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지사가 수상하다, 수상해!
구자홍 기자 2024. 11. 20. 09:01
[특집 | 이재명이 흔들린다] 호남만 12번 방문 ‘광폭 행보’·정무 라인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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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사가 1박 2일 일정으로 한 달에 두 차례 호남을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는 10월 16일 전남 곡성군수와 영광군수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권 인사들이 경쟁적으로 호남을 찾던 시기다.
7월에도 김 지사는 1박 2일 일정으로 전남 신안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 당시 김 지사는 방명록에 "역사와 국민을 믿고 민주주의, 민생, 평화의 길을 여는 데 앞장서겠다"고 적었다. 차기 대선주자 출사표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내용이다.
더욱이 김 지사는 친노·친문 인사는 물론 비명계 인사까지 대거 영입하고 있다. 경기도 정책수석, 도지사 비서실장, 정무수석을 역임한 김남수 전 수석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선후보 노동특보 출신으로, 노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낸 원조 친노 인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안정곤 도지사 비서실장도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선임행정관을 지냈고, 중소벤처진흥공단 상임이사를 맡았었다. 7월부터 경기도 대변인을 맡고 있는 강민석 대변인은 문재인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친문 인사다.
10월 24일 단행한 인사에서 김 지사는 고영인 전 의원을 경제부지사에, 윤준호 전 의원을 정무수석에 임명했다. 고 부지사는 21대 국회 때 경기 안산단원갑에서 당선한 전직 의원 출신 인사다. 22대 총선에는 지역구를 옮겨 다시 도전했지만 비명계로 분류돼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윤 수석도 20대 국회 때 부산 해운대을 국회의원을 했다. PK 출신 윤 수석을 경기도 정무수석으로 발탁한 것은 차기 대선을 겨냥해 외연 확대를 꾀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 밖에 소통협치관에는 김부겸 국무총리 시절 의전비서관을 지낸 손준혁 전 비서관을 발탁했다. 이재명 대표 사법 처리가 현실화할 경우 포스트 이재명으로 '신(新)3김'(김동연·김부겸·김경수)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 인맥까지 영입한 것이다.
김 지사가 이처럼 정치권, 특히 친노·친문은 물론 비명계 인사까지 대폭 영입하자 "경기지사 재선보다 차기 대선에 더 관심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사법 처리로 현실화되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 김 지사가 인사를 통해 정무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는 점에서다.
국가 지도자로서 김 지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온순하고 합리적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김 지사는 11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대한민국 위기는 대통령이 원인으로 지금 바로 결단해야 한다"며 사실상 하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특검법 수용'이나 '질서 있는 퇴진' 가운데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신3김' 중 김 지사가 처음 대통령의 거취를 거론하는 강수를 둔 셈이다.
강성필 필립정치컨설팅 대표는 김동연 지사의 차기 대권 행보에 대해 "김 지사 자신을 위해서도 민주당 외연 확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강 대표는 "현재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대표가 가장 강력한 차기 주자임에는 분명하지만, 대선이 다가올수록 다른 주자들도 차기 경쟁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해야 본선 때 더 많은 지지층을 끌어모아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덕수상고 졸업 후 은행에 취업한 김 지사는 야간대학 졸업 후 고시에 도전, 입법고시(6회)와 행정고시(26회)에 잇달아 합격해 공직에 늦깎이로 입문한 흙수저 출신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기재부 차관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그가 중용된 것은 관료로서 그가 보여준 행정 능력을 역대 대통령이 높이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관료로 잔뼈가 굵은 그는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으로 변신, 대선을 불과 7개월여 앞두고 '새로운 물결'을 창당하며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창당과 대선 도전은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 됐다.
3·9 대선 투표일을 일주일 앞두고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한 그는 대선 이후 민주당과 합당하고 대선 석 달 뒤 치러진 6·1 지방선거에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를 거머쥐고 본선에 올라 당선했다. 정치 스타트업 창업자가 채 1년도 안 돼 원내 제1당 기성 정당과의 M&A를 통해 1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많은 주민이 거주하는 광역단체장에 오른 것이다.
"기회는 준비가 행운을 만났을 때 생긴다."
축구선수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씨가 펴낸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의 한 대목이다. 어려서부터 부단한 연습과 노력으로 남다른 축구 실력을 쌓아온 손 선수가 '해외 진출'이라는 행운을 잡아 월드 스타로 성장한 스토리는 이 한 문장과 맥이 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손 선수가 '해외 진출'이라는 '행운'을 만나기에 앞서 먼저 월드 스타로서 갖춰야 할 축구 실력을 철저히 '준비'해 왔다는 점이다.
