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노벨 문학상과 건축의 노벨상

2024. 11.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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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작가 한강의 소설이 노벨 문학상을 타버렸다. '타버렸다'는 표현이 조금은 생소하지만 우리가 기대하거나 조바심 낼 틈도 없이 그녀의 소설이 덜컥 수상작으로 발표된 것이다. 매년 10월 초가 되면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를 기다리며 언론과 매체가 들썩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조용했다. 그런데 10월 10일 긴급 뉴스로 들려온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소식은 반가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동안 노벨 과학상에 목을 매어왔던 우리에게 문학상 수상은 경이와도 같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왜 우리는 노벨 문학상에 열광하며 전율할까? 그것은 문학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우리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소통의 힘을 확장해준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고, 이를 주제로 형상화하여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이러한 점에서 문학과 건축은 닮아 있다. 건축 또한 인간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건축에도 노벨상에 비견할 만한 상이 있다. 바로 "프리츠커상"이다. 이 상은 호텔 체인으로 잘 알려진 하얏트 재단의 프리츠커 가문이 1979년에 제정한 것으로, 건축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수상자에게는 10만 달러의 상금과 청동 메달이 수여되며, 선정 이유는 노벨상처럼 정교하고 명확하게 발표된다.

프리츠커상이 추구하는 철학은 '인간 중심의 일관된 건축'이다. 이는 건축이 단순히 구조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사회의 내면을 성찰하며 과학과 기술을 매개로 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즉 도시에 대한 태도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도시 속에서 만나는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도시 속 사람에 대한 존엄의 시각과, 건축 공간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 교감, 정서, 감정 역시 건축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언어처럼 건축에도 고유한 문법과 수사학이 존재한다. 건축의 언어는 기호학으로 확장되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기반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 건축의 도리아식과 코린트식 기둥은 각각 남성과 여성을 상징한다. 문학이 글로 세상을 담아내듯, 건축은 형태와 구성, 색채를 통해 세상을 표현한다.

이처럼 노벨 문학상과 프리츠커상은 인간의 삶을 담아내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일본이 9명의 수상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크다. 이는 건축가의 창의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제도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건축 설계 시간이 지나치게 짧고, 디자인 혁신을 배척하는 관료적인 풍토, 네트워크 중심의 평가 구조, 건축비에 종속된 설계 문화 등이 그 이유다. 또한, 전통적 유교사상에서 화려한 건축을 사치로 여기는 태도와 경제 성장기에 효율성을 우선시했던 관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건축가보다 해외 유명 건축가를 선호하는 사회적 정서도 한몫한다.

영화의 봉준호, 피아노의 임윤찬, 성악의 김태한, 아파트의 로제,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처럼 K-문화를 대표하는 이름들은 전 세계에 울림을 주며 우리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대부분이 쉽게 답하지 못한다. 이는 단지 한두 명의 스타 건축가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프리츠커상은 단순히 건축가 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다. 그것은 건축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적 깊이와 철학, 그리고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평가하는 상이다. 우리는 영화, 음악, 공연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건축 분야에서는 아직 그러한 도약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건축은 도시의 얼굴이자 시대를 기록하는 캔버스다.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예술적 감각이 곧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드러낸다.

2005년 프리처커상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작품이 세종시에 있다. 세종의 랜드마크인 "엠브릿지"는 건축이 단순히 구조물을 넘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늦가을의 단풍놀이가 풍경을 즐기듯 '건축놀이'에 나서보자. 건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우리의 삶과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야 할 때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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