위한 정치공작이라는 응답이 40.1%, 검찰과 야당이 결탁한 국기문란 사건(민주당 측 주장)이라는 응답은 38.7% 였다. 윤석열 후보 측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편파 질문② 대장동 의혹 초기에 ‘특혜 의혹’ 강조 지시
명태균 씨는 대장동 논란 초기만 해도 이재명 전 성남시장에게 불리한 사안이라고 인식한 듯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문항을 추가하라고 지시한다. 2021년 9월 23일 명태균 씨는 여론조사 문항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린다.
■ 명태균 대장동 문제 있죠. 질문 하나 했잖아요, 그죠. 그다음에 또 하나 질문은 뭐냐 하면 특검을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특검 수사에서 명백하게 밝혀야 되느냐 그 부분을 하나 넣죠.
- 2021년 9월 23일 명태균씨와 강혜경씨의 통화 내용
이어 다른 통화에서는 이재명 후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특혜 의혹과 관련하여’라는 문구가 문항에서 빠졌다고 지적한다.
■ 명태균 : (문항에) 개발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하여 특혜 의혹과 관련하여
□ 강혜경 : 네
■ 명태균 : 거기 보면은 ‘특혜 의혹과 관련하여’가 없어요.
- 2021년 9월 23일 명태균씨와 강혜경씨의 통화 내용
실제로 같은 날 진행된 명태균 씨 측의 여론조사에서는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과 관련해, 특검 등이 필요한지, 특혜 의혹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응답자 과반이 동의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그로부터 5일 뒤인 2021년 9월 28일, 당시 윤석열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며 이재명 후보를 압박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특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범인”이라며 가세했다.
편파 질문③ '윤석열' 이름 빼고 '이재명 게이트 VS 국민의힘 게이트'
그런데 2021년 10월 즈음 윤석열 후보에게도 불리한 정황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대장동 의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에서 대검 중수부 소속 주임검사였던 윤석열 당시 중수2과장이 대장동 일당의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대장동 사건을 키운 게 아니냐는 이른바 ‘윤석열 대검 중수부 수사 무사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대장동 사건의 책임이 이재명 후보에게 있는지, 윤석열 후보에게 있는지를 다투는 구도가 새롭게 설정된 것이다.
그런데 명태균 씨는 이 같은 당시 상황을 무시한 채 엉뚱한 문항을 작성해 여론조사를 비틀어 진행했다. 아래는 명태균 씨의 지시에 따라 작성된 질문 문항이다.
선생님께서는 최근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의 논란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1번 이재명 게이트이다.
2번 국민의힘 게이트이다
3번 잘 모름, 무응답
- 2021년 10월 24일 명태균씨 측 여론조사 문항
대장동 개발 의혹의 쟁점을 과거 성남시장 이재명과 대검 중수2과장 윤석열의 구도로 두고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이재명 대 국민의힘’이라는 엉뚱한 구도를 설정한 것이다. 이처럼 뒤틀린 질문을 통해 나온 여론 조사 결과는 이재명 게이트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54.3%로 국민의힘 게이트(33.3%) 응답자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왔다.
편파 질문④ "일반 시민 조사에서도 윤 총장이 안 지겠네, 그치?"
명태균씨가 윤석열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노골적으로 설계한 정황을 보여주는 통화 내용도 새롭게 확인됐다. 명태균 씨는 강혜경 씨와의 통화에서 특정 조건 하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응답을 하지 않고 그렇게 되면 윤석열 총장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명태균 : 국민의힘 당내 경선이라 하면 민주당 지지자나 이런 사람들은 다 빠지지?
□ 강혜경 : 거의 다는 아니지만 일단 빠질 사람은 빠지겠죠.
■명태균 : 그러면 일반 시민(여론조사)에서도 윤 총장이 안 지겠네, 그치?
- 2021년 10월30일 명태균씨와 강혜경씨의 통화 내용
명태균, 대선 본선 때도 ‘윤석열 편들기’ 여론조사
명태균씨가 여론조사 질문 문항을 교묘히 편집해 윤석열 후보를 지원했던 흔적은 국민의힘 경선 뿐만 아니라 대선 본선 기간에도 확인된다.
대선 본선 기간 김건희 여사의 허위 경력 의혹과 윤석열 후보의 잇따른 말실수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자 국민의힘은 2022년 1월 3일 선대위 전격 해체를 선언한다. 윤석열 후보와 김건희씨가 지지율 하락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지만, 명태균씨는 '김종인 당시 선대위원장의 선택’을 강조하라고 지시한다.
■ 명태균 :국민의힘에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선대위 전격 해체를 발표했다. 그리고 또 지금 당직자들, 주요 당직자들이 책임을 묻고 사퇴를 하게 됐다. 그렇게 ‘김종인’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되고, 일반 사람들이 얘기하면 못 알아듣거든. 거기에 매우 잘했다, 잘했다… 이렇게 네 가지로 물어봐야 된대요.
□ 강혜경 : 알겠습니다.
- 2022년 1월 3일 명태균씨와 강혜경씨의 통화 내용
특히 “이렇게 네 가지로 물어봐야 된대요”라는 언급은 명씨가 윤석열 캠프 관계자 등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명태균 씨는 지난 대선 시기, 고발 사주 의혹이나 대장동 의혹과 관련 대검 중수부의 수사 무마 의혹, 윤석열 선대위 해체까지 주요 고비 때마다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여론조사에서 편파적인 문항을 설계해 윤석열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든 것으로 의심된다. 윤 대통령 부부와 각별한 관계를 이어갔던 명태균 씨가 각종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건을 1년 가까이 수사 중인 검찰은 윤 대통령 부부와 선거 전반의 의혹을 비켜가면서 명태균 씨와 일부 정치인이 벌인 ‘지역 토착 비리’에만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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