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가 3점슛 농구를 이끌었는가?

김종수 2024. 11. 2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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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인기 스타가 그렇듯 스테판 커리(36·190.5cm)에게도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공존한다. 그를 저평가하는 이들은 ‘잘하기는 하지만 현시대 최고의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거나, 역대 넘버원 포인트가드 자리를 놓고 매직 존슨과 논쟁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고 말한다. ‘4번의 우승중 2번은 케빈 듀란트가 1옵션 아니었냐’는 말도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반때 쪽에 서있는 이들은 빼어난 기량에 더해 어떤 선수와도 조화가 잘되는 범용성을 높게 평가한다. 거기에 더해 ‘현 트랜드의 가장 큰 특징인 3점슛을 기반으로한 스페이싱 농구를 이끌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다. 성적이나 수상실적 등 단순 숫자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 선수다는 것이다.


현대 농구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공간을 넓게쓰는 ‘스페이싱’이다. 그 과정에서 3점슛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렇기에 포지션 불문하고 각 선수들에게 기본 이상의 슈팅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등이 맹위를 떨칠 때까지만 해도 NBA는 골밑에 최대한 가까이 가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래야 득점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했다.


오랜시간동안 진리처럼 여겨지던 그러한 방식은 이른바 스몰볼이 대세가 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유럽에서 먼저 잔뼈가 굵었던 마이크 댄토니는 2000년대 중반 피닉스 선즈를 이끌고 대혁명을 일으켰다. 스몰볼과 3점슛, 스페이싱, 픽앤롤 등을 강조한 화끈한 공격농구로 기존 스타일과 다른 유형으로도 얼마든지 성적을 낼 수 있다는것을 보여줬다. 현대농구를 바꾼 인물, 현대 농구의 창시자 등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다.


이후 많은 지도자들은 단순히 골밑으로 가깝게만 가려는 농구보다 오픈찬스를 많이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심했다. 오픈찬스는 곧 성공률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일단 골밑만 1순위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깨야했다. 오픈찬스를 많이 만들기위해서는 수비수들의 범위를 분산시켜야했고 그러려면 공간을 넓게 쓸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보니 외곽슛의 중요성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골밑으로 빡빡하게 몰리기보다는 3점라인 혹은 거기서 더 떨어진 부분까지 넓게 오갈 수 있어야 수비를 분산시키기 좋았고 그렇게 공격 반경이 넓어진만큼 오픈찬스도 더 생겨났다. 이후 이러한 스타일을 갈고 닦아 발전시킨 여러 팀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현대 농구의 트랜드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커리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좋아보이는 것이라도 확실한 결과없이는 기존 체계를 뒤집기 쉽지않다. 거기에 정점을 찍은게 커리와 그의 소속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다. 댄토니의 선즈 시절 이후 NBA는 꾸준히 스페이싱과 3점슛을 강조하는 추세로 발전되고 있었다.


슛이 중요시되다보니 많이 던지는 것을 비롯 성공률 또한 높아져갔다. 가장 먼저 변화가 시작된 쪽은 빅맨 포지션이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슈팅가드, 스몰포워드 등은 본래도 3점슛을 잘 던지는 선수들이 많았다. 반면 빅맨은 클래식 유형이 대다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너나 할 것 없이 3점슛을 장착하고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되자 매치업된 상대 빅맨은 이를 막기위해 더 넓은 공간까지 따라나갈 수 밖에 없었다. 포스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않던 빅맨들의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3점슛을 잘 던지는 빅맨들은 있었지만 유럽 등 해외파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범위가 대다수 미국 빅맨들에게까지 적용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급격해졌다는 평가다.


포인트가드같은 경우 커리 이전부터 수많은 공격형 1번이 존재해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 돌파에 강점이 있는 슬래셔 유형이었다는 사실이다. 퓨어 포인트가드처럼 선패스 마인드는 아니더라도 본인이 자신있는 공격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헤집고 거기서 나온 균열을 이용해 외곽의 슈터, 골밑의 빅맨에게 패스를 찔러줬다.


그런 점에서 커리는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슈터형(?) 1번이라는 점에서 차별화가 컸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3점슛을 던져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방식으로 게임을 지배했다. 예전같으면 매우 보기힘든 아니 지도자들이 싫어하던 유형이었다. 여기에는 거리불문 많이 던지면서도 성공률 또한 높은 커리의 엄청난 3점슛 능력에 더해 이를 믿고 지지해주는 것을 비롯 팀 시스템 자체를 거기에 맞춰버린 스티브 커 감독의 전술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들 잘 알다시피 3점슛을 앞세운 워리어스는 팀 역사상 최고 황금기를 이룩했고 성적과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워리어스 성공 이전에도 리그 3점슛 비율은 올라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확률높은 2점 농구를 좀 더 선호했고 그러다가 공간이 생기면 3점슛을 던지는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3점슛을 아예 주패턴으로 삼는 팀과 선수가 늘어났다.


더불어 공격의 선봉장, 오프 더 볼 무브, 리딩에 고루 능한 커리는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NBA는 물론 타국 리그 심지어 동네(?) 농구판까지도 영향을 줬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다. 커리가 3점슛 농구를 이끌었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계자는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트랜드, 상품성 등 모든 부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중 한명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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