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충돌 방지 규정' 지운 평가원, 교과서 부실 검정 자인하나

홍우람 2024. 11. 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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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근 교육부 공무원 등이 교과서 필진으로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관련 문건에서 삭제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8월 현직 교육부 장관의 청년보좌역이 한국사 검정 교과서 저자로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벌어지자, 개선에 나서기는커녕 아예 관련 규정을 없애버린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오는 12월 2일부터 초등·중학교 교과서 30종에 대해 출판사들로부터 검정 신청을 받는다. 이번에 심사 받는 교과서는 2026년 3월부터 사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12일, 개정된 ‘2025년 교과용도서 검정 신청 안내 자료집'을 배포했다. 이 안내자료집은 검정 교과서 신청의 발행자·저작자 요건, 검정 신청 절차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핵심 자료다.

뉴스타파가 새 안내자료집을 검토한 결과, 지난해까지 실려 있던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 안내자료집은 교과서 저작자 요건 중 하나로 ‘교육부 및 검정 심사 기관 소속이 아닌 자’라고 명시했지만, 이번 개정에서는 해당 내용이 빠졌다. 문제는 이러한 개정 방향이 '교육부가 교과서도 쓰고, 교육부가 검정 심사도 하는' 이해충돌 문제를 막아야 한다는 국회와 여론의 목소리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말, 언론 보도를 통해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청년보좌역이 한국학력평가원이라는 출판사의 새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 교과서 저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 및 검정 심사 기관 소속인 사람은 교과서 저작자가 될 수 없다는 당시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해당 교과서에 대한 검정을 신청한 출판사가 제출 자료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른바 ‘표지갈이 문제집’을 제작해 출판 실적을 부풀리거나, 허위 내용을 기재해 ‘납본 증명서’를 발급받는 등 절차상의 부실이 뉴스타파의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이후 국회 교육위원회 현안질의와 국정감사에서는 해당 교과서에 대한 검정 취소 등의 후속 조치를 촉구하는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교육부 측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안내자료집에 앞서 공표된 별개의 문건인 '검정 실시 공고'(이하 '공고문')에는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없다는 이유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공고문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교육부 관계자는 오히려 안내자료집에 명시된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행정 오류’라고 말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교육부 장관도 교과서 저자가 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고민정 의원: 그 얘기는 지금 장관님도 교육부 직원이나 마찬가지인데 장관님께서 (현재 AI 디지털교과서 검정 심사 중인) 에듀테크의 저자로 활동하셔도 겸직 허가만 나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이주호 장관: 교과서 부분에서는 뭐 지금 그렇게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민정 의원: 국민들이 과연 동의하실까요?
- 국회 교육위원회 역사교과서 문제 관련 현안질의(2024.9.24)

이번 안내자료집 개정이 국회의 촉구에 역주행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입맛대로 교과서 저자 요건까지 임의로 바꿀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야당 안에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임의로 삭제한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법제화하는 방안이 구상 중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교육부 장관 청년보좌역이 교과서 저자로 참여해 비판을 받자, 아예 교육부 직원이 저자로 참여하는 것을 제한한 내용을 빼버리는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교육부와 검정심사기관 소속 직원이 교과서 저자로 참여하는 이해충돌을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번 개정에서 ‘발행자 요건’, 즉 출판사의 자격 증명 절차를 일부 보강했다. 이전 안내자료집에 따르면 출판사 측은 ‘최근 3년 사이 해당 교과 관련 도서를 1~2종 이상 출판한 실적을 증명하는 자료’만 제출하면 됐다. 하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실물 도서’까지 제출하도록 규정이 추가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25년 교과용도서 검정 신청 안내자료집에서 출판사가 제출하는 출판실적 증명서의 유형에 따라 '실물 도서'까지 제출하도록 규정을 추가했다.

출판사가 편법적으로 출판 실적을 부풀리는 사건이 벌어지자 뒤늦게 임시방편을 마련한 것이다. 뉴스타파가 한국학력평가원의 ‘한국사 교과서 검정 신청 자격 조작’을 보도한 지 2개월여만이다. (관련 기사: '한국사 교과서 합격' 출판사, 알고보니 자격 요건 조작...평가원의 부실 검증)

뉴스타파는 연속 보도를 통해 최근 3년 사이 역사 관련 출판 실적이 전무했던 한국학력평가원이 어떻게 한국사 교과서 검정 신청 자격을 얻게 됐는지 밝혔다. 이 출판사는 16년 전 자사 문제집을 재활용한 이른바 ‘표지갈이 문제집’을 만들고, 국립중앙도서관으로부터 이 책에 대한 납본 증명서를 발급받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언론 보도 이전까지 이 같은 부정행위를 파악하지 못했다. 검정 신청 시 요구하는 출판 실적을 엄밀히 검증하기 위해 도서 실물을 제출받고, 이를 확인하는 형식적인 절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안내자료집 개정이 검정 심사 절차의 부실과 한국학력평가원의 검정 교과서 승인의 문제점을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 국정감사 등에서 한국학력평가원의 출판 실적 조작과 당국의 부실검증 문제를 집중 지적해온 국회 교육위 소속 강경숙 의원(조국혁신당)은 “(안내자료집을) 이런 식으로 조용히 수정한 것은 용인할 수 없다”며 “국회 교육위원회 의결로 감사원 감사를 요구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검정 과정을 둘러싼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해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 홍우람 wooram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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