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내년 3월 도입 AI디지털교과서, 미완성 기술에 교육 맡기나
교육부가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예정대로 내년 3월부터 초3·4, 중1, 고1의 수학·영어·정보 교과목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고 19일 밝혔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위한 교사 연수와 기반 시설 확충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고 한다. 이미 1만 명의 선도교사 연수를 실시했고 15만 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시도별 연수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 1046개 선도학교와 65개 연구학교를 통해 디지털 기반 교실 수업의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모든 학생에게 1기기(디바이스)를 제공할 준비도 마쳤고 교실의 무선 인터넷 속도도 최대 10G까지 개선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전히 완성된 AI 디지털 교과서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내년에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전통적인 종이 교과서와 함께 사용하게 된다고 밝혔다. 특히 내년부터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도입되는 초등학교 3·4학년의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교육부도 2026년 이후에 도입하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교과목을 조정해달라는 지난달 교육감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 '세계 최초'의 AI 디지털 교과서
AI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으로 "교사가 학생의 학습 수준에 대한 (AI 디지털 교과서의) 진단 결과에 따라 수업 자료를 마련하는 학생 참여형 수업 방식을 통해 잠자는 교실을 완전히 변화시킨다"는 것이 교육부의 화려한 꿈이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미래 핵심역량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사가 이끄는 교실 혁명'을 위한 혁명적인 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세계 최초'만 노리는 교육부가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졸속으로 밀어붙이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낯선 '에듀테크' 기술을 전방위로 사용하겠다는 정책의 '제안'에서 '시행'에 이르는 전 과정이 고작 2년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졸속 교육 행정이다. 교육이 100년 대계라는 인식은 교육부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2022년 11월 윤석열 정부의 2번째 교육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이주호 장관이 느닷없이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교육을 표방하면서 AI 디지털 교과서를 핵심과제로 내놓았던 것이 작년 2월이었다.
4개월 후에는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방안'이 등장했고 6개월 만에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그리고 고작 1년 2개월 만에 AI 디지털 교과서의 검정 절차가 마무리되고 내년 3월부터는 학교 현장에 세계 최초의 'AI 디지털 교과서'가 본격적으로 투입된다.
사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이주호 장관의 오랜 개인적 숙원(宿願)이다. 이 장관이 모든 교육 정책을 틀어쥐고 있었던 이명박 정부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었다.
2019년 11월 이 장관이 창립해서 2022년 11월 장관 취임 때까지 이사장직을 맡고 있던 '아시아교육협회'도 디지털 교과서의 꿈을 키우는 무대였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의대 입학정원 증원과 함께 '사교육 카르텔'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사교육 시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개발한 디지털 교과서는 오늘날 전자책(e-book)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설픈 수준이었다. 시범학교를 지정해서 학교 현장에 적용하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던 디지털 교과서는 정권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물론 이주호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그런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과연 이제 막 등장하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학생의 지식 교육은 물론 학습 수준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맡길 수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교육학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교육부는 그런 현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오로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반기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는 교육부 장관의 일방적인 주장이 유일한 근거다.
아무리 낯설고 새로운 에듀테크라도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서슴치 않는다. 결국 내년에는 전국의 초3·4, 중1, 고1 학생들이 한 번도 검증되지 않은 '세계 최초 에듀테크'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실험용 모르모트'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 혼란스러운 교육 현장의 반응
교육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난 7월 고민정 의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교사가 73.6%나 된다. 찬성하는 교사는 12.1%뿐이다. '학습 효과성'에 대한 충분한 실증 자료가 부족하고 학생들의 '디지털 중독'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현장 교사들에 대한 연수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학부모 역시 디지털 중독과 문해력 저하는 물론 시력 문제까지 걱정하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 '디지털 교과서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 형편이다. 지난 6월 27일에 마감한 국회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에 동의한 국민도 5만6505명이나 된다.
학교 현장의 준비도 교육부의 주장처럼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초등학교의 담임 교사 배정은 보통 2월 말에 이루어진다. 결국 3·4학년을 배정받은 교사는 대부분 6시간 속성 연수를 받고 AI 디지털 교과서 수업에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지금까지 추진한 선도학교와 선도교사 연수도 수박 겉핥기식이었다는 교사들의 평가도 있다. 진짜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디지털 기기의 관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국회 교육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17개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에 보급된 398만 대의 디지털 기기를 관리할 전문 인력은 고작 823명에 불과한 형편이다.