모두가 성공을 꿈꾸지만 어떤 이는 그 꿈을 이루고, 다수는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IMF 외환위기 당시 '준비된 대통령' 슬로건으로 집권에 성공한 DJ나, 서울시장 재임 때 △청계천 복원 △버스 중앙차로제 △뉴타운 등 시정 성과를 바탕으로 2007년 대선에 당선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가 '준비'가 '행운'을 만나 '집권'에 성공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뜻한 바를 이룬 이들을 보면 이처럼 평소 소임을 다해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잘해 낼 '준비'가 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 안에 한정된 자원으로 능력과 성과를 입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주변에 유력 인사를 포진시켜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포장하려고 한다.
김 지사는 도정 슬로건으로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를 내세웠다. 구체적으로는 민간의 혁신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도정을 통해 △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도정으로 △ '더 고른 기회'를 제공하며, 가치 있는 미래를 약속하는 도정으로 △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3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김 지사가 경기도정의 '키'를 잡은 지 2년 4개월이 돼간다. 그동안 경기도는 대한민국에 어떤 변화의 중심 구실을 한 것일까. 그리고 경기도민에게는 어떤 기회를 얼마나 제공했을까. 강민석 경기도 대변인은 "김 지사는 도정에 전념해 기회소득과 기후대응, 그리고 반도체 투자 유치 등을 통해 경기도와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청 홈페이지에는 '기본소득과 기회소득의 차이점'이 이렇게 설명돼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성과 무조건성을 원칙으로 한정된 재원을 분배해야 하고, 이로 인해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존재한다. 기회소득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회적 투자'로, 예술활동 지원, 중증장애인 건강증진 활동 장려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지급한다. 이를 통해 기회소득은 개인이 창출하는 가치가 공동체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에 비해 김 지사가 강조하는 '기회소득'이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경기도민이 이재명표 기본소득과 김동연표 기회소득 중 어느 주장에 더 동의할지 궁금하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차기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동심원이 퍼져나가듯 핵심 지지층을 늘려나가야 하는데, 이념적 중립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김동연 지사는 아직 관료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치적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11월 18일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1심 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후 이 대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지금 그런 것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협약식 참석 후 취재진과 만나 "야당 대표에 대해서는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선 뭉개기 수사를 하고 있다"며 "이게 제대로 된 법치인지 민주주의인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 12회 호남 방문…DJ 생가에서 ‘출사표’
● 경기도 요직에 ‘친노·친문·비명계’ 포진
● 독일에서 김경수와의 만남, 김부겸 ‘라인’ 포섭
● 윤 대통령에게 ‘결단’ 강조…온화한 이미지 ‘탈피’
● MB는 청계천, 뉴타운 성과로 대권 직행
● 김동연 “이재명 플랜B? 지금 그런 것 논할 때 아냐”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동연 경기지사가 수상하다. 김 지사의 수상한 행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잦은 호남 방문. 민주당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을 김 지사는 도지사 취임 이후 2년 3개월 동안 12차례 찾았다. 두 달에 한 번꼴로 호남을 찾은 셈이다. 또 다른 수상한 행보는 그가 단행한 인사다. 친노·친문은 물론 비명계까지 대거 영입하며 외연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정무 라인을 강화한 게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차기 대선을 겨냥한 행보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월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25일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따라서 김 지사의 잇단 광폭 행보는 이 대표의 '사법 처리'를 대비한 '포스트 이재명'을 겨냥한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권교체를 위한 '보완재'가 아니라 '이재명 대체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월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25일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따라서 김 지사의 잇단 광폭 행보는 이 대표의 '사법 처리'를 대비한 '포스트 이재명'을 겨냥한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권교체를 위한 '보완재'가 아니라 '이재명 대체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주의, 민생, 평화의 길을 여는 데 앞장"
2022년 7월 취임한 김동연 지사는 올 9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호남을 모두 12회 방문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호남을 찾은 것이다. 9월에는 한 달에만 두 차례 1박 2일 일정으로 호남을 방문했다. 9월 19일에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선언 6주년 기념식에 참석했고, 그날 저녁에는 광주·전남지역 청년들을 만났다. 다음 날에는 전남 여수로 내려가 연극 '사형수 김대중'을 준비하는 청년예술인과 지역 주민을 만났다. 나흘 뒤인 9월 24일 김 지사는 다시 전남 목포로 향했다. 목포대에서 '유쾌한 반란'을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에 참여했다. 다음 날인 25일에는 광주에서 한국산학협동연구원 초청 강연을 했다.
