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투어리즘' 북촌의 공존과 분리: 과태료가 못할 일들 [추적+]
북촌에서 본 오버투어리즘 논란
오버투어리즘에 대응하는 각국
베네치아 입장료·뉴질랜드 관광세
일본은 후지산 입장료에 제한까지
종로구가 내놓은 해법은 ‘과태료’
11월 1일부터 계도기간 들어가
하지만 해당 규제 ‘한계점’ 명확해
오버투어리즘으로 전세계 유명 관광지가 몸살을 앓고 있다. 몇몇 국가에선 관광세ㆍ입장료를 도입하거나 인상하고, 인원을 제한하는 등 나름의 해법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규제책을 발동한 곳이 있다. 서울 북촌이다. 그렇다면 이곳 주민을 괴롭히던 오버투어리즘은 사라질까.
"올해 해외 관광객은 15억명에 육박할 것이다." 유엔 세계관광기구의 전망이다. 팬데믹 이후 관광 수요가 폭증한 결과인데, 이면이 있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다. 이는 '지나치게 많은'이란 뜻의 오버(over)와 '관광'을 뜻하는 투어리즘(tourism)을 합친 말이다. 관광지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지역주민의 삶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이 때문에 세계의 유명 도시는 오버투어리즘을 막기 위한 방어책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다. 이 도시는 올해부터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하루 5EUR(약 7500원)의 입장료를 물리고 있다. 뉴질랜드는 관광세를 기존 35NZD(약 2만9000원)에서 100NZD(약 8만3000원)로 186% 인상했다.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갔다. 올여름 후지산 입장료를 3배로 끌어올린 일본은 등산객도 하루 4000명으로 제한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규제'를 발동한 곳이 있다. 서울 종로 북촌이다.
■ 북촌 빛과 그림자 =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데다 전통 한옥이 아름답게 이어지는 북촌로11길 한옥 골목은 국내외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팬데믹 후 너무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몰려들면서 오버투어리즘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북촌을 찾은 방문객은 664만명으로, 북촌 거주자(6000여명)의 100배에 달했다. 쓰레기 무단투기, 불법 사진촬영, 무단침입 등의 논란도 꼬리를 물었다.
이같은 오버투어리즘은 북촌 주민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쳤고, 많은 거주민은 이곳을 떠났다. 2023년 북촌 거주 인구는 2018년 대비 12.1%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서울시 전체 인구 감소율(3.1%)보다 9%포인트 높다. 주민들이 속속 이탈하면서 '사람 사는 한옥마을'이란 정체성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지자체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 규제의 서막 = 서울 종로구는 지난 1일부터 북촌을 찾는 관광객의 '방문시간'을 제한하는 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북촌 특별관리지역 내 레드존에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다.
종로구는 지난 7월 북촌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주민의 불편 수준을 고려해 레드존ㆍ옐로존ㆍ오렌지존으로 구분했다. 이중 레드존은 북촌로 11길 일대 3만4000㎡(약 1만평)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주거용 한옥 밀집 지역을 가리킨다.
종로구는 시행 초기에 발생하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년 2월 28일까지 계도기간을 갖고 정책을 개선할 방침이다. 본격적인 단속은 내년 3월 1일부터다. 이를 기점으로 제한 시간에 레드존을 출입한 관광객에게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2026년 1월부터는 전세버스(관광버스) 통행 제한도 시행한다. 대상지는 버스 불법 주정차가 잦은 북촌로, 북촌로5길부터 창덕궁1길에 이르는 2.3㎞ 구간이다. 여기에 불법 주정차를 했을 경우엔 과태료 30만원을 부과한다. 2차 적발 시엔 40만원, 3차 적발 시에는 50만원으로 과태료가 늘어난다.
