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도, 남편과의 추억도 다 빼앗겨"... 故 이우영 작가 유족 출판사 고소

이정혁 2024. 11. 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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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의 유족이 도서를 무단으로 재발간한 출판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소송 과정에서 증거 수집을 위해 해당 출판사에서 나온 검정고무신 관련 서적을 검토하다 이 작가 동의 없이 작품을 냈다는 사실을 아내 이지현씨가 확인한 것이다.

양측의 갈등은 이 작가가 2007년 형설출판사의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검정고무신 사업권 일체를 양도하는 계약을 하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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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저작권 침해 고소장 제출
"제목만 바꿔 재발간...유족 협의 전무"
만화 '검정고무신'의 작가 고 이우영씨의 아내 이지현씨가 20일 서울 마포경찰서 앞에서 형설출판사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고소장 제출에 앞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편과의 소중한 추억마저 빼앗겨버린 기분이었습니다."
'검정고무신' 원작자 고 이우영 작가의 배우자 이지현(52)씨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의 유족이 도서를 무단으로 재발간한 출판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해당 출판사는 고인과 생전 법적 분쟁을 벌였던 곳이다. 이 출판사를 상대로 유족 측이 형사고소에 나선 건 처음이다.


"협의 없는 재발간"...유족, 고소 나섰다

이 작가의 아내 이지현(52)씨와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는 20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형설출판사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2001년 발간된 '검정고무신의 실수특급' 책을 형설출판사가 2015년 '와우(WOW) 검정고무신 거짓말 같아요?'라는 제목으로 바꿔 재출간했는데, 이때 원작자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게 요지다.

고소장 제출 직전 기자회견에 나선 이씨는 붉어진 눈으로 취재진 앞에 섰다. 이씨는 남편이 그린 검정고무신의 실수특급에 글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이씨는 "추억마저 빼앗기고 싶지 않아 고소하게 됐다"며 "전혀 다른 제목과 표지라 두 책이 같은 책이라 상상하지 못했는데 표지 안 인사말도 똑같이 사용했고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추가한 내용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 그리고 그 가족들이 함께 사는 모습을 재미있게 담아내 인기를 끈 작품이다.


작가 죽음으로 몰고 간 '저작권 소송'

KBS 2TV에서 방영됐던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한국일보 자료사진

형설출판사가 문제가 된 책을 발간한 건 2015년인데 9년이 지나 유족이 법적 조치에 나선 배경엔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있다. 소송 과정에서 증거 수집을 위해 해당 출판사에서 나온 검정고무신 관련 서적을 검토하다 이 작가 동의 없이 작품을 냈다는 사실을 아내 이지현씨가 확인한 것이다.

양측의 갈등은 이 작가가 2007년 형설출판사의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검정고무신 사업권 일체를 양도하는 계약을 하며 시작됐다. 이후 업체 대표가 자신을 검정고무신 캐릭터 9종의 공동 저작자로 등록해 수익 일부를 가로채거나, 2차 사업 과정에서 이 작가에게 제대로 통지도 안 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이 작가는 일용직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작가는 2019년엔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창작물에 활용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형설출판사에 소송을 당했다. 이 작가는 생전 재판부에 제출한 마지막 진술서에서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이다. 창작 이외에는 바보스러울 만큼 어리석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2년 넘는 법적 분쟁 가운데 심적 고통에 시달리던 이 작가는 지난해 3월 숨진 채 발견됐다.

이와 관련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7월 검정고무신의 저작권 계약이 불공정 계약이라는 판단을 내놨다. 한국저작권위원회도 형설출판사의 공동저작권자 등록을 말소했다. 그러나 유족 측은 "이 작가가 유일한 저작자로 명시된 후에도 출판사로부터 인세 정산조차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송전은 계속되고 있다. 형성출판사가 낸 저작권 소송에서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출판사 측이 검정고무신 캐릭터의 창작물과 광고물을 생산 및 판매해선 안 된다는 판결을 내놨다. 다만 특정 시점까지는 사업권 계약의 효력이 유효하다며 이 작가 측이 계약 위반과 저작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금 7,4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이 이 작가 손을 들어줬지만 결과적으로 유족에게 배상 책임이 생긴 셈이다. 1심 판결에 양측이 모두 불복해 항소심 공판이 21일 열린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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