경기지사가 1박 2일 일정으로 한 달에 두 차례 호남을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는 10월 16일 전남 곡성군수와 영광군수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권 인사들이 경쟁적으로 호남을 찾던 시기다.
7월에도 김 지사는 1박 2일 일정으로 전남 신안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 당시 김 지사는 방명록에 "역사와 국민을 믿고 민주주의, 민생, 평화의 길을 여는 데 앞장서겠다"고 적었다. 차기 대선주자 출사표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내용이다.
6월 9~10일에도 1박 2일 일정으로 전남 강진 등을 순례한 김 지사는 6·10 민주항쟁 37주년을 맞아 SNS에 "국민은 마침내 승리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5월 3일에는 5·18 민주화운동 44주년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당시 김 지사는 방명록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광주 정신으로 대한민국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적었다. 가히 대선후보급 글귀다. '대한민국 대전환'을 언급한 그의 글귀는 차기 대선주자의 포부로 해석됐다. 이날 참배에는 김 지사뿐 아니라 '김동연 사단'이라 할 수 있는 경기도 행정1·2부지사와 경제부지사 등 도청 간부들과 경기복지재단,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등 산하 공공기관 간부까지 대거 동행했다.
친노·친문·비명계로 정무 라인 강화
김 지사의 또 다른 수상한 행보는 그가 단행한 인사다. 김 지사는 취임 직후 도정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1기 자문위원회는 관료와 학자 중심의 실무진 위주로 꾸려졌다. 그에 비해 최근 구성한 2기는 위원장에 3선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지낸 대표적 '친문' 전해철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위촉했다. 위원장의 정치적 무게를 크게 높였을 뿐 아니라 위원 수도 1기 11명에서 2기에는 26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형식은 도정 자문기구이지만 '차기 주자' 김동연의 싱크탱크이자 섀도 캐비닛을 꾸린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더욱이 김 지사는 친노·친문 인사는 물론 비명계 인사까지 대거 영입하고 있다. 경기도 정책수석, 도지사 비서실장, 정무수석을 역임한 김남수 전 수석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선후보 노동특보 출신으로, 노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낸 원조 친노 인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안정곤 도지사 비서실장도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선임행정관을 지냈고, 중소벤처진흥공단 상임이사를 맡았었다. 7월부터 경기도 대변인을 맡고 있는 강민석 대변인은 문재인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친문 인사다.
10월 24일 단행한 인사에서 김 지사는 고영인 전 의원을 경제부지사에, 윤준호 전 의원을 정무수석에 임명했다. 고 부지사는 21대 국회 때 경기 안산단원갑에서 당선한 전직 의원 출신 인사다. 22대 총선에는 지역구를 옮겨 다시 도전했지만 비명계로 분류돼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윤 수석도 20대 국회 때 부산 해운대을 국회의원을 했다. PK 출신 윤 수석을 경기도 정무수석으로 발탁한 것은 차기 대선을 겨냥해 외연 확대를 꾀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 밖에 소통협치관에는 김부겸 국무총리 시절 의전비서관을 지낸 손준혁 전 비서관을 발탁했다. 이재명 대표 사법 처리가 현실화할 경우 포스트 이재명으로 '신(新)3김'(김동연·김부겸·김경수)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 인맥까지 영입한 것이다.
김 지사가 이처럼 정치권, 특히 친노·친문은 물론 비명계 인사까지 대폭 영입하자 "경기지사 재선보다 차기 대선에 더 관심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사법 처리로 현실화되고 있는 미묘한 시점에 김 지사가 인사를 통해 정무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는 점에서다.
김경수와의 독일 만남, 尹에게 결단 촉구
10월 2일에는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공식 초청 간담회 이후, 현지에 체류 중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만났다. 지난 5월 김 전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을 위해 일시 귀국했을 때도 만난 적이 있다. 경기도는 "계획에 없던 자연스러운 만남"이라고 했지만 이 대표의 재판을 앞둔 시점에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 등 불안정한 정치 상황을 감안하면 두 사람의 만남은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다.