'오버투어리즘'을 이유로 지자체가 과태료를 부과하고 나선 건 종로구가 처음이다. 관광객은 물론 거주민에게도 낯선 규제임에 분명하다. 그럼 규제를 발동한 1일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 규제 첫날의 풍경 = 1일 오후 4시. 규제 시작 1시간 전 북촌로 11길 '레드존'에 도착한 기자의 눈엔 '관광 인파'부터 들어왔다. 그 틈새에서 종로구 관계자와 북촌 주민 자원봉사자는 '방문시간 제한'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규제의 시작'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정문헌 종로구청장과 경찰, 구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방문시간 제한을 미처 알지 못했던 관광객들은 이내 발길을 돌렸다. 몇몇 외국인 관광객은 곳곳에 붙은 특별관리지역 전단과 안내 브로셔를 신기한듯 응시했다. 방문제한 시간인 오후 5시가 다가올수록 인파는 줄고 소음도 잦아들었다. 북촌 주민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주민 박경자(가명ㆍ46)씨의 말을 들어보자. "그동안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관광객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집 문을 두드리는 일이 다반사일 정도였죠. 외국인 유튜버라도 오는 날이면 그 소음이 괴로운 수준이었어요. 특별관리지역를 지정했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두손 들고 반기는 이유죠. 저녁 시간을 반납하고 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건 이렇게 해서라도 북촌이 변화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정책이 주민이 기대치를 충족해 줄지는 알 수 없다. 벌써부터 한계를 꼬집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나씩 살펴보자.
■ 한계❶ 예외규정 = 앞서 언급했듯 오후 5시 이후 북촌 레드존엔 관광객이 출입할 수 없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주민의 지인과 친척ㆍ상인ㆍ숙박 투숙객ㆍ상점 이용객 등의 출입은 허용된다. 문제는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 중 주민과 관광객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관광객은 복장으로 파악이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지인과 친척, 숙박 투숙객, 상점 이용객을 일일이 구별하는 건 '눈썰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한계❷ 밤 소음 = 북촌 숙박시설(한옥 체험업)에서 새어나오는 '심야 소음'도 난제다. 주민이 거주하는 한옥 사이사이에 둥지를 튼 '숙박시설' 주변엔 투숙객의 소음으로 가득 찰 때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확인증만 제시하면 투숙객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숙박시설의 수가 적은 적도 아니다. 서울 열린데이터광장에 따르면, 종로구에서 숙박시설로 인허가 받은 업체는 342개소(올해 11월 기준)에 이른다.
■ 한계❸ 태생적 모순 = 관광객과 상인의 불만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북촌은 주민과 관광객이 공존하면서 떠오른 관광지인데, 그걸 규제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날 북촌을 찾은 관광객 이채니(30)씨는 "좋은 방향인지 모르겠다"며 말을 이었다. "북촌은 거주지이면서도 동시에 관광지로 성공한 '특수한 지역'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시간제한에 과태료라니 당황스럽네요. 10만원이라는 금액도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인근에서 카페ㆍ한복대여점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주민들 입장은 공감한다"면서도 나름의 불만을 표했다. "무엇보다 5시부터 제한을 두는 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름철에는 5시면 한창 관광객 방문이 많을 시간이거든요. 앞으로 수요가 줄어들 게 분명하니까 사업장을 가진 입장에선 조금의 부당함을 느낍니다."
이처럼 '방문시간 규제'란 전봇대를 꽃은 북촌엔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고 있다. 특별관리지역 지정만으로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주민과 관광객, 상인을 모두 아우르는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단 거다.
정란수 한양대(관광학) 겸임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실효성을 생각해 봐야 한다. '과태료 부과'가 애매한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위반해도 떠나면 그만이어서다. 종로구청은 여행사에 물리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실 여행사에 부과할 근거는 없다. 과태료 방식보다는 베네치아처럼 레드존에 한해 '입장료' 형태로 과금을 하는 게 적절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또, 계절에 따라 시간제한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민과 상인이 공생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논의해야 한다."
북촌은 주민의 정주권定住權(일정한 곳에 머물러 살 권리)을 보호하면서도 관광지로서의 특색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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