콜센터 인력을 빼고 나면 756명이 1인당 5262대의 기기를 관리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지급해 준 디지털 기기의 허술한 '보안'을 풀고 유튜브와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교육부가 자랑하는 디지털 선도학교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기자가 참관한 선도학교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수업 내내 기기의 오류와 사용법의 문제, 학생들의 집중력 저하 등의 문제가 계속되었다.
수업 중에 기기가 먹통이 되고 교사 몰래 SNS에 접속하는 학생도 있었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학생이 "생각하지 않고 너무 빨리 답을 얻고 나서 딴 생각을 한다"는 것이 교사의 평가였다. 학생들은 디지털 기기에서 읽은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학생 맞춤형 교육을 추구하는 AI 디지털 교과서가 교사에 따라 학습 편차를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 4년 동안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의 '구독료'로 4조7255억 원과 기기구입비로 1조원이 훌쩍 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17개 시도교육청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사실 내년부터 교육부가 맡았던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떠안게 된 시도교육청은 당장 내년에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위해 필요한 6000억 원을 확보할 여력(餘力)이 없다. 내년에 구독료 256억 원과 학생용 디바이스 구입비 1650억 원을 마련했다는 서울시교육청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제도적 반발도 심각하다.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의 국회의원이 지난 5일에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에서는 학생의 문해력 저하, 디지털 중독,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등을 이유로 AI 디지털 교과서를 정식 교과서가 아닌 단순한 '교육 자료'로 규정한다. 교육부가 대통령령을 개정해서 확보해 놓았다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박탈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 '환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미래 기술
지나친 디지털 교육이 학생의 마음 건강과 전인적 발달을 위한 사회정서 학습에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은 아무도 외면할 수 없는 팩트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불확실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적·교육적인 친밀감·신뢰감'이 그런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고 인류가 오랜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한 명백한 진실이다. 그런 교육을 디지털 기술에 통째로 맡겨버리겠다는 시도는 개인적인 오만일 수밖에 없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졸속 추진에 대해 교육학자들이 입을 닫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혼란스럽게 이어져 왔던 교육개혁의 피로가 누적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우리의 '놀라운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교육의 성과를 통째로 부정하는 어쭙잖은 선무당의 해괴한 주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AI 디지털 교과서가 강조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미완성의 '미래 기술'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생성형 AI는 기계 학습에 투입된 '인터넷 자료'를 불법적으로 흉내 내는 '대규모 디지털 표절 기계'에 불과한 것이다. 생성형 문법에 대한 언어학 이론을 정립한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의 준엄한 평가다.
실제로 생성형 AI가 활용하는 '대형 언어 모델'(LLM)은 사실·진위·선악을 판단하지 못한다. 기계 학습에서 활용한 인터넷 자료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생성형 AI가 자랑하는 화려한 솜씨는 모두 남들이 애써 만들어놓은 자료를 놀라운 속도로 분석해서 그럴듯하게 '표절'해서 포장하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가장 심각한 약점으로 알려진 '환각'(hallucination)은 표절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이어지고 독도가 '영토분쟁지역'이라는 황당한 정보도 마구 쏟아내는 것이 현재의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제주 4·3사건을 '공산 폭동'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여수·순천 10·19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하는 오류도 저지른다.
교육부가 '환각'의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시사 문제의 오류를 바로잡는 임기응변의 대책은 언제나 뒷북일 수밖에 없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터넷'에 온갖 쓰레기 자료가 넘쳐나고 있는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복잡한 과학적 사실을 임의로 왜곡해버릴 수도 있다. 물론 교사도 잘못된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AI 디지털 교과서는 오류의 확산 속도와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수 있어서 더욱 경계해야 한다.
환각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어쩌다 저지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대형 언어 모델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구조적 한계다.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미완성의 미래 디지털 기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우리 학생의 교육을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과연 교육부가 1년 2개월 만에 쫓기듯 허겁지겁 개발한 AI 디지털 교과서의 '환각'에 대한 우려는 절대 지나친 것이 아니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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