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 교과서, 효과 알 수 없지만 일단 실험해봅시다?

이상원 기자 2024. 11. 2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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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도입 예정인 AI 디지털 교과서를 두고 반발이 거세다. 학부모와 교사,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판이 나온다. 교육 ‘주체’를 바꾸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9월23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관람객들이 AI 디지털 교과서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사와 학부모 반발이 거세다. 정치권과 학계도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도 정부는 2025년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AIDT) 정책 이야기다. AIDT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다. 2025년 3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전 학년에 순차 도입될 예정이다. 교실에 디지털 기기를 들이는 게 처음은 아니다. 기존 디지털 학습과 AIDT가 구분되는 지점은 ‘AI(인공지능)’와 ‘교과서’다. 시청각자료와 달리 AI는 학생의 데이터를 수집·저장한다. ‘교육자료’는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으로 활용하지만 교과서는 전국 모든 교사와 학생이 무조건 써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교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부는 3월 도입을 못 박고 속도전을 감행해왔는데 정작 검정 합격본은 11월 말에야 발표될 예정이다.

여론은 부정적이다. 지난 5월28일부터 한 달간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에는 5만6505명이 동의했다. 8월28일에는 127개 교육·시민사회단체가 AI 디지털 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AIDT 공대위)를 결성했다. AIDT 공대위는 10월1일까지 한 달간 9만5769명이 AIDT 도입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다만 AIDT에 대한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응은 미묘하게 다르다. 고민정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월26~30일 학부모와 교사에게 AIDT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학부모 과반수(57.4%)는 도입에 대해 ‘잘 모른다’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동의’ 응답은 30.7%, ‘비동의’가 31.1%, ‘보통’이 38.2% 나왔다. 비동의하는 이들은 ‘디지털 기기 의존 우려’ ‘문해력 저하 우려’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전체 82.1%는 사회적 공론화 절차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교사들은 AIDT 도입에 대해 ‘안다(76.1%)’고 답했다. 전체 73.6%가 도입에 ‘비동의’한다. 이들이 첫손에 꼽은 이유는 ‘학습 효과성 의문’이었다.

10월11일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는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이 출석했다. KERIS는 AIDT 개발과 교사 연수 등 이 사업을 주도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취임한 정 원장은 학자 시절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주창해온 인물이다. 국감에서 “AIDT가 학생들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KERIS가 연구한 바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정 원장은 “AIDT의 주된 기능들은 사교육에서도 쓰이고, 각각 효과성이 검증되고 있다”라면서도 “AIDT는 새로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효과성 연구는 향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0월11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맨 왼쪽) 등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AIDT의 학습효과가 확실히 검증되어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간 AIDT를 둘러싸고 주로 제기된 비판은 제도의 탈선, 즉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디지털 기기를 학습이 아니라 오락에 쓰는 학생이 나올 수 있다거나, 학생 개인정보가 외부에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 역시 핵심적 사안이고, 전례를 돌아보면 비현실적 기우도 아니다. 그러나 교육부로서는 ‘철저한 관리’ ‘기술적 보안 강화’ 등을 약속해 잠재우기 쉬운 공격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제도 그 자체에 법적 결함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헌법과 법률 체계상 AIDT가 과연 교과서가 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 물음이다. 현재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교과서(‘교과용 도서’)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통령령(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고쳐서 ‘서책·음반·영상 및 전자저작물’에 AIDT(‘지능정보화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추가했다. 고민정 의원은 교과서 범위를 시행령으로 정하는 게 부당하다고 본다. 9월27일 교과용 도서를 법률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몇몇 법률 전문가들도 생각이 같다. 11월5일 국회입법조사처와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 등이 공동주최한 ‘교과서제도 법률주의와 AI 디지털 교과서, 법적 해법을 모색하다’라는 세미나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현안 브리핑을 맡은 김범주 입법조사관은 “(AIDT의 근거가) 과연 대통령령 개정으로 충분한지 분명 검토가 필요하다. 입법자가 법률로 규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헌법상 교육 기본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헌법 제31조 6항에 따라 “교육제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시행령만으로 “데이터가 실시간 수집되는 소프트웨어”를 교과용 “도서”에 포함할 수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1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교과서제도 법률주의와 AI디지털교과서, 법적 해법을 모색하다’ 세미나가 열렸다. ⓒ시사IN 박미소

“계곡물에 아이 먼저 떠미는 격”

이재홍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DT가 “교육 주체를 교사에서 AI로, 매체를 종이 문서에서 디지털 문서로 바꾸는, 교육 기본권 실현에 미치는 본질적 영향이 큰 사안”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AIDT는 교사와 학생의 교육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으니 도입을 논의하려면 학습효과가 확실하다는 사실만이라도 보증되어야 한다. 이 손익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무엇이 교과서인지’ 법으로 정하는 과정이 그 통로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AIDT 도입은 “계곡물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니 아이부터 들어가보라고 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문병모 AIDT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현직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다. 그는 ‘교육의 주체가 바뀐다’는 대목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AI가 도입되면 교실의 주인은 AI가 된다. 선생은 ‘이 아이는 뭐가 부족하니 상담해줘’라는 AI 진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AI가 아이에게 교과서를 틀어주고 문제를 내는데 ‘지금 그거 풀 때 아니야’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문 위원장은 교육부가 AIDT의 주요 효과라고 주장하는 ‘맞춤형 교육’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학습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뒤떨어지는 아이가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료다. 선생님을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도 동료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조금이라도 배운다. (AI를 동원한) 1대 1 코칭이 곧 효과적 개별화 수업은 아닌데, AIDT는 현대 교육의 흐름을 무시한다.”

법 개정 없이도 시·도교육청이 거부한다면 내년 도입을 막거나 최소한 늦출 수는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전국 시·도교육감이 국정화 교과서를 보이콧한 게 일례다. 그러나 각 지역 교육청은 대부분 교육부의 AIDT 추정 액수 전액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해놓았다. 유일하게 추정 액수의 34%(15억원)만 편성한 울산시교육청의 관계자는 “헌법은 교과서 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AIDT가) 명확한 법적 지위를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우려도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 10월16일 보궐선거에서 진보 단일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선거 기간 AIDT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으나, 내년도 예산안에서 AIDT 예산 256억원을 전액 편성했다. 이에 대한 정 교육감 입장을 묻자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AI 디지털 교과서 예산편성 관련 현안 보고’라는 문서를 보여주었다. “AIDT 도입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AIDT는 현행 법령상 교과서에 포함되고 교육부 장관이 검·인정하면 학교에서는 사용하여야 합니다”라는 정근식 교육감 명의의 입장문이 실려 있었다. AIDT에 대해 “교육부에 도입 연기를 요청할 생각이다” “시민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라고 밝힌 선거 기간 메시지와는 사뭇 다르다. 고민정 의원은 “서울시교육청은 상징성이 크기에 다른 지역과 달라야 한다. AIDT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표심으로 당선이 됐기에 이 부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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