국가 지도자로서 김 지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온순하고 합리적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김 지사는 11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대한민국 위기는 대통령이 원인으로 지금 바로 결단해야 한다"며 사실상 하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특검법 수용'이나 '질서 있는 퇴진' 가운데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신3김' 중 김 지사가 처음 대통령의 거취를 거론하는 강수를 둔 셈이다.
강성필 필립정치컨설팅 대표는 김동연 지사의 차기 대권 행보에 대해 "김 지사 자신을 위해서도 민주당 외연 확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강 대표는 "현재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대표가 가장 강력한 차기 주자임에는 분명하지만, 대선이 다가올수록 다른 주자들도 차기 경쟁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해야 본선 때 더 많은 지지층을 끌어모아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덕수상고 졸업 후 은행에 취업한 김 지사는 야간대학 졸업 후 고시에 도전, 입법고시(6회)와 행정고시(26회)에 잇달아 합격해 공직에 늦깎이로 입문한 흙수저 출신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기재부 차관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그가 중용된 것은 관료로서 그가 보여준 행정 능력을 역대 대통령이 높이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관료로 잔뼈가 굵은 그는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으로 변신, 대선을 불과 7개월여 앞두고 '새로운 물결'을 창당하며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창당과 대선 도전은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 됐다.
3·9 대선 투표일을 일주일 앞두고 당시 집권 여당이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한 그는 대선 이후 민주당과 합당하고 대선 석 달 뒤 치러진 6·1 지방선거에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를 거머쥐고 본선에 올라 당선했다. 정치 스타트업 창업자가 채 1년도 안 돼 원내 제1당 기성 정당과의 M&A를 통해 1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많은 주민이 거주하는 광역단체장에 오른 것이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기회는 준비가 행운을 만났을 때 생긴다."
축구선수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씨가 펴낸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의 한 대목이다. 어려서부터 부단한 연습과 노력으로 남다른 축구 실력을 쌓아온 손 선수가 '해외 진출'이라는 행운을 잡아 월드 스타로 성장한 스토리는 이 한 문장과 맥이 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손 선수가 '해외 진출'이라는 '행운'을 만나기에 앞서 먼저 월드 스타로서 갖춰야 할 축구 실력을 철저히 '준비'해 왔다는 점이다.
모두가 성공을 꿈꾸지만 어떤 이는 그 꿈을 이루고, 다수는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IMF 외환위기 당시 '준비된 대통령' 슬로건으로 집권에 성공한 DJ나, 서울시장 재임 때 △청계천 복원 △버스 중앙차로제 △뉴타운 등 시정 성과를 바탕으로 2007년 대선에 당선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가 '준비'가 '행운'을 만나 '집권'에 성공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뜻한 바를 이룬 이들을 보면 이처럼 평소 소임을 다해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잘해 낼 '준비'가 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 안에 한정된 자원으로 능력과 성과를 입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주변에 유력 인사를 포진시켜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포장하려고 한다.
김 지사는 도정 슬로건으로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를 내세웠다. 구체적으로는 민간의 혁신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도정을 통해 △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도정으로 △ '더 고른 기회'를 제공하며, 가치 있는 미래를 약속하는 도정으로 △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3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김 지사가 경기도정의 '키'를 잡은 지 2년 4개월이 돼간다. 그동안 경기도는 대한민국에 어떤 변화의 중심 구실을 한 것일까. 그리고 경기도민에게는 어떤 기회를 얼마나 제공했을까. 강민석 경기도 대변인은 "김 지사는 도정에 전념해 기회소득과 기후대응, 그리고 반도체 투자 유치 등을 통해 경기도와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청 홈페이지에는 '기본소득과 기회소득의 차이점'이 이렇게 설명돼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성과 무조건성을 원칙으로 한정된 재원을 분배해야 하고, 이로 인해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존재한다. 기회소득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회적 투자'로, 예술활동 지원, 중증장애인 건강증진 활동 장려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지급한다. 이를 통해 기회소득은 개인이 창출하는 가치가 공동체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에 비해 김 지사가 강조하는 '기회소득'이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경기도민이 이재명표 기본소득과 김동연표 기회소득 중 어느 주장에 더 동의할지 궁금하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차기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동심원이 퍼져나가듯 핵심 지지층을 늘려나가야 하는데, 이념적 중립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김동연 지사는 아직 관료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치적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11월 18일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1심 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후 이 대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지금 그런 것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협약식 참석 후 취재진과 만나 "야당 대표에 대해서는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선 뭉개기 수사를 하고 있다"며 "이게 제대로 된 법치인지 민주주의인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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