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준법투쟁’ 현장 가보니···“안전수칙 지키며 정상근무하는데 태업이라뇨”

오동욱 기자 2024. 11. 2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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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 정비사들이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차량사업소에서 열차를 정비한 다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동욱 기자

“죄송해요. 지금 바빠서 인터뷰는 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차량사업소(차량사업소)에서 만난 열차정비사는 말 붙일 틈도 없이 자전거에 올랐다. 마음이 급해 보였다. 공중에 두어번 헛발질을 하고서야 바퀴가 페달과 함께 돌기 시작했다. ‘준비는 끝났다! 안전한 철도 쟁취!’ 그의 등에 적힌 문구가 금세 멀어졌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 17일 “전국철도노동조합 태업이 예고됨에 따라 일부 전동열차 운행이 지연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이에 따라 철도노조의 쟁의는 ‘태업’으로 이름붙여졌고, 여러 언론도 이렇게 보도했다.

그렇지만 지난 19일 경향신문이 찾아간 차량사업소 작업 현장의 풍경은 태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량사업소에서는 작업자 4명이 7칸짜리 무궁화호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들은 열차 상·하부 검수에 30분, 정비에 30분~1시간을 잡고 일한다. 이 시간에는 한눈팔 새가 없다고 했다.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오전 9시부터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차량을 전부 정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차량사업소는 전라·호남·장항선과 경부선을 운행하는 무궁화·새마을호 열차를 정비한다. 하루 차량 69편(무궁화호 39편, 새마을호 30편)이 찾는다. 5명으로 구성된 한 조 당 하루에 약 6편(열차 5~6칸)을 살펴야 소화가능한 작업량이다. 관광용 임시열차까지 추가로 점검해야 할 때도 있다. 노조 관계자는 “열차 한 편을 검수·점검하고 있을 때 다른 차가 오면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 한 조가 나뉘어 작업하기도 한다”며 “규정상으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이번 쟁의를 ‘준법 투쟁’, ‘안전일터 지키기 조합원 행동’으로 규정했다. 정상출근해 ‘작업 중 뛰어다니지 않기’ ‘휴게시간 지키기’ ‘승객 승하차 확인 철저히 하기’ ‘운전 중에도 화장실 이용하기’ 등 코레일 작업메뉴얼상 안전수칙을 지키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주장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동에 쓰는 자전거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차량사업소 건물 앞에 늘어서 있다. 오동욱 기자

노동조합법 등에 규정된 태업은 노동자가 정상적으로 일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작업 능률을 저하시켜 간접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히는 행위로, 합법적인 쟁의행위다. 철도노조와 전문가들은 이런 법 조항에 견줘도 철도노조의 이번 준법 투쟁이 태업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철도노조 준법투쟁 당시 노동자들은 ‘작업 중 뛰면 안 된다’는 안전수칙을 지키기 위해 작업장 내에서 걸어서 이동했다. 그러자 열차 지연이 심해졌고, 노조를 향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노조는 이번 준법투쟁엔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했다. 안전수칙 준수와 열차 지연 방지라는 업무 목표 사이에서 택한 타협안이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측을 향한 비판과 조소가 올라오기도 했다. 한 시민은 X에 “‘준법근로’가 투쟁이 되는 것도 어이없지만 그걸 태업이라고 말하는 건 더 어이가 없다”며 “규정과 법률, 안전수칙을 지키며 일하면 태업이 되는 세상이 정상이냐”고 지적했다. 다른 시민은 “철도노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방법을 쓰는지 찾아봤는데, 작업 중 뛰어다니지 않는 것 정도였다”며 “너무 무섭다”고 비꼬았다.

노동자들은 태업이라는 말에 한숨을 쉬었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 규정을 지킬 의무는 지워지고 ‘게으른 노조’라는 딱지만 남았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안전수칙대로 걸어 다니기만 하면 절대 시간에 못 맞춰 자전거를 타는 것”이라며 “법·규정을 지켰을 때 발생하는 열차 지연 사태가 오히려 인력 부족의 현실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노조가 말한대로) 준법투쟁이라고 하면 쟁의행위에 정확하게 분류된 게 아니라 의미가 애매해지니까 쟁의행위의 하나로 봐서 태업이라고 명명한 것”이라며 “안전하게 걷는 거나 화장실 가는 것도 당연히 할 수 있지만, 열차가 정상적으로 운행해야 하는 걸 지연시켰으니 우리는 태업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태업으로 볼 사례가 있었는지 묻는 질문엔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열차 지연 등 책임을 쟁의에 맞추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쌍방이 충돌하는 노사교섭 문제에서 어느 한 쪽이 정하는 문구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오는 22일까지 준법 투쟁을 한 뒤, 다음달 5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서울지하철 1~8호선 운행을 담당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제1노조도 이날부터 준법 투쟁에 돌입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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